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통령 탄핵 국면을 겪으면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살리는데 102030 여성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주목받고 있다.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첫 윤석열 탄핵소추안 표결 당일인 지난 7일, 여의도 탄핵집회 참가자 중에는 20대 여성이 가장 많았고 전체 참여자 10명 중 2~30대 여성이 3명꼴이었다. 성별로만 보면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았다. 서울뿐만이 아니었다. 전국 각지에서 연일 열린 촛불집회 현장에는 10대와 청년 여성들이 주축으로 떠올랐다.
이를 본 기성세대의 소감도 주목할 만하다. 민주화 세대의 남성들이 자신의 딸세대의 모습을 보며 반성과 동시에 다음 세대의 희망을 보았다며 울컥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86세대와 MZ세대 중간에서 여기도 저기도 끼지 못하면서 동시에 ‘여기저기 낀 세대’인 필자도 다른 의미의 ‘울컥함’을 느꼈다. 그것은 함께 배우고 불러보고 싶은 ‘촛불집회 플레이리스트’ 중 ‘다시 만난 세계’와 ‘딸들아 일어나라’를 연이어 부르는 촛불 광장에서 폭발했다.
청년여성들이 응원봉을 들고 광장에 나섰다
많은 언론에서 이번 청년여성들의 높은 집회 참석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윤석열을 비롯한 한국사회의 권위주의와 안티 페미니즘 정치가 2030여성들을 광장으로 불렀다’고 분석했다. 윤석열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여성가족부 폐지’를 내걸었으며 일관되게 ‘구조적 성차별’을 무시하고 관련 제도와 예산을 없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출근길이나 화장실 등 일상의 공간에서의 폭력과 불법촬영 범죄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 그리고 친밀한 관계에서의 ‘교제살인’과 ‘딥페이크 성범죄’ 등 여성 대상 젠더폭력이 끊이지 않는다. 여성들이 처한 이러한 현실을 방관하고 부추긴 ‘안티 페미니즘 정치’에 문제의식을 가진 청년여성들이 대통령 탄핵 집회에 적극 참여하고 집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지방에는 영/영영 페미니스트가 없다?!
이러한 청년페미니스트여성의 등장은 서울과 수도권에 국한된 현상일까? 우리사회에서 1990년대 등장한 영페미니스트세대(Young Feminist)에 해당하는 필자는 지방에는 ‘젠더/페미니즘’이 없고 서울에는 ‘지역’이 없는 현실에서 내가 속할 곳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청년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이런 필자를 위로해 준 것은 놀랍게도 지금의 청년여성들이었다. 특히, 자기 자신을 ‘지방/여성/페미니스트’로서 정체화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영영페미니스트(뉴페미니스트)들의 등장이 그러했다. 이들은 서울중심주의와 지역불평등을 문제화하고 지역과 젠더의 교차적 불평등 문제에 천착한다는 점에서 이전 세대의 페미니스트와도 차별화됐다.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지 않더라도, 지금의 청년여성들은 다양한 교육과 페미니즘으로 의식화된 세대다. 반면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문화와 경제구조에 맞춰진 지역사회에 대해 부정적 경험과 인식을 하게 되면서, 자신이 나고 자란 지역이 살만한 곳인지,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곳인지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지방청년여성들이 찾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일자리’가 아닌, 다양한 삶과 성장의 기회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제주를 비롯해 많은 지방의 청년여성들이 나고 자란 터전을 떠나 수도권으로 향하거나 자신들만의 대안적인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결국 비민주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에 대한 저항이 전국 각지의 광장으로 청년여성들을 모이게 했다.
청년여성들이 외친다. 성평등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
탄핵촛불행동과 더불어 오늘날 청년여성들이 벌이는 ‘동덕여대 공학 전환 반대 운동’이나 ‘4B운동(비연애, 비성관계, 비결혼, 비출산)’ 등은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바로 ‘평등하고 안전한 민주주의 세상’이다. 촛불광장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하나되는 공동체였다. 그러나 성평등하지 않다면 민주주의도, 공동체도 없다. 이런 의미에서 촛불 이후 우리가 함께 만드는 민주주의 세상은 이제 시작이다.
강경숙 지역여성주의연구소 젠더플러스 대표 /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대학 졸업 후 찾아간 여성단체 활동이 삶의 방향이 되었다. 여성운동을 더 잘하고 싶어서 여성학을 공부했고 이후 제주에서 여성주의 교육과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문제에는 젠더(여성)가 없고 젠더(여성)문제에는 지역이 없는 현실’에 대해 주목하고, 주변화된 위치에서 제주 사회의 성찰을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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