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신화들, 그 중 먼지에 쌓여 존재감이 희미해진 이야기들을 다시금 햇살 아래로 끌어내고자 하는 마음에서 [꼬닥꼬닥_마을신화]연재를 시작한다. 구술 채록된 제주 마을의 신화 가운데 서사를 갖춘 이야기를 중심으로 동료 연구자들과 토론도 하고 답사도 진행했다. 마을에 전해오는 신화를 공유하고 보전하는 것은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자연의 신성성을 되찾는 작업이 될 것이라 믿는다.
서울 사는 황정승이 중병에 걸려 백약이 무효였다. 그러던 중 지나가던 대사가 황소의 더운 피를 먹으면 병이 낫겠다고 얘기했다.
황정승이 황소를 잡으려 백정을 수소문했으나 한 사람도 찾을 수 없었다. 황정승을 역적으로 간주한 나라에서 혹여나 황소의 피를 먹고 살아날까 염려하여 백정들을 모조리 가두어버렸기 때문이다.
황정승이 고심 끝에 큰아들을 불러 소를 잡아보라고 일렀다. 큰 아들은 기겁하면서 소를 잡을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둘째 아들을 불러 부탁하여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셋째 아들한테 부탁하니 다행히도 한 번 해보겠다고 나섰다.
셋째 아들은 참실로 소 모가지를 묶고 벼락같이 고함을 쳤다. 그러자 소가 놀라서 그 자리에 쓰러져 죽었다. 셋째 아들은 황소의 피를 뽑아 아버지께 드렸고, 황정승은 피를 마시고 마침내 원기를 회복하였다.
황정승은 병을 떨치고 일어났으나 셋째 아들이 걱정되었다.
“너는 역적을 살린 죄인이 되었으니 여기서 살 수 없다. 군졸이 들이닥치기 전에 어서 도망가거라.”
셋째 아들 어매장군이 급히 도망을 가는데,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전라도로 해서 제주에 당도하였다. 구좌 골막(동복리)으로 배를 대고 섬에 올라선 셋째 아들은 우선 장군혈을 찾아보았다.
그때 시흥리 허풍헌이 풍헌 벼슬을 살러 지나가고 있었다. 작은 아들은 참매로 변하여 앞길을 어지럽혔다. 그러자 허풍헌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떤 짐승이 앞을 어지럽히고 있느냐?”
어매장군은 이만한 기개면 풍헌 벼슬을 살 만하다고 인정하고 순순히 길을 비켜주었다.
어매장군이 다시 길을 떠나 종달리로 들어섰다. 종달리에는 여자들이 삼태기를 들고 소금 일을 하느라 시끌벅적했다.
“이곳 사람들이 너무 드세서 좌정할 곳 못 되는구나.”
이번엔 심돌(시흥리) 큰물머리로 가보았다. 마침 그곳에 장군혈이 있어 좌정할 자리로 적당했다. 그런데 장군혈에 가보니 허풍헌이 이미 그 자리에 조상의 묘를 써버렸다. 별도리가 없어 송당 높은오름에 올라 옥퉁소를 불면서 날을 새고 놀았다.
어매장군이 한라산으로 올라 오백장군 구경하면서 심기일전 마음을 다잡은 다음 다시 장군혈을 찾아 나섰다. 정의골 멍둥마루에 장군혈은 있어 내려갔는데, 관가에서 죄인들을 끌어다 매를 치고 있었다.
“비명이 그치지 아니하니 볼썽사납구나.”
다시 길을 떠나 난미(난산리) 장군혈로 들어섰는데 골미당(소의 당)이 있어 격이 떨어져 보였다. 그래서 와갱이(삼달리)로 내려왔는데, 가난한 형편이라도 벼룻물도 좋고 세숫물도 좋은 것이 좌정할 만하였다.
어매장군은 와갱이에 좌정하기로 마음먹고 마을을 둘러보았다. 이리저리 살펴보니 김 씨 영감이 병이 들어 죽어가고 있었다. 어매장군이 김 씨 영감의 꿈에 나타나 일렀다.
“흰 돌래떡, 시루떡에 소주를 마련하고 고방의 널판 위에 나를 모시면 너를 살려줄 터이니 그리 알라.”
김 씨 영감이 잠에서 깨자마자 어매장군이 일러준 대로 제물을 장만하고 제사를 지냈다. 그랬더니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김 씨 영감이 병을 떨치고 일어난 후 상통천문 하달지리, 세상 이치를 깨닫고 죽을 사람 살 사람 척척 알아맞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소문이 널리 퍼지니 사람들이 줄지어 찾아와 문전성시를 이루어 김 씨 영감은 삽시간에 부자가 되었다.
어느 해부턴가 흉년이 들어 한 해 두 해 아홉 해 계속되니 죽어가는 사람들이 사방에 가득하였다. 그러자 김 씨 영감이 재산을 풀어 한 집에 곡식 닷 되 한 말씩 나누어주었다. 그 덕에 백성들이 어려운 고비를 넘기며 거듭되는 흉년을 버티게 되었다.
이 일을 알게 된 조정에서 김 씨 영감에게 통정대부 벼슬을 주었다. 김 씨 영감은 벼슬을 받고도 이웃에 점을 쳐주고 심방 일을 하다가 죽었다. 조정에서는 그간의 공을 인정하여 김 씨 영감을 기릴 수 있도록 밤나무로 만든 신상(神像)을 내려보냈다.
그로부터 와갱이(삼달리)에서는 황서국서 어매장군과 함께 김 씨 영감을 본향신으로 모시며 정월 2일, 2월 13일, 7월 13일에 제를 올린다.
(현용준, 『제주도무속자료사전』의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
신화연구가 강순희는 『제주신화의 숲』에서 ‘삼달리본향당본풀이’의 주인공을 황소의 신격으로 보고 있다. 신화 속 서사는 황소를 부림소, 즉 밭갈쇠를 만드는 과정을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한다. 나이 든 황소가 일을 못 하게 되자 어린 소를 길들이게 되었고, 어린 소가 일소가 되는 과정은 장군이 되어 좌정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신화 속에 펼쳐지는 서사와 부림소를 만드는 과정을 하나하나 대응시키지 않더라도 ‘황서국서 어매장군’이라는 신의 이름을 보는 순간 황소가 음매하고 우는 광경이 절로 그려진다. 그러니까 황서국서 어매장군은 황소의 신격이자 세경본풀이(제주도 지역의 무당굿에서 구연되는 서사무가)의 정수남이(마소의 수호신)처럼 황소를 관장하는 목축신이 아닐까.
성산읍 삼달리는 바닷가까지 길게 이어진 마을이나 중산간에 넓게 분포하고 있다. 그래서 전체 면적의 56%가 초지 및 임야이다. 예로부터 넓은 초지를 이용한 소 사육이 주류를 이루었고, 광복 전까지 집집마다 소 한 두 이상 길러 전체 200여 두 사육했다는 기록도 있다.
소 축산업이 발달한 삼달리에서 소와 관련한 신화가 전승되고 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소를 건강하게 키우고, 산과 오름으로 방목하다 잃어버렸을 때 잘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신이 필요했을 터이다. 이렇게 황소의 신격이었던 황서국서 어매장군은 점차 마을의 생산, 물고, 호적, 장적을 차지한 본향신이 되었을 것이라 추측해 본다.
삼달리 본향당을 찾아가 보니 여느 주택처럼 당집과 마당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 당집 안에는 신상을 모시는 나무 상자가 있고, 그 안에 황서국서 어매장군과 김 씨 영감의 신상이 있다고 하는데, 문이 잠겨 있어 안을 볼 수는 없었다. 인터넷에 뜬 사진자료를 보니 신상에 고운 한복이 입혀져 있었다.
여연
국어교사로 아이들과 함께했으며, 현재 제주 신화 관련 저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제주의 역사와 문화, 자연 등을 추억과 함께 담아낸 <제주의 파랑새>(도서출판 각), 제주의 마을길을 걸으며 신화와 만나는 <신화와 함께하는 당올레 기행>(알렙, 공저)과 <제주 당신을 만나다>(알렙, 공저), 제주신화 전반을 아우르며 재미있고 쉽게 풀어낸 <조근조근 제주신화>(지노)와 아이들이 제주신화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기획한 <체험학습으로 만나는 제주신화>(지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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