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신화들, 그 중 먼지에 쌓여 존재감이 희미해진 이야기들을 다시금 햇살 아래로 끌어내고자 하는 마음에서 [꼬닥꼬닥_마을신화]연재를 시작한다. 구술 채록된 제주 마을의 신화 가운데 서사를 갖춘 이야기를 중심으로 동료 연구자들과 토론도 하고 답사도 진행했다. 마을에 전해오는 신화를 공유하고 보전하는 것은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자연의 신성성을 되찾는 작업이 될 것이라 믿는다. 

바닷가에 자리 잡은 고내리 큰당. (사진=여연)
바닷가에 자리 잡은 고내리 큰당. (사진=여연)

옛날 탐라국 시절에는 마소가 번성하고 농사가 풍년이라 살기가 좋았다. 이런 소문을 듣게 된 대국 천자국에서 김통정을 제주로 보내 상황을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김통정이 제주에 와서 보니 듣던 대로 소와 말이 번성하고 농사도 풍년이라 탐이 났다. 그래서 이 땅에 자리를 잡으려고 애월 항파두리에 토성을 쌓고 쇠문을 닫아걸었다. 그러고는 탐라 백성들에게 빗자루와 재 닷 되를 바치도록 하였다. 김통정이 재를 성 위에 뿌리고 말 꼬리에 빗자루를 달아 토성 위 둔덕을 달리게 하니 성이 자욱한 재에 감추어졌다.

한편 천자국 황제가 아무리 기다려도 김통정이 오지 않아 황서, 을서, 병서 삼장수를 보내서 잡아오도록 하였다. 삼장수가 항파두리 성을 찾아왔으나 철문이 굳게 닫혀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하릴없이 주변만 맴돌고 있는데 아기업개(업저지)가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삼장수가 잘도 어리석다. 쇠문에 석 달 열흘 불을 질러봅서. 무쇠가 녹아내릴 것이우다.”

이에 삼장수가 옳다구나 하면서 아기업개가 말한 대로 석 달 열흘 불을 지폈다. 그러자 마침내 쇠문이 녹아내렸다. 이에 김통정이 도망가면서 임신한 아내를 먼저 죽이고 무쇠방석을 관탈섬 쪽으로 던졌다.

김통정이 무쇠방석에 올라앉았는데 황서가 새로 변신하고 김통정 머리에 앉아 괴롭혔다. 을서는 바다 새우로 변신하고 김통정이 앉은 무쇠방석을 잡아당겼다.

무쇠방석이 흔들리고 머리 위 새가 어지럽게 하니 김통정이 이게 무슨 일인가하고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목의 비늘이 젖히면서 틈이 벌어졌다. 이틈에 병서가 은장도로 비늘 사이를 찔렀다. 그러자 피가 솟구치면서 김통정의 숨이 끊어졌다.

을서는 김통정의 머리를 들고 천자국으로 돌아가고 황서와 병서는 이곳에 남기로 하였다. 황서와 병서는 좌정할 곳을 찾아 한라산에 올라 활을 쏘았다. 그러자 화살이 날아와 고내오름에 떨어졌다.

황서와 병서가 고내오름에 가보니 용궁아기씨가 부모님께 불효한 죄로 귀양을 와 있었다. 두 장수는 용궁아기씨의 아름다움에 반해 청혼을 하였다. 용궁아기씨는 황서와 혼인하고 오름허릿당에 좌정하였다. 고내리 주민들은 삼장수를 모시고 정월 초하루와 팔월 보름 두 번 제를 올린다.

하루는 본향제를 지내는데, 얼굴 좋고 완력 있는 세칫영감이 바다에 고기 낚으러 다녀오다 굿하는 것을 보았다. 셋칫영감은 붕어눈을 부릅뜨고 삼각수염을 휘날리면서 마을 토지관이 자손을 괴롭게 한다고 소리를 질렀다.

“토지관이 별 거냐? 내가 먼저 앉을 테니 나에게 제물을 바쳐라.”

그 후에는 세칫영감을 위해서 따로 상을 마련해 놓게 되었다.

(진성기, 『제주도 무가본풀이사전』의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

당집 안 모습은 단출하지만 이곳에 네 분의 신을 모시고 있다. (사진=여연)
당집 안 모습은 단출하지만 이곳에 네 분의 신을 모시고 있다. (사진=여연)

김통정(미상∼1273년)은 역사적 실존 인물로, 고려가 원나라에 복속되는 것을 반대하고 삼별초를 결성해 저항하며 강화도와 진도를 거쳐 제주에 들어왔다. 제주에 끼친 영향이 컸기 때문에 제주에는 김통정에 대한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고려 때 한 과부가 살고 있었는데, 매일 저녁 아무리 문을 꼭꼭 잠그고 자도 남자가 들어와 자고 갔다. 과부는 동네 사람들의 조언에 따라 남자의 허리에 실을 묶어 놓았다. 과부가 날이 새어 실을 따라가 보니 노둣돌 아래에 있는 지렁이 허리에 묶여 있는 게 아닌가. 과부는 징그러운 지렁이가 또 찾아오면 어쩌나 해서 죽여 버렸다.

이후 과부의 배가 점점 불러오더니 아들을 낳았다. 사람들은 지렁이와 정을 통해 낳은 아이라 해서 ‘지렁이 진’자를 써서 ‘진통정’이라 했는데, 차츰 비슷한 성씨로 바뀌어 김통정이 되었다. 아이의 몸에 비늘이 나 있고 겨드랑이에는 자그마한 날개가 돋아있었다.(……)”

고내리 남당에는 남당 칠머리 개로육서또가 좌정하고 있다. (사진=여연)
고내리 남당에는 남당 칠머리 개로육서또가 좌정하고 있다. (사진=여연)

그런데 고내리 마을 본향당인 ‘장군당’에 모시는 신은 영웅 서사를 갖추고 있는 김통정이 아니라 그를 잡아 죽였다는 ‘황서, 을서, 병서’이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삼별초와 김통정을 영웅화하고 항파두성을 성역화하였지만 그들에 대한 제주 백성들의 민심은 달랐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삼별초의 토성과 고내리에 있는 환해성 건설에 백성들이 동원되면서 그 고초가 매우 심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신화연구가 강순희는 고내리 큰당의 신화를 문화소로 해석하면서, 비늘이 있는 김통정을 ‘큰 물고기, 대어(大漁)’로 의미를 확장시키고 있다. 대국 천자국에서 온 김통정은 ‘먼 곳에서 오는 이동성 대어류’로, 김통정이 바다로 도망가 무쇠 방석에 앉자 황서가 새의 몸으로 김통정의 대강이를 괴롭히고, 을서가 새우 몸으로 변하여 김통정이 앉은 자리를 괴롭히고, 김통정의 모가지 비늘 틈으로 병서가 은장도로 찌르는 서사를 어부가 고기를 잡는 과정으로 해석하였다.

고내리는 전형적인 어촌 마을로 바다에서 고기를 잡으며 살아왔다. 거친 바다와 싸우며 고기를 잡는 과정은 전쟁과도 같을 것이다. 그리하여 김통정을 잡아 죽인 장군을 신으로 모시며 자신들의 어로작업을 서사 속 전투의 장면으로 녹여 놓았을 지도 모른다. 

고내포구. 고내리는 수심이 깊은 해안선을 가지고 있어 고깃배들의 항구로 적합하다. (사진=여연)
고내포구. 고내리는 수심이 깊은 해안선을 가지고 있어 고깃배들의 항구로 적합하다. (사진=여연)

 

여연

국어교사로 아이들과 함께했으며, 현재 제주 신화 관련 저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제주의 역사와 문화, 자연 등을 추억과 함께 담아낸 <제주의 파랑새>(도서출판 각), 제주의 마을길을 걸으며 신화와 만나는 <신화와 함께하는 당올레 기행>(알렙, 공저)<제주 당신을 만나다>(알렙, 공저), 제주신화 전반을 아우르며 재미있고 쉽게 풀어낸 <조근조근 제주신화>(지노)와 아이들이 제주신화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기획한 <체험학습으로 만나는 제주신화>(지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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