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교육 환경'은 강력한 장기 거주 요인이다
주거 환경·교육 환경·일자리, 이 세 가지 항목은 사람이 자신이 살아갈 지역을 택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다. 구경하기 좋은 도시재생이 아닌, 장기적으로 거주할 만한 도시재생을 위해서는 이 세 가지 분야를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제주 원도심은 어떨까. 장기 거주지로 선택할 만한 곳일까?
제주 원도심의 노후 주택 관리 및 개선 문제는 여전히 사적 영역으로 치부되며 지원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녹지공간은 찾아보기 어렵고, 좁은 골목들은 주차장이 된 지 오래다.(현재까지 나온 제주도의 차량 관리 정책으로 볼 때, 당분간 주차 문제는 크게 개선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기존 도시 개발 정책은 업무 공간을 분리시켰다. 일자리들은 제주 원도심에서 빠져나갔고, 여전히 이탈하는 중이다. 병원도, 학교도, 영화관도, 은행도 원도심 외곽으로 밀려났다. 원도심에서 도보로 통학할 만한 중고등학교는 몇 되지 않는다. 이처럼 부실한 주거·일자리·교육 환경은 결국 청년 및 자녀를 가진 학부모 세대의 거주 동기를 부여하기 어려운 요인이다. 제주 지역 원도심은 이 세 가지 항목 모두 낙제점을 받고 있다.
#학교가 살아나니 지역이 살아났다...표선의 경우
어린이와 청소년의 웃음소리는 노후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핵심 요인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의 재생이 필요하다. 학교의 재학생 증가는 그 지역에 청년층이 유입되었다는 방증이다. 도시재생의 지속가능성 분석 지표 중 하나로 삼을 만하다. 재학생 증가로 인한 눈에 띄는 도시재생 사례가 있다. 서귀포시 표선초·중·고등학교의 경우다. 별도의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하지도 않았지만 표선면 도심은 몇 년 전부터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석문 전 제주도교육감이 표선 초중고에 IB교육을 도입하면서부터다. 자녀를 표선 초중고에 입학시키기 위해 학부모들이 표선으로 이주했다. 학교가 ‘재생’되자 표선면 시가지 역시 재생되기 시작했다.
유흥가로 전락하는가 싶던 표선 중심 상권에는 학생들이 많이 이용하는 시설(학원과 카페 등)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학생이 돌아오니 지역에도 활기가 일었다. 교육시스템의 변화를 통해 도시를 재생시킨 사례로 평가할 만하다. 학생이 늘면 도시재생의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청년층의 유입과 주거 환경 개선을 통해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만드는 '학교 재생'을 고려한 총체적인 도시재생 계획의 필요성이 부각된다. 제주 원도심의 제주북초등학교도 IB교육을 도입했다. 옛관사를 리모델링해 도서관을 만들며 특히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재학생 수에서 표선과 큰 차이를 보인다. 표선의 경우는 초·중·고 모두 IB교육을 도입했다. 이중 표선고등학교에 IB교육을 도입한 것이 특히 유효했다. 표선 학생들은 초중고 재학기간인 12년 동안 표선에서 연속적으로 IB교육을 받는 것이 가능해졌다. IB교육 대한 평가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한 지역에서 교육의 연속성을 확보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는 장기 거주 요인으로 작용한다.
북초등학교도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북초등학교 인근에는 걸어서 통학할 수 있는 중고등학교도 충분치 않을 뿐더러, 졸업한 뒤 IB교육을 이어갈 수 있는 학교도 없다. 북초등학교의 김영수도서관은 옛 건물의 모습을 고스란히 살린 도서관이라는 모델을 제시했다. 도시재생의 한 사례로 많은 관심을 얻고 있다.
물론 도서관은 중요한 인프라다. 김영수도서관은 학생과 주민들이 애용하는 시설이 됐다.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공을 들여 리모델링했는지 확연히 느껴지는 공간이다. 하지만 도서관 하나가 직접적이고 강력한 장기 거주 요인이 되지는 않는다.
원도심 지역 학교 운영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다. 하지만 북초등학교와 남초등학교의 재학생 수는 답보상태다. 김광수 제주도교육감은 IB학교 확대에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자녀의 IB교육을 이어가고자 하는 북초등학교 학부모는 이주를 고려해야 한다. 남초등학교와의 통폐합도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교육 당국의 발빠른 대응이 요구된다. 하지만 교육 행정은 아직 답을 찾지 못하고 없다. 학생들의 웃음소리로 활력 넘치는 원도심을 만드는 또 다른 방안은 없을까?
#대안학교에서 찾을 수 있는 '대안'
‘학교 밖 학교’로 눈을 돌리면 그 길이 보인다. 대안학교에 대한 지원 방안을 설계해 여러 대안학교들을 원도심에 유치하는 방안이다. 학교를 운영할 공간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대안학교들에 원도심의 유휴공간을 지원하고, 원도심의 다양한 시설들을 각 학교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대안학교는 원도심의 위축된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대안학교들은 이미 그 자체로 돌봄공동체의 성격을 지닌다. 특히, '닫힌 교실'이 아니라 지역 사회와 교류하는 열린 교육 프로그램을 지향하는 대안학교도 많다. 대안학교의 학생, 교사 학부모들이 지역 주민과 적극 소통하고 기획한다. 지역에 오래 살아온 주민이 학생들에게 지역의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가 될 수 있다. 함께 마을 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살아 있는 교육이라 여기는 대안학교도 있다. 대안학교 학생과 교사, 학부모가 마을 기획과 관리에 함께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역 공동체의 재구성을 통해 학교와 마을이 상생하며 지역의 미래를 도모할 수 있다. 도시재생과 대안학교는 상호보완적이다.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비인가 대안학교 학생들은 그동안 교육청 관할 바깥의 학교라는 이유로 제대로 지원받지 못했다. 제주도는 올해 교육발전특구 1차 시범지역으로 선정됐지만 대안학교 관련 차별화된 구상은 보이지 않는다. 교육청으로부터 배제된 학교 밖 학생들을 '공동체 복원을 통한 도시재생 사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지자체가 지원하는 방안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도시재생 사업과 대안학교의 연계 구상에 대해 대안학교 관계자도 관심을 보였다. 유양희 제주대안교육협의회 사무국장은 “원도심 살리기에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아이들로 묶인 공동체가 형성되는 것이 원도심을 살리는 데 가장 의미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유 사무국장은 “제주도가 교육발전특구로 선정됐는데 대안교육과 관련해서는 눈에 띄는 부분이 없다"며 "대안교육에 대해서 제주의 자원을 활용해 원도심을 살리고 대안학교도 유치하면 의미있는 도시재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원도심의 유휴공간 무상임대 혹은 임대비 지원 등은 대안학교 유치를 위한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안학교들은 일반 학교 규모의 공간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학생 수도 제각각이고, 학교마다 학생 수, 재정 상황에 맞게 공간을 운영한다.
#제주도의 도시재생 특별 회계 '재생'해야
문제는 예산 지원 부분이다. 제주도는 도시재생 관련 특별 회계를 없앴다. 이로 인해 국토부 공모 도시재생 사업 기간이 종료되면 후속 사업 연계에 어려움이 따른다. 홍명환 제주도시재생지원센터장이 줄곧 지적하고 있는 문제다. 제주 원도심의 도시재생 사업이 연속성을 갖고 이뤄지도록 하려면 제주도가 도지재생 특별회계를 다시 살려야 한다.
특히,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15분도시 공약을 내세웠지만 기대와 달리 15분도시 계획이 도시재생과 연결고리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두 사업의 연결고리를 확보하고 연속성 있는 도시재생사업을 펼쳐나가기 위해서는 제주도의 도시재생 특별회계를 살릴 필요가 있다. 대안학교 육성을 통한 동시에 원도심을 근거지로 삼는 대안학교와 학교 밖 청소년들을 지원하는 사업을 펼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대안학교 유치해 지원 및 육성하는 방안도 예산과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필요하다면 학교 밖 청소년 지원 조례 등을 개정하거나 '제주 원도심 대안학교 지원 및 육성'을 위한 근거를 담은 조례 제정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존 15분도시의 철학은 보행·자전거 이동에 초점을 맞춘 생활권 조성과 공동체 활성화를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오영훈 제주지사의 15분도시 공약 관련 기획과 기존 도시재생 사업에서는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방안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마을을 위한 기획과 공동체에 기여하는 교육을 추구하는 대안학교들이 많다. 이 대안학교들을 기획 및 관리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 원도심 지역 마을 공동체와 매칭해 지원하고 육성하면서 지역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지자체가 '학교 밖 청소년'을 지원하고 대안학교를 육성하면서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을 도모하는 귀한 사례가 될 수 있다.
끝으로,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성미산학교 홈페이지의 인사말 중 일부를 옮긴다.
“성미산학교 식구들은 ‘마을 만들기’가 가장 좋은 교육이라고 믿습니다. 어린이들은 성미산에 나무를 심고, 열심히 마실을 다니며 놀고, 동네 카페에서 아저씨 아줌마가 사 주시는 과자를 먹고, 마을 극장에서 공연을 봅니다. 조금 큰 아이들은 혼자 사시는 노인들께 음식을 만들어 드리기도 하고, 마을에 버려진 고양이를 돌보기도 하고, 마을 축제에서 공연을 하거나 장사판을 벌이기도 합니다. 중고등학생들은 성미산 식생조사를 하고,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운동을 합니다. 생협 매장, 마을 식당, 마을 극장에서 일을 배우고, ‘되살림가게’에서는 스태프로서 일을 합니다. 마을과 국내외의 공동체를 비교하는 공부도 하고, 마을 안팎에서 대안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진로를 찾기도 합니다. 장차 마을 기업을 만들고, 화석 에너지를 안 쓰는 ‘전환마을’을 만들어 보려는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런 학교들, 제주 원도심의 마을들이 키워나갈 만한 그런 학교가 아닌가.
※ 이 기사는 제주특별자치도로부터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