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2025년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개최도시 선정을 앞두고 현직 해녀가 오영훈 제주도지사와 나란히 발표자로 나서 주목을 받았다. 역사적으로 국가나 지역의 어려운 굴곡마다 해녀는 어머니이자 지역과 가족을 먹여 살리는 생계부양자, 산업역군, 문화관광자원 등 다채로운 모습으로 ‘나섰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날 제주를 대표하는 지역 자원이자 브랜드로서 해녀의 역할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그러나 해녀 또는 해녀문화가 지역 홍보와 발전을 위한 자원으로 의미화될 때, 정작 해녀문화(어업)의 지속가능성은 담보하기 어려워진다는 우려 또한 상존한다. 이 글은 제주도정의 해녀 문화와 어업 유산화 정책이 해녀문화를 정의함에 있어 전통문화 또는 지역 자원이라는 틀을 넘어 보다 대안적이고 새로운 시각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그러할 때 돌봄과 생태 위기 시대의 대안적이고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으로서 해녀문화의 지속과 보전을 위한 방안이 모색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녀 문화와 어업은 어떻게 유산이 되었나?
제주해녀 수의 감소현상은 한국사회의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197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2023년 말 기준, 제주에는 총 2839명의 현직 해녀가 있으며 이 중 90%가 60대 이상의 고령자이다. 해녀들에게 은퇴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80대 해녀들이 물질을 그만두는 경향을 고려할 때, 10년 안에 60%의 해녀가 감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대로 간다면 10년 후 제주 해녀는 300명도 채 남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해녀의 감소에 대한 우려와 관심은 지금보다 해녀가 감소하기 시작한 1970년대부터 해녀문화의 유산 등재가 이루어지기 전인 2000년대 초반까지가 더욱 뜨거웠던 것 같다. 이와 같은 해녀에 대한 관심은 2000년대 들어 시작됐다. 학계와 행정을 중심으로 해녀문화의 보존 방안을 모색하고 정책개발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제주해녀를 무형문화재로 보전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고, 이는 2016년 제주해녀문화의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해녀 문화와 어업 유산화 정책의 문제는 무엇인가?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해녀문화의 보전을 위한 도구였던 ‘유산화’ 전략은 유산 등재 이후 목적 자체가 되고 말았다. 지역사회에서 왜 유산 등재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었는지와 같은 사회적 맥락은 탈각되고, 유산 등재로 해녀문화의 보전 과제를 달성했다는 듯이 이후 해녀문화의 보전 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들은 급격히 사라져 갔다. 그리고 그 빈공간은 해녀문화의 상품화와 사유화가 차지했다.
이는 도내외의 많은 사람들이 해녀문화를 문화관광콘텐츠와 같이 협소한 의미로 이해하도록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해녀 문화와 어업(실제 생업)을 구분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해녀의 삶에 있어 해녀 문화와 어업은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해녀유산의 상품화와 사유화이다.
이러한 문제는 제주 도정의 해녀 문화와 어업 유산화 방향과 정책에서 잘 드러난다. 지난해 제주도는 해녀어업의 세계주요농업유산 등재를 홍보하며 정책과제로 해녀 축제와 홈스테이, 해녀 공연 등 관광 자원화 방안을 중점적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러한 정책 방향은 신규 해녀 양성을 강화한다고 하더라도 관광자원으로의 해녀와 해녀문화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도의 해녀유산정책은 그 의미와 목적을 ‘지금-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와 같은 대안적 ‘삶의 생산’이 아닌 문화·관광 관련 ‘상품의 생산’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대적 발전주의와 자본주의적 시각은 제주 사회의 리더들이 공유하고 있는 기본 관점이다. 대표적으로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얼마 전 공식 석상에서 “해녀의 물질은 위험하고 전근대적인(저발전) 노동방식이기 때문에 이를 지양하고 ‘해녀 공연’이나 ‘해녀 식당’ 등 문화관광 콘텐츠 개발을 통한 소득 창출 방안이 더 필요”하다며, 해녀 양성에 회의적인 입장을 밝혀 논란이 되었다.
이와 같은 발언이 왜 문제인지 모르는 것, 그래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을 보며 다시 한번 탈식민이론에서 말하는 ‘인가된 무지(sanctioned ignorance)’를 떠올린다. 식민지배자가 피지배자의 관념이나 문화를 두고 자신에게 스스로 허용하는 오만한 무지.
‘좀녀 아니 댕기믄 바당 엇어져 갈 거’
앞서 해녀의 감소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이 해녀문화 보전을 위한 유산화 전략으로 이어지는 배경과 과정을 살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에서 사회 각계가 주목한 것은 해녀 수 감소 자체라기보다는, 해녀뿐 아니라 해녀문화(어업)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우려였다. 해녀문화의 보전 주체는 해녀이기에 해녀들이 사라지는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직 고령 해녀들은 자신을 포함해 해녀의 고령화와 감소 현상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있다. 얼마 전 해녀들은 「제주해녀생애사」를 통해 ‘좀녀 아니 댕기믄 바당 엇어져 갈 거(해녀가 없으면 바다도 사라질 것이다)’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는 해녀가 사라지면 바다를 가꾸는 해녀의 공동체적이고 생태적인 문화도 사라지고 결국 바다 생태계도 파괴될 것이라는 살아있는 지식이자 일종의 ‘경고’이다.
돌봄 및 기후 위기 시대, 해녀문화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야
2016년 제주해녀문화(Culture of Jeju Haenyeo(Women Divers)가 세계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될 수 있었던 이유는 ‘지속 가능한 발전’에 기여한 바가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오랫동안 지속해 온 해녀공동체의 돌봄과 생태 친화적 삶의 방식에 대한 지속과 보전의 필요성이 국제사회에서도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제주도정의 해녀문화·어업 유산화 방향은 지역사회의 경제적, 사회적 주체인 해녀들의 삶과 분리된 채 추진됨으로써 해녀문화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사회적 담론 형성에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해녀들은 각종 축제와 문화·관광 행사에서 열연하고 찬사를 받는 한편, 실제 해녀들의 삶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것이자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고 있다. 또한 해녀공동체가 생존권과 공동체를 위해 바다를 오염시키는 개발 정책을 모니터링하고 투쟁한다는 이유로 이기적인 집단으로 매도되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전히 바다 공유지를 기반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해녀들의 공동체적이고 생태적인 다양한 활동들은 드러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가치를 모색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앞으로의 해녀유산정책의 방향은 기존 유산화 전략의 추진 배경과 목적을 다시금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해녀 유산에 대한 지역사회의 이해 제고와 공감대 형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부터 해녀문화에 대한 이해 제고가 선행돼야 한다. 이는 또한 기후 위기와 생태 파괴에 대응하여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삶의 방식을 ‘지금-여기’ 우리의 삶으로 연결해 나가는 매우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라 하겠다.
강경숙 지역여성주의연구소 젠더플러스 대표 /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대학 졸업 후 찾아간 여성단체 활동이 삶의 방향이 되었다. 여성운동을 더 잘하고 싶어서 여성학을 공부했고 이후 제주에서 여성주의 교육과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지역문제에는 젠더(여성)가 없고 젠더(여성)문제에는 지역이 없는 현실’에 대해 주목하고, 주변화된 위치에서 제주 사회의 성찰을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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