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신화들, 그 중 먼지에 쌓여 존재감이 희미해진 이야기들을 다시금 햇살 아래로 끌어내고자 하는 마음에서 [꼬닥꼬닥_마을신화]연재를 시작한다. 구술 채록된 제주 마을의 신화 가운데 서사를 갖춘 이야기를 중심으로 동료 연구자들과 토론도 하고 답사도 진행했다. 마을에 전해오는 신화를 공유하고 보전하는 것은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자연의 신성성을 되찾는 작업이 될 것이라 믿는다.
옛날 김훈장이 육지에 다니면서 옹기 장사, 갓양태 장사를 하였다. 김훈장은 경상도 태백산을 거쳐, 황해도 월출산, 전라도 지리산을 두루두루 다니다가 아기씨를 만났다.
아기씨가 김훈장에게 넌지시 제안하였다.
“나를 잘 사귀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오곡밥, 수수떡에 고기를 대접해주면 장사 잘 되게 해 주마. ”
김훈장이 그 정도면 어렵지 않다며 아기씨 요구대로 모두 사 먹였다. 그러자 장사가 잘 되어 김훈장이 기분 좋게 제주로 돌아가게 되었다.
아기씨가 김훈장에게 자기도 데려가라고 했다. 김훈장이 딱한 마음에 허락을 하였지만 막상 데리고 가려 하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몰래 혼자 배에 올랐다. 그런데 배에 올라보니 아기씨가 먼저 떡하니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아기씨가 김훈장을 보고 호령을 하였다.
“내 덕분에 장사가 잘 되었는데 너는 어찌하여 은혜를 모른 체 하느냐?”
“아이고, 잘못했습니다.”
김훈장이 싹싹 빌면서 용서를 구하니 그제야 아기씨가 누그러지며 말했다.
“나를 너희 집 고방으로 모셔라.”
김훈장은 아기씨를 고방에 좌정시키고 모시기 시작했다. 그러자 하는 일마다 잘 풀리면서 삽시간에 부자가 되었다. 그로부터 집안 대대로 아기씨를 칠성으로 잘 모셨다.
세월이 흘러 집을 헐어버리게 되자 동네 사람들은 대나무 울타리 복숭아나무 아래로 아기씨를 모시고 선왕신으로 위하였다. 아기씨는 보제기(어부)가 바다에 나가면 달리는 고기도 그물에 걸려들게 해주었다. 낚시를 나가도 낚싯줄에 날개를 달아주어 나는 고기도 잡게 해 주었다.
잠수(해녀)들이 물질을 가면 듬북(해조류)이며 해삼이며 소라 성게를 망살이에 가득가득 채우게 도와주었다. 미역도 많이 거둘 수 있게 해주니 싣고 가는 검은 암소 등이 휘어질 정도였다.
행여 아기씨 선왕신을 잘 모시지 않을 때는 달리는 고기 나는 고기 다 놓치고, 해삼 전복 미역이 씨가 마른 듯 걸려들지 않았다. 그리하여 보제기와 잠수들이 지금까지도 잘 위하는 당이다.
(진성기, 『제주도 무가본풀이사전』의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
칠성신은 외부에서 들어온 뱀신으로, 잘 모시면 부자가 되게 해 주는 신이자 곡물신이지만 잘 모시지 않으면 병을 주는 재앙의 신이라고 한다. 뱀신은 제주에 들어와 농경신으로 자리를 잡기도 하고, 어부나 해녀들의 생업수호신이 되기도 했다.
개똥밧당 신화가 전해오는 금성리를 찾아가보니 전형적인 어촌 마을이었다. 운 좋게도 개똥밧당이 있는 밭의 주인을 만나 헤매지 않고 바로 찾아볼 수 있었다. 부자가 되게 해 주는 칠성신을 잘 모신 덕일까. 시부모로부터 물러 받았다는 당 주변의 너른 집터와 아래, 위로 지어놓은 집들이 제법 형편이 좋아 보였다.
주인아주머니는 윗집은 큰아들네로 아랫집은 작은 아들네로 물려주려 하는데, 두 내외 모두 곧 자식을 낳을 예정이라며 뿌듯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주인아주머니가 소개해준 근처 식당도 어찌나 맛이 좋았는지 두루두루 보람 있는 발걸음이 되었다.
그런데 왜 당 이름이 ‘개똥밧당’일까? 개똥이 많았나? 아니면 개똥참외가 많이 있었나? 나의 질문에 지인이 이렇게 추정해주었다. 개(바다)의 동쪽에 있는 밧(밭)이란 뜻일 것 같다고. 길 건너에 바로 바다가 펼쳐져 있으니 매우 그럴듯한 풀이라고 여겨졌다.
애월읍 금성리는 한라산을 등지고서 드넓은 바다까지 품고 있는 마을이다. 구한말 농가 부업으로 양잠을 해서 비단을 짰기 때문에 비단 금(錦)을 쓰고, 양옆으로 곽지와 귀덕 마을이 외적의 침입을 막아주는 성처럼 감싸고 있어 금성리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 면적은 곽지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하천이 발달되어 있고 산물이 풍부하여 곡창지대를 이루었다. 멸치 떼가 마을 앞 바다를 뒤덮을 정도로 많이 잡혔고, 해녀들의 물질도 활발하였다는 기록도 보인다. 해녀와 어부들이 신을 모시고 바다의 풍요를 기원하였던 삶이 신화 속에 녹아 있는 것이다.
여연
국어교사로 아이들과 함께했으며, 현재 제주 신화 관련 저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제주의 역사와 문화, 자연 등을 추억과 함께 담아낸 <제주의 파랑새>(도서출판 각), 제주의 마을길을 걸으며 신화와 만나는 <신화와 함께하는 당올레 기행>(알렙, 공저)과 <제주 당신을 만나다>(알렙, 공저), 제주신화 전반을 아우르며 재미있고 쉽게 풀어낸 <조근조근 제주신화>(지노)와 아이들이 제주신화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기획한 <체험학습으로 만나는 제주신화>(지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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