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은 쇠퇴하는 노후한 원도심과 지방 소도시를 활성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관광객이 몰려들고, 상권이 활성화돼 땅값이 오르는 것을 도시재생의 평가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 거주민이 밀려난다면 ‘도시재생’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단순히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지 여부만으로 도시재생의 성패를 평가하는 시대는 지났다.
예산을 들여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했지만 사업의 영향 자체가 미미한 도시재생 사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거금의 예산을 들여 ‘커뮤니티센터’ 등의 거점시설을 조성했지만 저조한 이용자 수, 낮은 주민 만족도를 보이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친 경우가 많다. 이처럼 난항을 겪는 도시재생 사업에 어떤 대안이 필요할까.
지난 4월 <제주투데이> 취재진은 삼척시도시재생지원센터를 찾았다. 이곳은 도시재생센터의 사무공간이자, 주민어울림플랫폼(‘모여락(樂)’)이기도 하다. 삼척시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는 특별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취재진이 인터뷰하는 동안에 동네 사랑방처럼 주민들이 센터를 드나들었다. 센터 입구에 마련된 주민들을 위한 꾸러미 30여 봉지가 마련돼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는 취약계층 주민 등을 대상으로 식품을 나누는 채움나눔냉장고도 운영하고 있다. 주민들이 '찾는' 도시재생지원센터다.
주민과의 소통, 지난해도 견뎌내야...'주민역량 강화', '청년 참여'가 과제
“저희도 주민분들과 신뢰를 쌓고, 도시재생 사업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까지 2년 정도 걸렸어요. 사업 초기에 발생하는 불편함 때문에 90%의 주민들이 거의 반대했었죠. 도지새생이란 게 시설 설치로만 끝나는게 아니다 보니 지속적으로 주민들과 소통하고자 했고, 어느덧 주민분들도 마음을 여시더라고요.”
국내외에서 도시재생 관련 활동을 이어온 김수련 삼척시도재새생지원센터 총괄팀장은 취재진에 그간 느꼈던 도시재생의 문제점과 대안을 내놨다. 그는 거듭해서 도시재생의 ‘지속성’과 그를 위한 ‘주민역량 강화’를 강조했다.
김 총괄팀장은 “지역 특성을 전혀 살리지 않고 거점시설을 만들어놓고 방치되는 사례들이 많다”며 “행정중심적 사고가 문제다. 주민들의 역량을 판단하고 사업을 실시해야 하는데 눈에 보이는 성과 위주로 진행하다 보니 지속성을 갖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도시재생 사업이 ‘하드웨어’에 비해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간과되고 있다는 말이다. 도시재생에서 하드웨어는 기반시설 정비·커뮤니티시설 건립 등 물리적 요소를 이야기한다. 소프트웨어란 주민역량교육·주민공동체 활성화·협동조합 등 주민협의체 조직·지역브랜딩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기반작업을 뜻한다.
그는 이어 “도시재생 사업은 쇠퇴된 지구에 기초적인 인프라를 깔아준 후 거점시설을 통해 주민들이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마을사업의 개념”이라며 “사업 종료 후 주민들이 거점시설을 운영하기 위해선 역량강화가 필요한데, 이는 짧은 시간 내에 이뤄지기 힘들다. 도시활성화 계획단계서부터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도시재생 사업 종료 후 사후관리를 위해 마을관리 사회적 협동조합이 만들어지는 곳이 꽤 된다”며 “하지만 무작정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보다도 조직 구성원들의 역량이 충분한지, 조직과 거점시설을 꾸려가고 운영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심윤보 삼척시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은 “저희 센터는 주민역량이 안된다면 협동조합을 만들지 말자는 취지”라면서 “협동조합에서 공모사업을 신청할 때도 계획서에 한 줄도 대신 써주지 않는다. 아이디어 구상과 계획서 작성 모두 주민 스스로 하게끔 안내하는 역할만 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공모사업을 위해 조직됐다가 역량 부족으로 무너지는 협동조합이 남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급히 구성된 협동조합은 당연히 지속성을 갖기 힘들다. 도시재생의 지속성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주민의 역량 확보를 우선하는 심 사무국장의 단호한 태도는 납득할만 하다.
심 사무국장은 더불어 거점시설 설계 단계부터 주민조직 발굴이 함께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설계를 바탕으로 거점시설을 운영할 수 있는 주민이 있는지를 판단하고, 지역과 주민들의 여건에 맞지 않는다면 설계를 변경해야 한다”며 “이러한 과정을 바탕으로 삼척에서 진행된 도시재생 거점시설들이 운영되고 있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다만, 폐쇄적 의사결정 구조는 여전한 과제라고 꼽았다. “지역에서는 한두 다리 건너면 서로 아는 사람이고, 어느 집안 어른이고, 학교 선후배 사이들이 많다 보니 의사결정 과정에서 청년들이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며 “이러한 의사소통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조정하는 것이 센터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비단 삼척시 뿐만 아니라, 제주도도 마찬가지다. 가부장제적 마을 의사결정 구조가 공고한 대부분의 지역이 풀어가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삼척 도시재생은 현재 진행 중
삼척시에 위치한 ‘성내지구’ 대학로에선 4월부터 11월 사이 매달 도시재생 소셜마켓 ‘함성’이 열린다. 성내지구 대학로 상권 활성화 및 소상공인, 사회적경제 기업인, 창업자, 지역문화예술인 네트워크 형성 등을 목적으로 한다. 매 회차마다 테마를 정해 30팀의 셀러를 모집, 플리마켓과 버스킹 공연, 체험활동 등이 진행된다.
함성 행사 진행을 위해선 상점가가 몰려 있는 대학로 거리에 하루동안 차량을 통제해야 한다. 김 총괄팀장은 "상인분이 허락해주시는게 쉬운 결정은 아니였다"며 "상가 주인분들은 하루하루 밥벌이고 생계인데, 그래서 현장을 다니며 주민분들과 신뢰 쌓고, 유대가 형성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회상했다.
지난 2021년부터 이어져 온 도시재생 소셜마켓 함성은 이번달에도 셀러를 모집 중에 있다. 3년여 동안 운영되며 성내지구 대학로 상가에서는 어느덧 기다려지는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함성 마켓에 단골 셀러 중 하나인 문화예술놀이터 ‘모을’은 감성공작소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공간이다. 오래된 여관 건물인 금성장, 금성양화점 건물을 리모델링해 사용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예술인들을 위한 레지던스실과 전시관, 다양한 체험 교육이 열리는 창작놀이터, 지역 창업자 및 크리에이터의 상품을 판매하는 모을상점, 삼척시 도시재생의 변천사를 훑어보고 소모임 공간으로도 활용되는 모을기록관 등이 마련돼 있다. 감성공작소에서 운영하는 삼척체험공방에서는 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다양한 체험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이외에도 삼척시는 청년 일자리 창출과 청년창업을 지원하는 창업모텔 ‘모임’을 운영하며 공유오피스와 회의실, 전시관 등을 제공하고 있다. 더불어 운영이 중단된 시멘트 공장을 활용해 문화예술 종합 플랫폼 구축을 목적으로 하는 ‘삼척 아트피아’ 사업도 진행 중에 있다.
더불어 삼척시도시재생지원센터는 매년 ‘도시재생 주민공모사업’ 참여자를 모집한다. 주민들이 주체가 돼 마을에 필요한 재생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사업으로, 센터는 안내자 역할을 도맡는다. 그동안 주민공모사업 일환으로 작가 초청 북토크, 걷기와 차 명상 프로그램, 레진조명·비치코밍아트 만들기 체험 등이 운영됐다. 주민들이 직접 꾸려가는 마을사업인 만큼 만족도도 높다.
※ 이 기사는 제주특별자치도로부터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