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강원 삼척시 도시재생지원센터에 들렀을 때, 관계자들은 말했다. "포항 어느 동네가 되게 잘한다던데요. 이쪽에서는 꽤 유명해요." 원래 예정된 행선지를 뒤로 하고 포항으로 이동했다.
나흘 동안 목포와 광주, 전주, 청주 등 전국 곳곳을 돌았다. 제주에 적용시킬 만한 주민 주도 도시재생 사례를 찾기 위해서였다. 광주 송정역시장에서 만난 '영광상회' 대표는 말했다. "사람이 많이 온다고 해서 수익에 영향은 없어요. 저는 오일장에 물건 팔러 주기적으로 나가요." 이 가게는 그릇 등 생활용품을 파는 가게였다. 시장에 방문했을 때는 관광객들을 불러모을 야시장 준비가 한창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상인 A씨는 "청년상인 유입도 중요한 점 중 하나였지만, 재계약을 잘 안하더라"며 "특정 시기에만 유입되는 관광객만으로는 상점 유지에 한계가 있어 온라인 판로를 개척하지 않으면 도태되기 쉬운 구조"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업지 대부분 구색은 갖췄으나 어딘가 부족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마을을 가꾸는 모습은 쉽게 찾기 어려웠다. 플리마켓, 야시장은 죽어가는 마을을 겨우 유지하는 심폐소생술에 그치기 일쑤였다.
포항이라고 해서 모든 사업이 성공한 것은 아니다. 포항시에서는 도시재생과 관련해 모두 4개 사업이 진행된 바 있다. 중앙동에는 300억원이 투입됐으나 일시적 사업에 그쳤다. 유행을 타듯 번진 야시장으로 상권을 살린다는 구상이었지만, 기존 상인들은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사업 당시 설치한 철제 시설물들도 야시장이 열리지 않는 계절에는 볼품없는 구조물에 불과했다.
반면, 신흥동은 이같은 관 주도 도시재생사업의 문법을 파괴한 곳이다. 신흥동은 2018년 '우리동네 살리기' 유형으로 대상지로 선정된 곳이다. 사업비는 75억원. 타 유형 사업과 비교하면 적은 금액이다. 그럼에도 예산이 투입된 곳은 제 기능을 하고 있었다. 동네 규모에 비해 유동인구도 많았다. 마을관리협동조합이 주도적으로 나선 영향이 크다.
신흥동 브런치 카페 '휘겔리'는 마을관리협동조합에서 직접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마을협동조합들은 손쉬운 사업 방안으로 카페를 곧잘 연다. 잘 안 되는 경우도 많다. 휘겔리는 성공적인 모습이었다. 방문객들은 테이블에 음료를 두고 담소를 나누거나, 야외 테라스에서 사진을 찍기 여념이 없었다. 카페 한 켠에는 항공샷 포토부스도 마련돼 있었다. 요즘 사람들에게 '먹히는' 요소다.
카페 맞은 편에 위치한 '저스트드로우'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액션페인팅 체험장으로 부모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다. 남들이 하는 아이템을 따라 하기보다 조금 다른 무언가를 직접 발굴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신흥어울림센터에는 안마기구나 전기장판 등이 마련된 마을쉼터가 운영되고 있었다. 모두 카페와 체험장에서 얻은 수익으로 구매한 것들이다. 선순환이다.
이같은 시설은 당초 사업계획서에 없었다. 마을주민들이 나서서 100차례가 넘는 회의를 통해 계획을 바꿔나간 것이다. 제주투데이 취재진은 이날 김동진 신흥동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을 만났다. 그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마을에 필요하지 않은 사업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취재진은 휘겔리 2층 협동조합 사무실에서 김 이사장을 통해 신흥동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만나면 먼저 인사하기, 내가 한수 양보하기, 솔선수범으로 아름다운 우리마을 만들기' 등. 사무실 벽에는 갈등관리 오계명이 붙어있었다.
"주민과 관이 협업, 동네에 꼭 필요한 사업을 선정해서 추진하면 당연히 괜찮죠. 그런데 우선 예산을 따기 위한 목적으로 관이 작성한 계획서를 내고, 선정되면 주민을 억지로 연결하는 식으로 가다보니 어긋나게 되는 겁니다. 국내 도시재생사업 중 97%가 이렇습니다."
도시재생사업에서는 빠지지 않는 내용이 있다. '거점시설'이다. 우선 건물을 지은 다음 협동조합을 만들어 억지로 운영하게 된다. 노하우도, 전문가도 없다. 결국 실패로 끝난다. 협동조합 1기부터 5기까지 연임하고 있는 김 이사장은 이같은 문제의식을 느껴 이의제기를 하기 시작했다.
전략도 있었다. 그는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두꺼운 책자를 펼쳐보였다. 포항시 측과의 회의록, 서로 주고받은 공문서 등이다. 당시 벌인 말다툼, 사업 변경 내용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필요하면 국토교통부까지 직접 방문해 논의를 거쳤다.
김 이사장은 "관에서 말을 바꾸면 '저번 회의 때 이렇게 얘기했는데, 말이 왜 다르냐'고 하면서 회의록을 들이밀었다"며 "이런 식으로 사업을 180도 바꿨다. 초기 계획에는 게스트하우스, 식당 등을 설치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전혀 필요없는 내용이라 다 없앴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유연한 인식도 한몫했다. 액션페인팅 체험장은 애초 양조장으로 운영될 곳이었다. 외부 청년들이 신선한 아이디어를 마을 측에 제안하면, 협동조합에 소속돼있지 않더라도 마을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면 받아들였다. 현재 조합원 수는 모두 40여명. 이 가운데 신흥동 거주 주민이 30명으로, 나머지는 이곳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 이들이다.
김 이사장은 타 지역 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한 현장답사를 지양한다고 했다. 마을 상황에 맞지 않는 사업을 무작정 따라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회의비로 마을 공금을 사용하지도 않고, 지출이 필요하면 운영위원들의 사비로 처리했다. 현재는 시티팜, 업사이클링 사업도 구상 중이다.
결과는 증명하고 있다. 그는 "재생사업 초기만 해도 주민 평균 연령은 65세였는데, 지금은 45세다. 청년들이 많이 유입됐다는 뜻"이라며 "일자리 창출도 자연스럽게 되고 있다. 전에는 어린이나 청년들이 전혀 없던 동네에 생기가 도니 집에만 계시던 어르신들도 '보기 좋다'며 밖으로 자주 나오신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제주특별자치도로부터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