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지난달 27일 오후 제주학생문화원 대극장에서 ‘도민 스스로 만드는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설치 설명회’를 개최했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제주도는 지난달 27일 오후 제주학생문화원 대극장에서 ‘도민 스스로 만드는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설치 설명회’를 개최했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제주지역에서 단일 행정체제인 제주특별자치도에 대한 비판은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이에 비해 제주특별자치도의 행정체제 개편을 위한 대안 모색과 공론화 작업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일부 도민들은 현 행정체제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기초자치단체의 도입이 소수의 공무원과 정치인, 개발자본가들에게만 좋은 일이 아닌지 질문하고 있다. 주민들의 의무와 책임은 더 늘어나는 반면 지역의 삶은 나아지지 않거나 더욱 핍박해지는 것은 아닌지, ‘주민자치’라는 명목으로 ‘지방자치단체’만 강화되는 것이 아닌지 하는 우려다. 아울러 제주 도정의 ‘기승전-기초자치단체’, ‘답정너’와 같은 ‘밀어붙이기식’ 태도 또한 이러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지난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는 지방분권과 자치권 강화를 위해서라기보다는, 국가의 국제자유도시 추진을 위한 전략으로 출범했다. 필자는 이런 점에서 현 제주특별자치도 체제의 한계와 개선 필요성에 동의한다. 그러나 기초자치단체 도입이 ‘주민자치’나 ‘균형발전’, 그리고 ‘도민들의 삶의 질 제고’를 위한 ‘만능키’인가 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위기와 전환의 시대에 기초자치단체 만들기를 넘어 누구나 살기 좋은 지방 만들기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지방자치제 부활의 기시감, 남성연대와 제론토크라시(gerontocracy)를 강화하는 것은 아닌가

2024년 1월, 제주도 행정체제개편위원회는 3개 시로 구성된 기초자치단체 설치안을 도지사에게 권고했고, 도지사가 이를 수용함으로써 도내 기초자치단체 설치를 위한 움직임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도내 27개 민간단체로 구성된 ‘제주특별자치도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위한 도민운동본부’가 출범했고, 도민운동본부와 도 그리고 도의회가 간담회를 통해 이에 협업하기로 약속했다. 또한 이·통장, 주민자치위원회 등 제주지역 리더들이 모여 기초자치단체 설치 운동에 나섰으며, 지역의 각 영역별 기관 및 단체 전문가들이 모여 행정체제 개편에 따른 과제 및 발전 방안에 대해 논의해 나갔다.

지난 21일 오전 제주도의회 대회의실에서 기초자치단체 도입 도민운동본부-도-도의회 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제주도의회 제공)
지난 21일 오전 제주도의회 대회의실에서 기초자치단체 도입 도민운동본부-도-도의회 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제주도의회 제공)

그러나 이러한 과정은 중장년 남성 중심의 지역 리더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여성과 청년 그리고 이주민 등 소수자들의 참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해 기초자치단체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면서도 그 추진 과정에서조차 풀뿌리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기초자치단체가 만들어지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것일까?

이처럼 지역 남성 리더 중심의 기초자치단체 도입 분위기는 지난 1991년 지방자치제 부활을 떠오르게 한다.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제주지역에서는 마을 단위의 의례가 정교해져 남성권력을 유지시키는 중요한 기제로써 작동해 왔기 때문이다. 사라졌던 마을의 포제(제주도의 각 마을에서 남성들이 유교식 제법으로 시행하는 마을제)가 부활하는 등 제주도의 각 마을에서 진행되는 축제, 체육대회 등을 통해 남성들의 가부장적 연대를 공고히 하고 있으며 남성 중심의 의례로 재탄생하였다.

같은 맥락에서 현재 기초자치단체 도입 운동의 참여자들과 그 방식을 들여다 보면, 주민자치라는 명목으로 여성과 청년, 이주민 등 소수자들을 배제하고 기존의 지역 리더 중심의 남성연대와 기득권을 가진 소수 고령자 지배체제인 제론토크라시가 강화되는 것은 아닌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성과 청년 등 소수자를 대변할 리더 비율이 낮은 제주 사회, 기초자치단체는 이들을 위한 정치 사다리가 되어줄까

이와 같이 제주사회는 지역남성리더 중심의 사회이자, 사회 전반적으로 여성과 청년 등 소수자의 의사결정 참여가 지나치게 낮은 지역이다. 특히, 제주 여성들은 지방의회 정치 진출의 기반이 되는 마을과 지역단위 의사결정 구조에도 참여가 어렵다. 제주의 여성 이장은 1.2%(172명 중 2명), 여성 어촌계장은 28.1%(103명 중 29명)이다. 43개 읍면동마다 설치돼 있는 주민자치위원회의 위원장 중 여성은 1명에 불과하다. (관련 기사:제주 주민자치협의회 여성 임원 '0명'...도내 여성 이장도 2명에 불과) 제주는 2014년에서야 지역구 여성 도의원을 배출하기 시작한 지역으로, 기초의회가 있을 당시에도 여성 기초의원은 전무했다. (관련 기사:제주도의회 개원 이래 여성의장 '0명')

다만 제주지역은 2006년 특별자치도 출범으로 인해 기초자치단체가 사라지면서, 같은 해에 기초의회에 도입된 비례대표제와 현재 기초의회에만 적용되는 중선거구제로 인한 변화를 경험하지 못했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결과를 보면, 여성 당선자가 ‘광역의회’ 19.8%(지역구 14.8%, 비례대표 62.4%), ‘기초의회’ 33.4%(지역구 25.0%, 비례대표 90.2%)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제주도도 기초자치단체가 도입되면 기초의회의 경우 1개 선거구에서 2인 이상 4인 이하의 대표를 선출하는 중선거구제가 적용되어 소수대표자도 선출될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그럼에도 주목해야 할 점은 전국적으로 여성 정치인은 광역의회보다 기초의회에, 지역구보다 비례대표를 통해 정치에 입문하는 특성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여성들은 기초의원에서 광역의원으로,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으로 경력 상향이동에 한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여성가족연구원이 21대 국회 당선인을 중심으로 실시한 ‘지방의회 여성의원의 경력이동’ 연구에 따르면, 21대 국회의 여성의원 57명 중 지방의회 경력을 가진 경우는 총 6명으로 지방의회로 시작해 국회로 경력 상향이동을 한 여성의원은 전체 여성의원의 10.5%인 10명 중 1명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지방의회의 여성의원이 처한 이러한 현실은 특히 제주지역의 남성 국회의원이나 도지사가 대부분 지방의원 출신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리고 제주에 기초자치단체와 기초의회가 도입되더라도 여성의 정치 참여 및 정치 경력을 쌓아가는 데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앞선 연구에서 분석한 것처럼, 지방에서 풀뿌리 정치 참여를 강조하면서도 여성은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낮다고 인식되는 지방의회와 자리에서만 그 역할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 아닌지, 풀뿌리 정치의 강조가 중앙과 지방 또는 광역과 기초의 이원화 구조를 강화하는 것은 아닌지 고찰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결국 제주 사회의 전반적 의사결정 구조의 남성 중심성에 대한 문제 제기 없이는 여성 및 소수자의 정치 대표성 강화에는 한계가 있다. 기초자치단체 도입은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지역의 여성과 소수자의 정치 대표성 강화를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인 제도 및 문화 전환이 필요하다. 

12일 오전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제주특별자치도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위한 도민운동본부 출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12일 오전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제주특별자치도 기초자치단체 도입을 위한 도민운동본부 출범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도민 자기결정권의 ‘도민’은 누구이며, 어떠한 ‘결정’인가

그간 민선8기 제주도정을 중심으로 기초자치단체 도입 필요성을 주장해 온 주요 이유는 ‘도민의 자기결정권’과 ‘균형발전’을 통한 도민의 삶의 질 제고이다. 그러나 여기서 ‘도민’은 누구를 말하며, 어떠한 ‘결정’인가는 이야기되지 않는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말하면서도 여전히 오랫동안 개발에서 소외된 도민들이 어떠한 식으로든 참여하기면 하면 된다는 ‘절차적 민주주의’에 그치는 것은 아닐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도민은 단일하며 대표성을 지닌 존재로 여겨지는 것과는 달리 실제 정책과 개발 과정에 참여하는 도민은 특정 성과 연령, 계층, 출신지 등으로 제한돼 있다. 그리고 이들은 지금까지 봐왔듯이 경제발전을 들어 개발과 생태 위기를 초래하는 ‘결정권’을 행사해 왔다. 개발주의자들과 지역엘리트들 그리고 ‘소외’를 극복하고자 하는 도민의 욕망이 결합하여 지금의 ‘개발자치도’가 만들어져 온 것이다.

기초자치단체가 도입되면 달라질까? 글쎄다. 제주도민은 누구이며 어떠한 결정을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 없이 ‘변화’는 요원하다. 이는 누구나 살기 좋은 제주 사회를 만드는 과정에 성별, 연령, 계층, 이주배경, 장애 유무 등에 따른 다양한 사람들의 활발한 참여와 연대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위기와 전환의 시대, ‘지방자치단체 만들기’를 넘어 누구나 살기 좋은 ‘지방 만들기’가 필요하다. 

자본과 남성 중심의 기득권을 가진 체제는 여성과 청년 등 소수자들에게 정치 참여의 기회도, 그들의 삶의 기회도 상실하게 만든다. 그로 인한 결과는 저출생과 청년세대 유출, 그리고 지방인구소멸 등의 위기이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가 주력해야 할 과제는 지방자치단체 만들기를 넘어 다양한 도민들이 나고 자란 제주를 떠나지 않고 살 수 있는 ‘지방’을 만들고 강화하는 일이다.

강경숙

강경숙 지역여성주의연구소 젠더플러스 대표 /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대학 졸업 후 찾아간 여성단체 활동이 삶의 방향이 되었다. 여성운동을 더 잘하고 싶어서 여성학을 공부했고 이후 제주에서 여성주의 교육과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문제에는 젠더(여성)가 없고 젠더(여성)문제에는 지역이 없는 현실’에 대해 주목하고, 주변화된 위치에서 제주 사회의 성찰을 시도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