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끝났다. 이제야 말로 진정한 2023년의 여름인 것이다. 해가 바뀔 때마다 맞이하는 여름 계절이지만 여름은 어떻게 된 것인지 해마다 폭염이라는 심술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하여 나타난다. 올해는 또 얼마나 더울 것이고 또 습할까?
개인적으로 나는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름이 호흡하는 덥고 후끈한 공기가 싫다. 아니면 배 나온 중년의 몸뚱이는 반팔 셔츠로 좀처럼 가려지지 않는다는 서글픈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어서일지도.
SNS를 통해 새연교 콘서트 소식을 접했다. 피하고 싶은 여름 계절의 심술이 싫어 방문 걸어 잠그고 에어컨 바람 맞으며 시원시원한 방구석 주말을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제주시가 아닌 서귀포시에서 벌어지는 한 여름밤의 콘서트 유혹을 버틸 재간이 없더라.
내가 사는 집을 기준으로 새연교는 먼 거리이다. 하지만 지난번 안덕면 서광리 공연장까지 큰 결심으로 콘서트를 보러 가지 않았나. 이번에도 마음 단단히 동여매고 목적지 새연교를 향해 평화로를 내달렸다.
차로 약 1시간을 달려 도착한 새연교. 나는 제주도민이지만 새연교는 처음이다. 이번 콘서트라는 핑계가 아니었다면 새연교를 보고 또 새연교 다리 위를 걸을 수나 있었을까?
제주시에 사는 게으른 집돌이 중년을 새연교까지 오게 해서 공연을 관람케 했으니 이번 새연교 공연 기획자의 승리이다.
새연교 콘서트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니 2023 새연교 콘서트는 ‘토요일밤 올아보카~, 토요일밤 즐겨보카?!“ 라는 이색 케치프레이즈를 걸고 7월 8일부터 8월 5일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밴드, 싱어송라이터 및 공연팀들의 공연이 도민과 관광객들에게 펼쳐지는 공연 이벤트라고 한다.
이날 무대는 야외에서 진행됐다. 공연무대와 가지런히 놓인 관객용 의자들, 그리고 분주히 무대를 살피는 엔지니어 및 진행 요원들의 모습들이 보인다. 생각해 보니 나는 주로 실내 공연장에서만 콘서트를 직관했었다. 나에게 이번 새연교 콘서트는 처음 경험하는 서귀포에서 벌어지는 야외 콘서트의 의미인 셈이다.
어느덧 약속된 공연 시간을 알리는 MC의 멘트와 함께 본격적인 2023 새연교 콘서트의 8월 5일 공연이 시작되었다.
첫 스타트는 버블아티스트 김용운 님의 버블쇼. 버블아티스트 김용운 님의 비눗방울 묘기에 관객들의 탄성과 환호가 여기저기서 연발했다.
굵직한 무대에서 수차례 공연했었던 연륜인 건가? 김용운 님의 여유로운 소통과 비눗방울이 만들어내는 예측 불가의 기기묘묘한 모양과 형태는 그야말로 관객을 들었다 놓는다. 특히 이날 부모님 손을 부여잡고 공연장을 찾은 어린이 관객들에게 절대적인 호응과 지지를 얻어냈다.
이날 새연교 공연을 보기 위해 그 먼 거리를 달려 온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노래하는 이들이 밴드의 형태가 아닌 솔로 가수들이 등장하는 콘서트였다는 사실이다.
'이서현, 주낸드, 홍조 × 한스' 라인업. 록 밴드 성향의 음악을 좋아하는 내가 솔로 가수들의 무대를 찾은 사실은 마치 학창시설 미지의 데이트 상대를 기대하게 하는 두근거림이었다.
나에겐 록 밴드 음악은 중독성 강한 매운 낙지볶음과 같다. 그 중독성 때문에 편식만 했던 것이다. 여름날의 콩국수처럼 담백한 뭔가가 필요했다. 나는 그 담백함을 이날 새연교 콘서트에서 찾을 요량이었다.
이서현님의 무대는 처음 봤다. 하지만 그녀와의 만남은 처음이 아니다. 나는 이서현 님의 ”바람“이라는 싱글 곡을 음원사이트에서 정당한 금액을 지불하여 가지고 있고, 심지어 그 곡을 작사, 작곡 및 프로듀싱한 오진화 PD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PD와 두 번째 만남이 있었을 때 그의 발라드 곡인 '바람을 이야기 했었다. 노래도 좋았지만 가사의 감성선을 잡고 슬피 노래하는 묘한 음색, 곡의 클라이막스에서 시원하게 뚫고 올라가는 고음. 나는 이 여자 보컬에게 감명을 받았다고 그에게 고백하고, 또 질문했다. 도대체 이 여자가수가 누구냐고.
그 가수가 지금 관객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고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했다. 이서현님은 이날 발라드와 댄스를 적절히 배치하고 시원시원하게 노래했다. 관객들과의 소통능력이 돋보이기도.
놀랍게도 관객들 중에선 이서현 가수를 향한 팬심의 글을 담은 피켓을 들고 나온 팬들도 몇몇 목격했다. 제주시에서는 이서현 님의 무대를 못 본 것 같은데 아마도 주 활동무대가 서귀포 쪽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제주시에서도 종종 무대를 가져줬으면 하는 희망사항은 그냥 개인적 욕심일까? (영상 link)
다음 무대는 남자 싱어 주낸드의 무대. 꿀 같은 감미로움이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거의 매일 처럼 분노의 록 음악과 메탈 사운드에 절어있는 나에게 주낸드가 풀어내는 저 발라드는 분명 해독제일 것이다.
그는 작사·작곡 능력을 장착한 제주에선 좀처럼 보기드문 남성 발라더이기도 하다. 이날 공연에서도 본인이 작사·작곡한 발라드 타이틀을 노래했다. 주낸드는 자신이 노래한 자작곡에 대해 드라마 OST처럼 만들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나에겐 이미 잔잔한 멜로드라마의 주제가였다(link).
이날 마지막 무대, 홍조 × 한스. 내가 기억하는 홍조는 여성 듀오팀이다. 그런데 이날 보컬 홍조와 일렉기타 한스(양한슬)의 조합으로 변신하고 무대에 섰다. 일렉기타의 한스님은 최근 내 자작곡작업에 기타세션으로 함께해주신 고마운 인연이기도 하다.
홍조는 예전 제주의 굵직한 행사무대에 가면 어김없이 등장했던 인지도 높은 뮤지션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 콘서트에서 홍조를 처음 접했다. 익히 홍조의 유명세를 알고 있었기에 기대감은 무척 높았다.
무대가 펼쳐지자 하나둘씩 노래와 연주로 풀어 놓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공연장을 적셨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스토리의 밀도는 높았고 그 방식은 고전적이면서도 모던했다. '오돌또기가 저렇게도 해석이 되나?'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일렉기타의 선율이 묘하게도 어우러졌다.
제주의 전통민요를 일렉기타 사운드로 크로스오버한 신선한 시도가 돋보였다. 이외에도 유명한 재즈 타이틀 곡 'fly me to the moon'을 홍조와 한스만의 해석으로 들려줬다. 무대를 보며 이들의 유명세 이유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link).
잔잔한 무대를 끝으로 8월 5일 버전의 2023 새연교 콘서트는 마무리됐다. 이날 공연을 보며 느낀 강렬한 인상이 있다. 제주도의 멋진 자연환경과 풍경은 음악이 접목되는 순간 그 빛을 한층 더 발한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보물 같은 섬 제주에서 바로 내 옆에 그림 같은 풍경이 있고 더불어 눈과 귀, 그리고 바로 앞에서 감정선을 두드리는 생생한 라이브 음악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영화에서나 봤었던 휴양지에서의 판타지가 현실이 되는 순간일 것이다.
새연교 야외 콘서트의 잔잔하고 깊은 여운을 뒤로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자성했다. '나는 지금까지 음악에 대한 편식이 너무 심했구나.' 한여름밤 새연교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나는 캡사이신 가득한 고통의 비빔면이 아닌 부드럽게 속을 달래는 담백한 콩국수를 즐겼다.
Rock음악을 하두 좋아해서
락하두라 스스로를 자칭하는
평범한 중년의 제주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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