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는 여름』 권정생 글, 고정순 그림, 단비 펴냄(사진=은종복)
『눈이 내리는 여름』 권정생 글, 고정순 그림, 단비 펴냄(사진=은종복)

2020년에 나온 책이다. 책에 담긴 글은 권정생이 1970년 6월에 썼다. 올해가 2023년이니 53년 앞서 쓴 글이다. 1970년이면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도 먹었다. 그땐 동네에서 축구를 하다가 목이 마르면 수돗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수돗물이 없으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도 마셨다. 글쓴이는 그때 벌써 지구가 더럽혀지는 것을 알았다. 한 여름에 눈이 내린다는 상상을 했다. 지금 세상에선 전혀 이상하지 않다.

지구 곳곳에 여름에 눈이 내리고 겨울에 폭우가 쏟아진다. 사람들은 점점 지구가 더워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지구 온도가 1750년 뒤로 산업기계문명이 이루어지면서 곧 섭씨 1.5도가 올라갈 것이다. 사람도 정상일 때는 몸 온도가 섭씨 36.5도다. 몸 온도가 섭씨 38도가 넘으면 병원에 간다.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구 온도가 올라가면 어떤 병원에 가야 할까. 지구 온도를 낮추는 것은 지금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다.

1970년에는 전태일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옥 같은 노동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외치며 몸을 불살랐다. 그때나 지금이다 마찬가지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기계를 하루 종일 돌려서 돈을 더 많이 벌려 한다. 그럴수록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이산화탄소가 많이 나와서 지구는 뜨거워진다. 지구는 간빙기와 빙기를 번갈아가면서 겪었다. 간빙기 때는 지구가 뜨거워지는 때다. 지금 지구는 간빙기다. 이 시기가 지나면서 갑자기 추워지는 빙기가 온다. 여름에도 눈이 내린다. 눈이 몇 달 동안 내린다. 아니 몇 년 동안 내릴 수도 있다.

“복숭아나무에는 갓난아기 주먹만 한 까툭복숭아가 가지가 휘어지도록 열려 있었습니다. 파란 불빛은 그 복숭아가 전등처럼 불을 밝히고 있었던 것입니다. 크리스마스트리같이 아름답습니다. 복숭아나무는 임자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길을 걷다가 배가 고프면 한두 개씩 따 먹었습니다. 더욱이 나무 아래에서 맑은 샘이 흐르기 때문에 나그네들은 곧잘 이 복숭아나무 밑에서 쉬어 가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복숭아나무 둘레가 파란 불빛으로 밝았기 때문에 아이들은 무서움이 가시었습니다.”

이 책에 담긴 글이다. 일곱 아이들은 빨가숭이로 멱을 감다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에 놀란다. 추워서 옷을 주섬주섬 입고 서로 손을 꽉 잡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눈과 추위로 길을 잃는다. 영찬이는 자기 집 강아지 흰둥이를 때려서 피가 나도록 했다. 그 강아지가 구슬피 울며 영찬이 앞에 쓰러졌다. 영찬이는 흰둥이를 불쌍하게 여겨서 흰둥이를 껴안는다. 영찬이 온몸이 따뜻해지고 흰둥이도 쌔근쌔근 잠이 들며 살아난다.

또 아이들은 앉은뱅이 탑이라는 마흔 살이 넘은 여자 어른을 살려준다. 탑이는 두 쪽 다리가 오그라들어 일어설 수가 없고, 몸엔 뼈만 남았다. 탑이 추워서 얼어 죽겠다고 말을 하자, 아이들은 둥글게 몸을 감싸서 그 안에서 탑이 몸이 따뜻해지도록 한다. 탑이 누더기 옷에는 고약한 냄새가 났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했다. 그러자 둘레가 조용해지며 반딧불처럼 파란 불빛이 아지랑이같이 피어오르고, 까툭복숭아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그 나무로 까마귀, 까치, 제비, 참새, 딱따구리, 뻐꾸기, 꾀꼬리, 파랑새가 날아왔다. 또 소, 말, 양, 돼지, 토끼, 노루, 사슴, 호랑이, 늑대, 여우, 다람쥐도 모여 들었다.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눈이 내리고 추위는 더해간다. 한 그루 복숭아나무가 그들 모두를 살릴 수 있을까. 글쓴이는 노랑나비가 가득 날고 있었다고 썼다. 아이들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저희들은 버리고 먼 곳으로 가 버린 것같이 쓸쓸하다고 썼다. 아이들은 다시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노랑나비 떼들이 쌍쌍이 머리 위에서 빙빙 돌고 있다고 썼다. 햇살이 쏟아지고 파란 하늘이 펼쳐지고 산과 들이 푸르게 빛났다. 이것이 꿈이 아니기를. 죽음 뒤에 오는 세상이라면 참 슬프다. 수채화로 담담하게 그려서 더 슬프다.

글쓴이 은종복 씨는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한 인문사회과학 책방 '제주풀무질'의 일꾼이라고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책과 사회를 또박또박 읽어내려가는 [또밖또북] 코너로 매달 마지막 주에 독자들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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