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신화들, 그 중 먼지에 쌓여 존재감이 희미해진 이야기들을 다시금 햇살 아래로 끌어내고자 하는 마음에서 [꼬닥꼬닥_마을신화]연재를 시작한다. 구술 채록된 제주 마을의 신화 가운데 서사를 갖춘 이야기를 중심으로 동료 연구자들과 토론도 하고 답사도 진행했다. 마을에 전해오는 신화를 공유하고 보전하는 것은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자연의 신성성을 되찾는 작업이 될 것이라 믿는다.
김장수 시절에 고내오름에 굴레를 벗은 말이 하나 있었다. 이 말이 어찌나 날랜지, 밭의 곡식을 모두 먹어치워도 잡지를 못하였다. 하루는 김장수 꿈에 산신대왕 산신백관이 나타나서 말을 했다.
“이리저리 하면 고내오름에 있는 굴레 벗은 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니 그 말을 잡아타보아라. 그러면 알 도리가 있을 것이다.”
김장수가 산신대왕이 일러준 대로 하여 마침내 그 말을 잡을 수 있었다. 말은 한 번 올라타면 순식간에 제주 삼읍을 돌아 나올 정도로 용맹하였다. 김장수는 이 말을 매우 아끼면서 항상 타고 다녔다.
그러던 중 왜놈들이 쳐들어와서 마을의 재물을 약탈하고 여인들을 겁탈하였다. 김장수는 제주목사한테 사령들을 빌려왔다. 그러고는 노꼬메오름 뒤에 숨었다가 왜놈들이 들어서자 달려들어 모조리 결박하였다. 김장수가 제주목사한테 왜놈들을 끌고 가자, 나라에서 김장수한테 큰 상금과 벼슬을 내렸다.
김장수는 산신대왕 산신백관을 위하여 유수암당을 설립하였고, 마을 사람들도 정성으로 위하게 되었다. 영천 이 목사 시절에는 이 당집에 불을 질러버리는 일이 있었지만 다시 살려내 지금까지 대대손손 섬기고 있다.
(진성기, 『제주도 무가본풀이 사전』을 바탕으로 재정리)
유수암은 해발 250m 정도의 고지대에 위치한 중산간 마을이다. 한라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주변에 크고 작은 오름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궷물오름, 노로오름, 알오름, 큰노꼬메, 작은노꼬메 들이다.
이 마을은 삼별초를 이끌던 김통정과 이런저런 인연을 맺고 있다. 유수암이 삼별초의 항파두성 바로 옆에 위치한 까닭이다. 유수암이라는 마을 이름에도 물 수(水)가 들어있는 것처럼 용천수가 풍부하였고, 원나라의 지배에 반발해서 항쟁을 벌였던 삼별초가 이곳의 용천수를 식수로 사용했다.
그러면 서사의 주인공인 김장수는 김통정일까? 신화가 수록된 진성기의 『제주도 무가본풀이 사전』에도 그렇게 의문을 제기하는 것 정도로 그치고 있다.
삼별초군이 근처 항파두성에 웅거할 때 함께 따라 들어온 고승이 지금의 유수암 절동산 아래 샘물을 발견하고 이곳에 조그만 암자를 지어 ‘태암감당’이라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항파두성이 함락되고 김통정이 최후를 맞이할 때 그의 어머니가 이곳 유수암천에 피신하여 흙집을 짓고 살다가 여생을 마쳤는데, 이것이 마을의 시초라는 기록도 있다.
가을의 초입에 동료들과 유수암 마을을 찾았지만 신화 속에 등장하는 유수암당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있었다. 팽나무와 무환자나무가 몇 백 년의 세월을 품은 채 군락을 이루고 있는 절동산 아래 마을길을 걸으며 임자 없이 무르익은 무화과를 실컷 따 먹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그러고는 다음 목적지인 유수암리 거문데기 하르방당과 할망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여연
국어교사로 아이들과 함께했으며, 현재 제주 신화 관련 저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제주의 역사와 문화, 자연 등을 추억과 함께 담아낸 <제주의 파랑새>(도서출판 각), 제주의 마을길을 걸으며 신화와 만나는 <신화와 함께하는 당올레 기행>(알렙, 공저)과 <제주 당신을 만나다>(알렙, 공저), 제주신화 전반을 아우르며 재미있고 쉽게 풀어낸 <조근조근 제주신화>(지노)와 아이들이 제주신화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기획한 <체험학습으로 만나는 제주신화>(지노)가 있다.
- [꼬닥꼬닥_마을신화]유수암을 세운 영웅 홍좌수
- [꼬닥꼬닥_마을신화]삼달본향당의 황서국서 어매장군
- [꼬닥꼬닥_마을신화] 흙으로 빚은 신령
- [꼬닥꼬닥_마을신화] 화를 부른 재능과 부
- [꼬닥꼬닥_마을신화] 논농사를 일으킨 영웅신
- [꼬닥꼬닥_마을신화] 표지석 하나 세우지 못하는 신목 신세
- [꼬닥꼬닥_마을신화] 여인과 결혼한 용궁 아기씨의 기막힌 처지
- [꼬닥꼬닥_마을신화]도순마을을 꽃 피운 여래화주
- [꼬닥꼬닥_마을신화] 당제, 마을 공동체의 열망
- [꼬닥꼬닥_마을신화]신이 되어 돌아온 아기씨
- [꼬닥꼬닥_마을신화]육지에서 모시고 온 칠성아기씨
- [꼬닥꼬닥_마을신화]김통정을 처단한 세 장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