줴피낭, 혹은 제피낭. 초피나무 의 제주말이다. 제피낭은 향기가 독특한 운향과 낙엽지는 관목으로서 숲그늘에 자생하며 한국에는 남쪽 제주에서부터 중북부 지방까지 자생하는 식물이다.
꽃은 제주에서는 4월부터 자생지 북방 한계선까지는 6월 초순까지 온도 차에 따라 핀다. 녹황색의 꽃은 새봄에 돋아나는 새순의 가지끝에 작은 꽃들이 모여서 핀다.
나무 줄기에는 붉은색, 또는 가끔 녹색의 가시가 마주나며 어린이의 손톱만한 이파리는 듬성듬성한 톱니가 물결모양을 이룬다.
열매는 9월부터 빨갛게 익어서 벌어지면 좁쌀보다 조금 큰 까만 씨앗들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산길에 키큰 나무 그늘 아래로 걷다보면 옷깃만 살짝 스쳐지나가도 향내가 코를 찌른다.
모든 애벌레들이 나뭇잎이나 풀잎을 먹으면서 성체로 탈바꿈 해가는데 유독 호랑나비 애벌레가 아니면 제피잎을 먹는 벌레들이 없다. 이것은 벌레들에게 독이되는 독특한 향이 벌레들의 접근을 막아내기 때문이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이면 제주사람들은 자리회 생각에 입맛을 쪽쪽 다신다. 보리가 익어가고 수확하는 5월이 오면 보리자리라 하여 서너살 어린이 손바닥 만 한 흑갈색의 바다물고기가 살이 통통 올라 기름기가 제법 베지근한 맛을 낸다.
이것이 그 유명한 아열대 남방물고기 제주의 자리돔이다. 지금은 기후 온난화로 제주 바다에서만 서식하던 자리가 울룽도까지 북상한다 하니 제주에서 자리회가 사라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제피나무 이야기에서 왜 자리회 이야기냐. 제주에서는 자리회를 빼놓고 제피를 말할수 없기 때문이다.
자리 물회에 제피와 식초를 넣지않고는 그 어떤 전문 요리사가 물회를 만들어도 제주음식으로서의 물회가 될수 없기 때문이다.
자리회나 한치오징어나 모든 물회에는 반드시 제피를 넣어먹는다. 이것은 제피가 가지고 있는 성분이 잡균을 죽이며 식중독을 예방하기 때문이다.
파도가 세거나 날씨가 안좋아 자리를 못잡은 날에는 제주사람들이 시원한 음식을 먹을수 있었을까?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도 시원한 냉국을 먹을수 있어야 한다. 계절이 여름인데 시원한 물회에 보리밥 말아먹던 그 맛을 못잊어 자리를 구하지 못했거나 잡히지 않아도 시원한 냉국 한 대접이면 식은 보리밥 한사발 시원 하게 말아먹을수 있는 생활의 지혜가 있다. 이것도 바로 제피가 있어왔기 때문이다.
제피의 박하사탕처럼 싸한 맛은 냉장고가 없던 시절 얼음물이 아니여도 시원한 맛을 내준다.
제주사람들이 여름철 더위를 식히는 냉국에는 '물외'라 하는 토종 오이를 얇고 가늘게 채썰어놓고 미나리, 풋고추, 부추잎, 들깻잎 등을 잘게 썰어서 재래식 된장에 버무린다. 이때 제피가 반드시 들어간다.
이렇게 버무려서 약 10분~20분정도 지나서 뻐들뻐들한 오이채가 적당히 숨죽으면 생수를 부어서 냉국으로 시원하게 먹는다.
잡균을 잡아주는 제피는 날음식을 먹을때에도 식중독을 예방할뿐 아니라 몸에 열을 내려주는 자연 약초이며 향신료다. 봄에 연하게 돋아나는 새순잎은 풋고추나 양파와 함께 간장장아찌를 담아서 일년 내내 먹을수가 있다.
연한 이파리를 뜯어다가 다진 마늘과 함께 된장에 섞어 양념장을 만들어두면 언제든지 먹을 수 있다. 양념간장에도 제피잎을 잘게 뜯어놓고 두고먹으면 그 향긋한 맛을 언제나 느낄수있다.
제피나무는 벌레들이 싫어하는 나무다. 화분에 작은나무 한그루쯤 심어서 반음지의 창문틈에 놓아둔다. 여름에는 해가 들지않는 곳에 놓고 가을부터 이른봉 사이는 해가 드는 창가에 놓아두면 창문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에 향기가 집안으로 들어와서 모기나 날벌레들을 못들어오게 한다.
제피는 일반화초에 비해 생육 성질이 조금 까다로운 편이다. 화학비료나 음식물 찌꺼기같은 것을 거름으로 주면 얼마 못 가 죽어버린다. 정원에 심을때는 반드시 그늘진 곳에 심어야 하며 화분에 심을 때는 흙이 항상 촉촉할 정도 유지시켜야 한다.
제피는 옮겨심을때도 절대로 나무를 잡아당겨 파내면 안된다. 나무를 잡아당겨 파내면 뿌리껍질이 목질부분에서 분리되어 옮겨심어도 죽게된다. 잔뿌리들이 사방으로 퍼져뻗는 성질이 있으므로 부드러운 부엽토에 심는 것이 좋다.
촘제피는 참제피를 말한다. 반대말은 개제피인데 개제피는 산초나무를 말한다. 촘제피는 나무그늘을 좋아하고 개제피는 풀밭과 숲 가장자리의 양지바른 경계지역을 좋아한다.
이제 시원한 물회가 생각나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장거리 운전중에 졸음이 밀려오면 제피잎 한잎 입안에 넣고 씹으면 알싸한 맛이 잠을 확 달아나게 한다.
송기남.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출생
제민일보 서귀포 지국장 역임
서귀포시 농민회 초대 부회장역임
전농 조천읍 농민회 회장 역임
제주 새별문학회 회원
제주 자연과 역사 생태해설사로 활동중
제주 자연 식물이야기 현재 집필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