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도심 공동화는 '공동체 공동화'다
주목받는 도시재생 사례들을 보면 결과적으로 거주자와 세입자들보다 건물주를 위한 도시재생이 되어버린 사례가 많다. 얼마나 매력적인 관광지 혹은 상권으로 변했는지에 도시재생에 대한 평가의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제주를 비롯 전국 도시재생 지역에서 주민 참여 문제는 간단치 않다. 제주의 도시재생 지역 주민들은, 도시재생 사업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을까. 제주의 한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관계자는 "주민들이 실무에 직접 참여하려는 의지는 없는 경우가 많다. 용역을 주면 되지 않느냐는 식으로 접근을 한다."고 토로했다. 도시재생 사업 지역 주민 대부분이 고령층인 것이 그 이유 중 하나라고.
이는 주민들이 거주지역을 스스로 기획할 능력을 잃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실제로 20~30대 청년들이 모여 주도적으로 '마을의 미래'를 기획하고 실천하는 지역은 찾기 어렵다.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일에 대해 함께 협의하고 실행하는 청년들이 사라진 도시재생 대상 지역에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마을의 사업을 진취적으로 기획하고 관리하도록 하는 것이 쉬울 리 없다. 공동체의 부활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존의(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마을회 공동체'의 부활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전통적 공동체에서 밀려난 청년들
도시화, 핵가족화, 신도시로의 이주 등이 공동체 붕괴 요인으로 거론되지만, 청년들이 오랜 시간 지역의 의사결정 구조에서 소외돼 왔다는 점도 살펴봐야 한다. 마을 단위 공동체에서 기성 세대가 결정하고 청년은 따라야 하는 의사결정 구조가 공고해진 지 오래다. '남자 어른' 중심의 마을회와 개발위원회, 청년회(여성은 없고 20~30대 청년도 없는, 중장년 남성들만 가득한 그 '청년'회)는 지역 토지주 및 건물주 등 기성세대의 연합체 노릇을 하는데 멈춰진 실정이다.
청년이 사라진 마을공동체들은 이제 와서 공동체의 존속 여부를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오래된 의사결정 구조를 깨지 않고 기존 시스템을 강화하는 방식의 공동체 복원은 시대착오적이다. 가입 연령을 60세 이상으로 늘려가고 있는 '청년회'나 개발위원회 같은 자생단체와 자유총연맹, 새마을운동중앙회, 바르게살기협의회 같은 구시대적 관변 조직들은 더이상 지역의 청년을 담을 그릇이 되지 못한다. 새 그릇이 필요하다. 특히 농촌 지역이 아닌 도시재생 대상 지역에서는 더욱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가 요구된다. 이 같은 문제의식을 반영한 '도시공동체'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촉발된 지 오래지만 좀처럼 부각되지 않고 있다.
#성미산마을...도시공동체의 가능성
서울시 마포구의 성미산마을은 '도시공동체' 사례로 오랫동안 주목받아 왔다. 성미산마을에는 지난 1994년 협동조합형 어린이집이 만들어졌다. 이후 지역 개발에 맞서며 주민들의 공동체 의식이 구조화되면서 한국의 대표적인 도시공동체로 형성됐다. 성미산마을에 대해 철학자 정성훈은 "육아공동체가 교육공동체로 이어져 친밀관계의 지속성이 보장된 지역들에서는 다른 목적들을 갖는 협동조합들과 공간들도 생겨 났다. 친환경 먹을거리의 필요 때문에 생긴 생활협동조합을 비롯해 반찬가게, 식당 등 경제적 성격을 갖는 조합들과 매장들이 생겼고, 극장, 방송국 등의 문화예술공간과 이를 이용한 동아리들이 지역 주민 스스로의 힘으로 생겨났다."고 평가한다.(정성훈은 논문 <현대 도시의 삶에서 친밀공동체의 의의>에서 기존의 공동체가 아닌 친밀성에 기초한 도시공동체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육아공동체와 교육공동체, 즉 '돌봄공동체'로 시작해 여러 공간과 협동조합들이 가동되면서 이름을 알린 성미산마을은 작금의 도시재생 사업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하지만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하면서 챙겨 봐야할 부분들이 있다. 첫번째는 도시에서도 공동체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동체의 붕괴는 도시화나 핵가족화 개인주의가 문제가 아니다. 공동체는 도시에서 다시 구성될 수 있다. 두번째는 성미산마을이 돌봄을 위한 연대를 근간으로 공동체를 '창조'했다 것이다. 상업화나 관광자원화가 아니라 돌봄의 연대체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지역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재생시킨다 점은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유의미하다.
제주 지역 유관 기관들이 제주공동체지원네트워크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이들 조직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우선 제주도의 공동체에 대한 인식과 지원은 아직까지 기존 '마을회 공동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농촌 지역에서는 여전히 '마을회 공동체'가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도시재생 사업 대상 지역인 원도심에서는 '마을회 공동체'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따른다.
#도시재생, 공동체 창조의 마중물 되어야
제대로 된 도시재생을 위해서는 노후한 도심의 인프라를 일부 조성하는 좁은 의미의 도시재생 사업 그 자체보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지역을 지속적으로 기획하고 관리해나가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공동체가 형성되지 못하거나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도시재생은 실패한 도시재생이라고 진단할 수 있다. 홍명환 제주도시재생지원센터장은 말한다. "국토부 공모 도시재생 사업은, 진짜 도시재생 사업을 펼쳐 나가기 위한 마중물일 뿐입니다." 지자체가 도시재생 공모 사업을 넘어서는 기획 아래 지속적으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옳은 말이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국토부 공모 도시재생 사업은 추가 사업을 위한 마중물이 아니라, 공동체를 창조하거나 재구성하는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
도시재생 사업 이후 시설을 사후 관리하는 협동조합을 구성토록 하거나, 도시재생 사업과 연계하는 사회적경제 모델이 대두되고 있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제도적 지원 혹은 보호 방안은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국토부 공모사업인 도시재생 사업은 현장지원센터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3~4년에 걸쳐 시설들을 조성하고 나면? 센터는 사라진다. 현장지원센터 근무자들도 일자리를 잃는다. 이후 관리의 책임은? 서둘러 만들어낸 마을관리협동조합에게 돌아간다.
아직 역량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협동조합이 사후 관리를 떠맡는 경우, 그 결과는 자명하다. 제주도의 경우 도지새생현장지원센터가 폐쇄된 후 관리 문제를 도울 수 있는 기관이 부재했다. 마을관리협동조합만 덩그러니 내던져지는 구조였던 셈이다. 협동조합 구성원들이 의지를 갖고 있어도 행정적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제주시와 서귀포시 단위의 '지원센터'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다행인 점은 그마나 제주 행정 당국이 도시재생기초지원센터를 조직하기 위해 협의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현장지원센터에 파견, 사후 관리 등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상당한 진전이다. 하지만 이는 여전히 나무를 관리하기 위한 기본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씨앗(공동체)을 심을지, 어떻게 심을지에 대한 답은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인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 이 기사는 제주특별자치도로부터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