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보완: 26일 16:37]
#트램과 제주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름을 지역에 각인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대형 토건 사업을 곧잘 기획하고 추진한다. 원희룡 전 제주지사에게는 제2공항이 그것이었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트램으로 그 방향을 잡은 모양이다.
오영훈 제주도정이 제주 트램 타당성 용역을 추진했지만 트램 사업의 비용대비 편익은 0.77로 1에 미달했다. 투입 비용 대비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낮게 나타난 것이다.(그나마 용역진이 제시한 편익 0.77을 맞추려면 렌터카 차고지 조성 및 이전이 뒤따라야만 한다. 렌터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경제적 타당성은 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다.) 제주 트램의 경제적 타당성이 높지는 않다고 용역진이 스스로 평가한 셈이다. 트램을 설치하고 용역진이 예상한 만큼 트램 이용자가 발생하더라도 운영 및 관리에 혈세를 쏟아 부어야만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제주 버스 준공영제 만해도 연간 1000억원대 보조금을 혈세로 지원하고 있는데, 트램까지 적자로 운영해야 한다.
트램은 상당한 초기 투입 비용은 물론 지속적인 관리 비용이 들어가며 노선 변경이 어렵다. 그런 만큼 기본적으로 유동인구가 많은 대도시에 적합하다. 또한 모든 교통이 그러하듯 트램 역시 주민들의 생활권에 맞춰 설계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제주 트램은 기본적으로 관광객의 이동 동선에 맞춰 설계됐다. 용역진이 제시한 핵심노선은 노형 렌터카 차고지(신설)-제주도청-제주공항을 잇는다. 다음 노선 연결 노선은 제주공항-원도심-제주항으로 이어진다. 제주 도민의 주요 출퇴근 동선, 학교나 병원 이동 동선과 무관하다.
그럼에도 제주도는 트램 사업 추진을 위한 절차를 밟아나가고 있다. 인구 70만명이 되지 않는 섬 지역에서 트램이 운영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트램 용역진이 제시한 사례 중에서도 섬 지역은 일본 오키나와현 한 곳에 불과한데, 오키나와현의 인구는 제주도의 두 배에 달한다. 트램은 일단 시작하면 실패해서는 안 되는 사업이다. 트램 기반 공사 과정에서 몇 년에 걸쳐 도민에게 큰 불편을 야기할 사업인 만큼 서둘러서는 곤란하다. 시민사회와 함께 충분히 검토하고 논의해야 한다.(용역진이 제시한 노선이 제주시 중앙지하상가 위를 지나가는 만큼 트램의 진동으로 인해 지하상가에 안전 문제나 소음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지에 대해서도 평가할 필요도 있다.)
제주도는 트램을 통한 원도심 활성화를 꿈꾸지만, 이는 전후 관계를 잘못 설정한 것이다. 원도심 활성화를 통해 원도심 지역의 유동인구가 충분히 늘어나 새로운 교통 수단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났을 때 트램 도입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순리다. 하지만 현재 제주도는 딱히 이렇다할 원도심 활성화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트램을 도입하면 유동인구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왜 그래야 할까? 트램 자체가 관광자원이 될 것이라고도 주장하지만 그렇지도 않다. 가령, 대전이나 울산 지역 역시 트램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들 지역에 찾아가서 트램을 타야겠다고 생각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트램은 교통수단 그 자체로 인식해야 한다. 장밋빛 전망에 기대어 자기부상열차를 도입했지만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인천시 사례가 있지 않은가.
# 트램 사업비 100분의 1로 굴절버스 도입 가능하다
트램 사업에 욕심이 많이 난다면 사업 본격화 앞서 트램의 성공 여부를 점쳐볼 수 있는 교통수단이 있다. 바로 굴절버스다. 굴절버스는 2~3대의 차량이 연결된 버스로, 트램과 같은 효과를 낸다. 굴절버스를 이용해 트램 예정 동선을 버스전용 차로로 지정하고 운행하도록 하면 트램 도입 효과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용역진이 제시한 제주 트램 사업비는 4000억원대(통상 훨씬 불어나곤 하지만)이다.
세종시가 앞서 굴절버스를 도입했는데 대당 8억9000만원 꼴이었다. 트램 사업비의 100분의 1인 40억원을 들여 4대의 굴절버스를 운영하거나 혹은, 100분의 2 약 80억원으로 8~9대의 굴절버스를 운영하며 간접적으로 트램의 도입 성공 여부를 평가할 수 있는 셈이다. 노선에 여유가 있다면 남는 굴절버스는 출퇴근 시간대에 붐비는 노선에 투입할 수 있다. 더불어 굴절버스 버스전용차로를 버스와 자전거 전용차로 지정하면 자전거도로를 확충하는 효과도 덤으로 얻을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트램 사업이 도민 반대 여론으로 인해 좌초되더라도 굴절버스를 이용한 대중교통 체계를 확충해 이어갈 수 있다. 트램 사업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이행기 과제로 트램 예상 노선에 굴절버스를 도입해 효과를 확인해 나간다면 트램 사업에 대한 도민의 동의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굴절버스를 도입해 트램에 기대했던 효과를 충분히 얻는다면 구태여 수천억원을 들이는 트램 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사라진다. 그렇게 된다면 약 백억원 미만으로 수천억원 대 사업을 대체하게 되는 셈이다.
#굴절버스, 제주의 도로환경에 맞지 않다는 지적도
굴절버스 도입도 마냥 쉽지만은 않다. 굴절버스는 현재 제주도의 도로 환경에 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굴절버스 도입을 위한 논의가 이뤄지기도 했지만 굴절버스의 회전반경이 크기 때문에 실제 제주 도로에서 운행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는 점이 거론된 바 있다. 굴절버스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굴절버스를 운행하려는 구간 일부의 도로환경 개선이 필요하다.
교통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해 온 제주도시재생지원센터 관계자는 "굴절버스를 제주에 도입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길이 때문에 회전반경이 커서 논의 밖으로 밀려났다"면서 "버스 노선 개선을 통해 각 버스의 배차 간격을 줄이는 방식으로 설계하는 방향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버스 노선 개선과 배차 간격 축소는 버스 운송 분담률을 높이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만하는 과제다. 특히 공항에 집중되고 있는 버스 노선 개편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된다.
트램을 도입하려면 역시나 도로환경 개선 공사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트램과 비교한다면 굴절버스 운영을 위한 도로환경을 조성하는 경우 기존 도로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훨씬 적다. 트램은 왕복 노선을 설치해야 하기 때문. 이런 이유로 제주 트램 용역진이 제시한 노선의 경우 거의 모든 구간에서 도로 폭을 넓히는 방식으로 추진할 수 밖에 없다. 트램보다는 굴절버스가 도로환경 개선에 투입하는 비용이 더욱 적게 든다. 교차로 부근 도로 환경만 개선하면 되기 때문이다. 트램과 굴절버스 도입 시 얻을 수 있는 효과와 비용에 대한 비교 분석이 필요하다.
#양문형 버스? 휠체어 이용자는 어쩌나
제주도에서는 지하철처럼 양문개방형 저상버스 도입을 위한 논의가 적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버스가 정차하는 교통섬 일대의 차로 폭을 줄일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평가 때문이다. 이는 인도 폭을 유지하며 자전거 전용도로를 신설하기 위한 방안으로 거론된다.
다만,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교통약자의 버스 이용 불편 문제다. 양문개방형 버스는 문을 하나 더 만드는 만큼 좌석수가 줄어든다. 거기에 더해 휠체어 이용자의 불편도 따른다. 저상버스의 경우 버스 후문 맞은편에 좌석을 제거하고 입식으로 설계한다. 이 공간을 활용해 휠체어가 탑승할 수 있다. 하지만 양문형 버스의 경우는 이 자리 역시 문으로 대체된다. 기껏 저상버스를 도입했음에도 휠체어 이용이 불가능할 수 있다.
저상버스의 장점 중 하나는 휠체어 이용자 등 교통약자들이 기존 버스에 비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저상버스에서 문 반대편에 휠체어를 세워둘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하지만 두 개의 문이 설치되고 양쪽으로 문이 열리는 방식으로 버스를 설계하면 휠체어를 안정적으로 세워둘 수 있는 공간이 마땅치 않다. 차로 폭 등 도로 시설 관련 효율성은 높일 수 있지만 교통약자에 대한 배려를 내려놓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현재의 저상버스들도 휠체어 이용 불편 문제를 개선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양문형 버스는 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대안은?...프랑스 메스(Metz)시의 경우
제주도가 벤치마킹하는 도시는 대도시들이다. 원희룡 전 지사는 홍콩과 싱가포르를 지향했고, 오영훈 지사는 프랑스 파리시의 15분도시를 끌어들였다. 그와 같은 대도시들을 따라 정책을 설계하다보면 제주도의 실정에 맞지 않는 옷에 맞춰 도민의 삶을 재단해야 된다. 노후한 원도심 관련 대책 마련도 쉽지 않을 수밖에. 거창한 대도시의 기획보다는 해외 소도시에서 주민 이동 편의를 위한 방안을 어떻게 확충해나가는지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교통약자와 제주 실정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저상버스 도입 및 활용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굴절버스와 저상버스, 미니저상버스 3축으로 버스를 편성하는 것이다. 프랑스 메스(Metz)시의 경우를 살펴볼 만하다. 메스시에는 트램이 없다. 대신 굴절버스, 저상버스, 미니저상버스를 활용한 3축 버스교통망을 통해 시내 구석구석을 잇고 있다. 매스시는 굴절버스를 활용해 사실상 트램에 준하는 교통 시스템을 구축했다. 큰 도로를 통한 주요 노선은 3량 굴절버스, 2량 굴절버스가 담당한다.
메스시는 차량 통행이 금지된 상권에도 미니저상버스를 이용한 노선을 운용한다. 제주도로 보자면 칠성로나 누웨마루거리에 미니저상버스가 다니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노인이나 장애인 등 이동약자들은 물론 누구나 미니저상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미니저상버스를 도입하면 제주시 원도심의 경우, 버스가 진입하지 않는 제주북초등학교 정문이나 제주중앙성당 등에도 버스 노선을 확충할 수 있다.
최근 제주도는 15분도시 사업의 일환으로 전농로 벚나무길 일대를 보행자우선도로로 지정하기로 했다. 차량도 다닐 수 있지만 보행자가 우선하는 도로다. 하지만 보행자우선도로 제도 도입 후 기존 구상과 다르게 운영되고 있는 사례가 확인된다. 제주도는 앞서 제주시 연동에 보행자 우선도로 구축했다. 이 도로 곳곳에 주차된 차량으로 보행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다. 보행자는 뒤에서 재촉하는 자동차들을 피해 다닌다. ‘말로만 보행자 우선도로’인 셈이다. 보행자 우선도로의 취지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아직 낮은 상태이다. 전농로에서는 보행자우선도로가 그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있을까.
전농로에는 버스 노선이 없다. 인근 지역 주민들은 버스 이용에 불편을 겪고 있다. 전농로 특정 지역에서는 300미터를 걸어가야 버스정거장이 나온다. 이들의 이동 편의를 위해 전농로에 휠체어도 탑승 가능한 미니저상버스를 투입하는 방안이 대중교통 이용률을 늘리는 계획에 부합한다.
#한 노선 버스 복합 운용을 통한 효율성 제고 방안
현재 제주 지역의 한 버스 노선에는 한 종류의 버스가 투입된다. 버스가 승객이 많은 출퇴근 시간에는 붐비고 그 외 시간에는 공차로 움직이는 경우도 허다하다. 탑승률은 비용 문제로 연결되며 버스 배차 간격을 벌어지게 한다. 느슨한 버스 배차 간격은 버스 이용률을 떨어뜨린다. 버스 운행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배차 간격이 늘어지며 버스 이용률이 떨어지고, 배차 간격을 줄여 버스 이용률을 높이려면 운용 비용이 증가한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한 노선이라 하더라도 승객이 많은 시간에는 굴절버스를 투입하고, 통상 시간에는 저상버스를, 승객이 특히 적은 시간에는 미니저상버스를 투입하는 등의 복합 운용 방식도 고려할 만하다. 에너지 효율성을 높일 수 있고 배차 간격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버스의 배차 간격은 버스 이용률을 높이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버스 복합 운용을 통해 배차 간격을 줄여 이용률을 높이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 이 기사는 제주특별자치도로부터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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