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올해 여름은 앞으로 우리가 지구상에서 맞는 가장 시원한 해가 될지 모른다. 현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지구는 앞으로 더 더워질 것으로 예상되니 말이다. ‘기후변화’에서 ‘기후위기’ 그리고 ‘기후재난’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개념의 변화는 오늘날 전 지구적인 기후·생태 변화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경각심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은 보여준다.
그러나 기후·생태 위기는 기존의 불평등 체제와 연동돼 나타난다는 점에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폭염으로 인한 인명피해 사례만 보더라도 고령자, 농어민 또는 건설 현장 등지에서 일하는 야외노동자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기후·생태 위기는 젠더, 계급, 연령, 지역 등의 위계에 따른 불평등을 심화시키며, 기득권층은 기존 체제 유지를 위해 기후·생태 위기에 소극적으로 대응함으로써 기후·생태 변화를 가속시키고 있다.
기후·생태 위기는 지구온난화만의 문제인가?
오늘날 기후·생태 위기의 원인으로 초기에 제기됐던 근대 자본주의와 발전주의의 폐해는 온실가스 감축과 에너지 전환의 문제로 축소되고 말았다. 그리고 생태 위기를 초래한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반성과 인간과 자연이 함께 공생하는 대안적 삶에 대한 논의는 비현실적이라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
전 지구적으로 기후위기의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국제사회에서는 기후변화를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공동의 문제로 인식하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해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제한하는 노력을 이행하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지난 6월 제주도는 ‘제1차 탄소중립·녹생성장 기본계획(2024~2033년)’을 통해 정부의 2050 탄소중립 이행 계획보다 15년 앞서 탄소중립사회를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환경 및 시민단체들은 해당 계획이 기존 계획을 판박이 하는 형식적 계획으로 에너지, 건물, 수송, 농축산 분야별 대책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며 전면 수정을 요구한 바 있다. 한 예로 현재 제주도가 추진하고 있는 공장식·산업형 농수축산 정책을 유지·확대하면서 탄소중립 제주를 말하는 것은 제주 도정이 갖는 전 지구적 위기 상황에 대한 몰이해를 보여준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기후·생태 위기와 개발정책은 상관없는 문제인가?
이처럼 기후위기에 대한 국제적, 지역적 차원의 대응이 온실가스 감축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반면, 지역과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생태 파괴의 문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때문에 개발지향적인 정책 방향의 변화 없이, 형식적인 기후·생태 위기 대응 정책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제주도의 정책결정자들은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을 외치는 한편, 중산간 지역에 관광휴양형 개발사업이 허용되도록 제도를 바꾸고 여성 어업인인 제주 해녀의 삶과 문화를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고 있다.
발전주의와 자본주의 중심의 현 체제하에서는 개발정책과 보전정책이 큰 차이가 없다. 모두 경제발전이 궁극적 목적이기 때문에 개발로 인한 기후변화와 생태 파괴는 사소한 문제가 된다. 지역의 자연과 역사문화는 경제발전을 위한 자원이자 상품일 뿐이다.
그러나 제주 지역의 기후·생태 위기는 지구온난화와 같은 전 지구적 차원의 문제뿐만 아니라 지역의 개발과 환경 오염으로 인해 발생하고 있다. 올해 제주환경운동연합에서 실시한 제주 해양환경 변화에 대한 어민면접조사에 따르면, 해녀와 어부들은 제주바다의 변화와 파괴가 기후위기뿐 아니라 개발로 인한 육상오염원의 바다 유입과 해양쓰레기로 인해 발생한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제주 제2공항은 기후·생태 위기의 문제이다.
개발과 기후·생태 위기, 그리고 성평등
개발과 기후·생태 위기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아울러 오랫동안 생태뿐만 아니라 여성 또한 국가와 사회 시스템에 의해 자원이자 수단으로 동원돼왔다는 점에서 생태여성주의자들은 여성과 자연의 관계에 주목할 필요성을 제기해 왔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들은 성차별적인 문화 규범으로 인해 기후 재난의 영향과 피해를 더 많이 받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한편, 여성들은 피해자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후·생태 위기의 문제를 비판하고 저항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바다환경을 지키기 위한 해녀들의 투쟁이나 여성농민운동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외에도 지난 2021년에 실시된 제주 제2공항 찬반 여론조사에서 남성들의 응답과는 달리 여성들은 공항 건설 반대 의견이 우세하게 나타나, 개발과 환경 보호에 있어 성별 간의 의견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여성들은 개발과 기후·생태 위기의 피해자이자 변화를 추동하는 행위자라는 점에서 기후·생태 위기 대응 정책 마련뿐 아니라 대안적인 사회와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주요 주체이다.
따라서 향후 관련 정책이나 사회 변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참여와 성인지적 관점의 반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기후·생태 위기 시대는 자연과 공생하며 살아온 여성 농어민들의 생태적이고 공동체적 삶의 방식에 주목하고 근대 자본주의와 발전주의에 대항한 대안적 사회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대안적인 사회와 삶은 가능하며 이미 시작되고 있다.
강경숙 지역여성주의연구소 젠더플러스 대표 /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대학 졸업 후 찾아간 여성단체 활동이 삶의 방향이 되었다. 여성운동을 더 잘하고 싶어서 여성학을 공부했고 이후 제주에서 여성주의 교육과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문제에는 젠더(여성)가 없고 젠더(여성)문제에는 지역이 없는 현실’에 대해 주목하고, 주변화된 위치에서 제주 사회의 성찰을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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