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제주도 전체가 예민하고 조심한 날이었다. 제6호 태풍 카눈의 이동 경로에 제주의 동쪽 지역이 직접적인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미디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예보되는 태풍의 경로를 예의주시했다. 혹시라도 발생할지 모르는 피해에 대해 염려와 걱정의 마음이 가득했던 이날. 다행히도 태풍은 제주 바다에 거친 으르렁거림을 살짝만 보여주고 사라졌다.
이날 태풍으로 인한 염려와 걱정이 극한에 달했을 사람이 평대에 있었으니, 그 주인공은 뮤지션 태히언님이다.
그는 올해 첫 여름 7월 6일부터 8월 17일까지 그 주의 목요일 오후 6시에 평대의 바다에서 펼쳐지는 ‘평대 선셋 Live’라는 소담스런 공연을 기획하고 실천에 옮긴 장본인이다.
이날은 공연이 예고된 날이었는데, 하필 그날 태풍의 경로상에 공연장소가 인접해 있었다. 짐작하건대 그의 마음은 레일의 고저가 지상에서 에베레스트의 정상을 넘나드는 롤러코스터와 같았을 것이다.
태히언님은 제주살이 8년차의 실력파 뮤지션이다. 레게와 포크 장르를 넘나드는 이른바 '저세상' 그루브를 연주하는 베이스 기타 연주자 겸 싱어송라이터다.
작년 8월의 어느 여름날 저녁, ‘제주 인디 라이브’ 클럽에서 펼쳐졌던 ‘오마르와 동방전력’의 공연무대에서 태히언님을 처음 알게 됐다. 그날 공연에서 태히언님의 베이스 기타 연주는 방구석 베이스 기타 연주자인 내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다른 차원의 리듬과 그루브 그 자체였다.
그날의 공연무대의 인연으로 태히언님의 SNS를 팔로우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SNS에 ‘평대 선셋바당 Live’라는 공연 공지를 보게 됐다. 다양한 장소와 무대에서 벌어지는 공연을 리뷰했던 나에게 이는 새로운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다가왔다.
‘평대 더하기 공연’이라. 어색한 조합이다. 제주 지역의 마을과 음악공연이 만나는 기획과 시도가 지금까지 있었었나? 태히언님을 직접 만나 공연의 기획과 취지를 물었다.
나의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평대 선셋바당LIVE는 평대의 청년들과 작은 가게들이 모여 바닷가에서 노을을 함께 감상하면서 즐기는 조그마한 음악회를 만들어 보자는 마음으로 시작된 라이브 공연입니다. 약 한 달간 매주 목요일 총 7번의 공연을 기획했어요.
주최.주관하는 뿌리자레코드는 레게 싱어송라이터 태히언의 원맨 인디레이블인데요. 선셋마당LIVE라는 공연과 디제이 파티 등을 몇해 전부터 기획해왔고, 이번에는 평대계절음식점의 장소와 식사 제공으로 오랫동안 꿈꾸던 바닷가에서의 공연을 마련했습니다.
동네 작은 가게들에서 마음을 모아, 무대도 만들고(선셋봉고), 음료 제공(그시절그바다, 평대베를린), 디자인(슬로우슬로우퀵퀵) 해주기 등등으로 협찬을 해줘서 이 공연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매주 목요일마다 노을질 무렵에 평대바닷가에서 모여 라이브 공연을 즐깁니다. 주말에는 이것 저곳에서 크고 작은 축제들이 있어서 목요일로 정했고, 이 긴 장마동안에도 지금까지 한번도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제주에서 활동하는 싱어송라이터들이 현재까지 출연하였는데, 젠얼론, 준리, 태히언, 남수, 사이, 여유, 이소, 조민규, 모허 등이 있어요. 또 레인보우99, 윤영로(가람과 뫼), 이디라마, 차해랑, 봉고세션 등 포크와 앰비언트, 국악 등의 무대가 계속 이어질 예정입니다.”
나는 이날 그와 만나 이 공연에 대해 의미 있는 대화른 나눴다. 그는 본인의 공연기획에 대해 좀 더 깊숙이 들어간 의도와 생각들을 풀어놨다.
그는 ‘도심을 찾지 않더라고 로컬의 지역 마을에서 즐기는 공연과 문화’를 기획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 기획을 실제로 옮기기 위해 평대 주민들과 진심의 소통을 나눴다고. 이 대목에서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주의 동서남북 읍면동 로컬 지역들이 가지고 있는 그들만의 독특한 색과 전통, 그리고 다양성이 존재한다.
여기에 그 지역을 찾아가야만 체험할 수 있는 공연과 문화행사가 더해진다면 또 다른 형태의 지역 친화형 관광·문화 카테고리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이 공연같은 지역 진화적인 기획으로 인해 그동안 제주의 유명 관광지로만 한정되었던 관광 및 소비의 패턴에는 변화가 생긴다. 읍면동의 마을을 찾고 그곳만의 공연과 문화를소비하는 새로운 형태의 부가가치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큰 그림을 평대 주민인 태히언님이 실천에 옮기고 있었다. 그의 전언에 따르면 ‘평대 선셋바당 Live’는 평대 마을 전체를 라이브 무대의 음악으로 덧입히게 만든 최초의 사건이라고 했다.
실제로 이날 공연을 찾은 관객분들은 대다수가 공연을 보기 위해 일부러 마을을 찾은 도외 분들이기도 했으니, 태히언님의 의도는 분명히 통했다. 그는 내 마을에서 청년회원으로 활동하는 나에게도 예기치 않은 고민과 과제를 내게 던져줬다.
그의 공언처럼 이날은 하늘이 맑았다. 물론 태풍이 무사히 지나가긴 했지만 신기하게도 비한방울 내리지 않았다. 태히언님도 날씨의 아이인 걸까?
이날 공연에서 또 다른 신선함을 접할 수 있었다. 가야금 연주, 드림 팝, 그리고 잔잔한 포크로 연결되는 몽환적인 사운드의 흐름과 연결의 공연무대였다.
노을 지는 평대 바다의 배경과 제대로 어우러짐을 고심한 기획자의 진지하고도 잔잔한 배려를 엿볼 수 있었다. 로컬에서 즐기는 공연과 문화라는 화두와 함께 누군가의 작은 실천과 움직임을 확인한 현장을 목격했다. (공연 영상 link1, link2)
Rock음악을 하두 좋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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