민선8기는 임기 2년 내 대안을 마련하고 도민 의견 수렴과 주민투표를 통해 2026년 지방선거에서 기초자치단체 선거를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그러면서 국내에서 시도된 적 없는 기관통합형' 모델을 제시해 지금까지의 논의를 원점화 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제주투데이>는 강봉수 논설위원이 제기한 '3개의 기초자치단체와 교육권역을 제안한다'를 필두로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둘러싼 면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정치권이 제안한 논의를 확장하기 위해 시민과 전문가 등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담아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윤형중 정책평론가.
윤형중 정책연구가.

서귀포시 하원마을 내 옛 탐라대가 폐교된지 벌써 11년이 넘어간다. 원래 마을의 공동목장을 대학교 부지로 저렴하게 내놔서 탄생한 탐라대는 2011년 제주국제대로 통폐합된 뒤 이 곳을 떠났고, 이 부지는 계속 방치된 상태였다. 2016년 제주도가 415억원을 들여 이 부지와 건물을 매입하고서도 6년이 지났다. 그동안 관리비만 상당히 들어갔지만, 10년 넘게 방치된 건물을 다시 사용하려면 상당한 개보수, 혹은 전면적 리모델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서귀포 동홍동의 헬스케어타운 역시 거대한 흉물로 방치된지 오래다. 녹지병원과의 소송을 차치하고서도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보유 중인 10만평이 넘는 부지도 10여년간 방치되긴 마찬가지였다. 이 부지에 최근 한국의학연구소(KMI)의 종합건강검진센터를 유치한 것이 그나마 실적이고, JDC는 5일 이 단지 내 보유 부지에서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할 민간 사업자를 모집한다고 공고했다. 너무 늦은 대응이어서 앞으로 몇 년을 더 방치할지도 예측하기 어렵다. 

역시 JDC의 사업이자, 15년간 방치된 예래 주거용휴양단지 역시 짓다만 건물 140여채가 그대로 있는 거대한 콘크리트 흉물이다. 심지어 이 곳의 토지는 2007년 토지주 108명으로부터 강제 수용된 곳이다. 대법원이 2019년 1월 토지주들이 제기한 도시계획시설 사업시행자 지정 및 실시계획인가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하면서 사업은 더 미궁 속에 빠졌고, 토지주들은 토지 반환 소송을 진행 중이다. 

공사 중단 된 예래동 휴양형 주거단지. 지난 2016년 촬영한 모습. (사진=제주투데이DB)
공사 중단 된 예래동 휴양형 주거단지. 지난 2016년 촬영한 모습. (사진=제주투데이DB)

지금까지 나열한 문제들의 공통점은 오랜 기간 해결되지 않은 채 지역에 구조물이 방치돼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사실상 문제 해결의 주체가 지역민들에게 직접 심판 받지 않는 JDC와 제주도청(광역지자체 선거는 특정 지역에서 표를 얻지 못해도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런 질문들을 던져보고 싶다. 만일 서귀포시장을 직선으로 뽑는다면 이런 문제들이 계속 방치됐을까. 권한이 없다며 손을 놓고 있었을까. 해결을 약속했다가 아무 진전이 없는데도 다음 선거에 나와 다시 선택을 받을 수 있었을까. 필자가 수년 전부터 방치된 건물들을 지나치면서 들었던 생각이었다. 


2년 내 주민투표는 지나치게 촉박한 일정 

다시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이 화두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네 명의 제주도지사 후보 모두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공약했다. 사실 기시감이 있는 이슈다. 2006년 단일 광역지자체로 바뀐 이후로 지속적으로 기초자치단체 복원이 논의됐다. 행정체제개편위원회만 이번에 세 번째로 구성됐고, 지난 10여년간 도출된 안은 기초의회 복원 없는 행정시장 직선제였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민선 8기 오영훈 도정은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6대 핵심과제로 제시했다. 문제는 이를 도입하는 일정이 지나치게 촉박하다는 점이다. 오영훈 도정은 2년 뒤인 2024년 하반기에 제주형 기초자치단체안에 대한 '주민투표'를 실시하고, 다음 지방선거인 2026년부턴 새로운 기초자치단체가 출범한다는 일정을 도정과제를 통해 제시했다. 향후 2년 내로 제주를 몇 개의 기초자치단체로 나눌지, 각 기초의회의 인원을 몇 명으로 할지, 기존에 도의회는 어떻게 할지, 심지어는 기초자치단체장을 기초의회에서 뽑는 '기관통합형'으로 할지, 혹은 다른 지자체처럼 '기관대립형'으로 할지를 정한 '제주형 모델'이 도출되고, 그 모델에 도의원 등 선출직 정치인들 뿐만이 아니라 도민들의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 일정이다. 하지만 아직 공론화도 시작하지 않았고, 용역 연구에 막 착수한 상황이다.  

주민투표를 위해선 그 전에 '특별자치도법'(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부터 개정돼야 한다. 특별자치도법은 여러 권한을 다루고 있어 중앙정부와도 합의를 해야하고, 국회에서도 상임위에서 충분히 논의해 본회의에 상정이 되어야 한다. 국회 행안위 소속 송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상당한 정치력을 발휘해 당 차원에서 추진하는 의제가 되어야 법안 통과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어렵사리 법률 개정이 이뤄지면 도의회에서 조례를 신설해야 한다. 이 모든 일들이 2년 내로 이뤄져야 하는 촉박한 일정이 아닐 수 없고, 이 일정대로 추진하려면 도정의 행정력이 집중되어야 한다.  

더 중요한 문제는 그렇게 어렵사리 제주형 기초자치단체가 도입된다고 해서 제주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는가이다. 필자는 그리 되기가 어렵다고 본다. 또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놓칠 가능성이 높다. 
 


제도가 바뀐다고 바로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 

많은 문제적 상황을 개선하는 방법으로 자주 거론되는 것이 제도의 변화다. 하지만 제도를 바꾸기 전에 두 가지를 분명히 따져야 한다. 하나는 그 문제의 원인이 정말 제도인가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제도가 순기능을 발휘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가이다. 특히 제도가 문제의 원인일 수 있어도, 100%의 원인인지, 아니면 원인의 일부이고 다른 중요한 원인이 더 있는지도 분명 살펴봐야 한다. 

이런 문제 의식을 제주형 기초자치단체에 접목해보자. 제주의 여러 문제들이 기초자치단체가 없어서 발생했을까. 강정 해군기지, 제2공항, 비자림로 확장공사 등의 사안들이 기초자치단체가 있었으면 달랐을까. 포화에 이른 하수처리장과 쓰레기장의 문제는 어떘을까. 기초자치단체가 지역의 문제를 더 살뜰히 챙기고, 지역민의 복지 향상을 더 꾀할 수 있었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누구도 100% 그렇다고 답하긴 어려울 것이다. 문제적 상황을 만든 여러 복합적인 원인들을 다 제치고, 기초자치단체의 부재만이 원인일 순 없기 때문이다.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는 지난 7월11일 오전 제주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영훈 도정은 윤석열 정부의 일방적 제2공항 강행 계획에 분명한 반대 입장을 전하고, 현 제주공항 활용 방안에 대해 객관적 검증에 즉각 나서라"고 촉구했다. (사진=박지희 기자)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는 지난 7월11일 오전 제주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영훈 도정은 윤석열 정부의 일방적 제2공항 강행 계획에 분명한 반대 입장을 전하고, 현 제주공항 활용 방안에 대해 객관적 검증에 즉각 나서라"고 촉구했다. (사진=박지희 기자)

제주의 문제는 그동안의 정치가 실패했다는 점이다. 정치가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주민들에게 효능감을 주지도 못했다. 이 문제의 원인 가운데 하나는 분명 주민과 선출직 사이의 거리가 먼 '단층 광역자치단체 체제'이지만, 이것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만일 과거의 도지사가 만족할 만한 행정을 펼쳤다면, 또 도지사가 임명한 행정시장들이 주민들과 깊이 있게 소통하고 효능감이 높은 행정서비스를 제공했다면 기초자치단체를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금처럼 크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지금의 '단층 광역자치단체 체제'보다 선출직과 지역민들과의 거리가 가깝다는 점에서 기초자치단체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장기적으론 풀뿌리 조직인 읍면동까지도 자치제를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식된 민주주의가 바로 정착하기 어렵듯, 기초자치가 현실에서 잘 작동하려면 자치역량이 중요하다. 자치역량이란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정치에 대한 관심도가 높을 뿐 아니라, 정치와 행정에 참여하려는 사람들이 상당수 존재하고, 그 사람들 간에 존중을 기반으로 숙의를 할 수 있는 토론 문화도 있어야 한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맞은 기초자치제, 읍면동장 직선제는 과거 자질 논란이 있었던 기초의회와 비슷한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점진적인 개혁이 정답이다 

한 제주도민의 입장에서 '제주형 기초자치단체의 도입'이 어떤 느낌과 경험일지를 상상해보자. 누군가에겐 내 손으로 시장을 뽑고, 이전보다 내 의사가 시정에 반영됐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상당수에겐 그저 주소명이 바뀌고, 선거 때 뽑을 인원이 늘어난 수준의 변화일 것이다. 심지어는 정치인들의 밥그릇만 늘어났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도민들도 효능감있는 개혁을 할 수 있을까. 다른 길이 없다. 도민들과 충분히 소통하며 점진적으로 개혁을 진행하는 방법 뿐이다. 특히 민주주의를 제도화하는 '지방자치'의 경우 도민들과 숙의를 거듭해 구체화해야 한다. 주민투표법이 개정돼 이전과 달리 전체의 4분의 1이상이 투표하면 효력을 발휘하지만, 만일 30% 남짓의 투표율과 과반을 갓 넘긴 찬성율로 기초자치단체가 도입되면 그 이후에도 관심 밖의 제도가 될 공산이 크다. 

제주도의회 본회의장. (사진=제주도의회 제공)
제주도의회 본회의장. (사진=제주도의회 제공)

그래서 필자는 이렇게 제안하고자 한다. 오영훈 도지사가 자신이 임명한 강병삼 제주시장, 이종우 서귀포시장과 함께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위한 1단계 약속으로 향후 2년간 방치됐던 숙원과제를 어느 수준으로 진전시킬지를 밝히고, 도정과 시정에 대한 설명회, 공청회, 주민 보고회 등을 수시로 개최하는 것이다.

특히 오영훈 도지사는 양 행정시장에 직선 시장에 못지 않는 권한을 이양하고, 숙원 과제 해결에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천명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양 행정시장도 법적인 권한을 넘어 문제 해결을 위한 해법을 창의적으로 모색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기초자치단체 도입시의 경험을 미리 겪어볼 수 있다. 

그 다음엔 기초자치단체 도입에 대한 공론화를 충분히 해야 한다. 2년도 안 되는 시간에 연구용역부터 공론화와 주민투표까지를 모두 실시하려는 계획을 세우면 세 단계 모두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 공론화에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 하고, 연구 용역을 하는 와중에도 공론화는 이미 시작되어야 한다. 어쩌면 연구 용역보다도 중요한 절차가 공론화다. 

다함께미래로준비위원회(오영훈 제주도지사 당선인 인수위원회) 소위원회 도민정부위원회는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미래로 도민공감 정책 아카데미를 지난 6월15일 오후 2시 웰컴센터에서 진행했다. (사진=박소희 기자)
다함께미래로준비위원회(오영훈 제주도지사 당선인 인수위원회) 소위원회 도민정부위원회는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도입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미래로 도민공감 정책 아카데미를 지난 6월15일 오후 2시 웰컴센터에서 진행했다. (사진=박소희 기자)

끝으로 처음부터 너무 급진적인 안을 추진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우선 기초의원들이 기초자치단체장을 선출하는 '기관통합형'은 이름부터 낯설고, 자칫 도민들에게 선출 권한을 뺏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최악의 경우에 기관통합형이 시행되고서 도민들이 수용하기 어려운 인사를 기초의원들이 자치단체장으로 세울 경우 지금보다도 퇴보한 제도처럼 보일 것이다. 기관통합형과 같은 제도를 정말 추진하려 한다면 현재 계획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권역을 나누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3개 권역부터 5~6개 권역 등 다양한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처음부터 권역을 여러 개로 나누면 청사, 기초의회 건물을 어디에 둘지부터 의원 정수를 정하는 문제까지 복잡한 문제가 발생한다. 강봉수 제주투데이 논설위원의 도농복합형 3개 권역안이나, 홍명환 전 도의원의 도농분리형 5구역 자치안 모두 인상 깊은 제안이다.

가장 나은 대안이 무엇일진 치열하게 논의하되, 처음부터 급진적인 변화를 꾀하기 보단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 민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정책은 신속하게 하면서도 체제의 개편은 충분한 숙의를 거쳐 추진할 필요가 있고, 성과를 확인하며 점진적으로 권역을 늘려가는 것도 방법이다. 게다가 다음 지방선거부터 5개 이상의 기초자치단체를 만드는 안은 현실적이지도 않다. 

결국 어떤 제도가 바로 더 나은 미래를 담보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주민들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만큼 수용되고, 취지대로 운영될 수 있다. 지금은 도민들에게 정치에 대한 효능감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고, 그것이 오영훈 도지사, 강병삼 제주시장, 이종우 서귀포시장에게 맡겨진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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