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025년 임금협상 결렬시 다음달 6일 총파업에 나설 예정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들의 파업은 연례행사 정도로만 여겨지고, 급식·돌봄 현장 혼선 등 그로 인한 불편함이 우선 부각되고 있다. 왜 학교 비정규직들은 매해 파업이라는 카드를 내미는 것일까. <제주투데이>는 이번 파업에 동참하는 제주도내 교육공무직 6명을 만나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저도 파업 안하고 싶어요.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 중에 (파업)하고 싶은 사람 아무도 없을 걸요. 그런데 이렇게라도 안하면 절대 안바뀌는데 어떻게 합니까." 지난 13일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제주지부 사무실에서 만난 11년차 조리실무사 박경선(50)씨가 토로했다.
오전 7시 40분부터 오후 3시 40분까지. 애월초에서 근무하는 경선씨가 학교에 있는 8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간다. 경선씨를 비롯한 704명의 조리실무사, 185명의 조리사들이 그와 비슷한 하루를 보낸다. 도내 전체 학교 비정규직 2196명 중 약 40%다.
출근하자마자 새벽에 배송된 야채·과일 등 식자재부터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검수를 끝내면 그날 식단에 맞춰 재료를 씻고 소독하고 다듬는다. 1인당 최소 100인분이다. 아이들이 있는 학교라서 위생수칙이 다른 곳보다 까다롭다. 손질된 재료를 찌고 볶고 튀기고 삶고 끓이는 일을 이어나간다. 이 모든 일이 배식 전 3시간 안에 이뤄진다.
법정 유급휴게시간 30분은 보통 점심시간으로 사용된다. 시계와 출입구를 간간히 확인하면서 쫓기듯이 먹는다. 학생들이 바깥에 대기하고 있으면 마음이 급해진다. 잔반을 버리러 가는 순간까지 입으로 한 숟가락 더 밀어넣는다.
"일이 많고, 마음이 급해서 뛰어다니다보니 뒤로 넘어져 머리를 바닥에 부딪힌 적이 있어요. 10초 정도 정신을 잃었고 지금도 기억이 안나요. 제가 아프다고 빠지면 안그래도 바쁜데, 다른 동료들이 더 고생할 걸 아니까 잠깐 몸을 추스리고 일했어요."
경선씨가 가장 피하고 싶은 날은 김장날이다. 학교마다 다르지만, 애월초의 경우엔 한달에 2차례씩 각각 20포기의 김치를 급식실 조리사·조리실무사들이 직접 담근다. 질 높은 급식을 제공한다는 취지로 2005년 제주도교육청 친환경급식 도입 이전부터 이어져 온 업무다.
기존 조리, 배식, 청소에 김장 일까지 추가하면 그날은 스스로가 '파김치'가 된다. 영양사, 행정공무원 등 관리자 재량에 따라 다르지만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초과근무도 허용되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게 경선씨 설명이다. "기계처럼 배식과 청소까지 마치고 나면 속옷까지 땀으로 푹 젖어있어요. 여름에도 뜨거운 물을 쓰지 않으면 일할 수 없거든요."
그의 새끼손가락은 바깥으로 휘어있었다. 학생들이 식사를 마치고 잔반을 버린 뒤 급식판을 겹쳐서 쌓아두면, 급식 종사자들이 식판들을 일일이 떼어내 세척한다. 남은 잔반 때문에 단단히 달라붙은 식판 틈에 손을 넣어 빼는 식이다. 이러한 작업을 11년 동안 매일같이 반복하다 보니 손 모양까지 변한 것이다.
격무로 인해 급식실 구성원들의 몸은 망가져가고 있다. 최근 제주에서 최초로 폐암 진단을 받은 사례까지 나왔다. 가장 흔한 건 근골격계 질환이다. 중앙여중에서 근무하고 있는 조리실무사 임은지씨도 역시 발목보호대를 착용하고 있었다. 지난 15일 퇴근 직후 취재진과 인터뷰한 그가 힘없이 말했다.
"아마 사물함에 근육이완제, 진통제 없는 선생님이 없을 걸요? 한의원이나 정형외과로 퇴근하시는 분들도 많고 ... 무거운 물품은 2인1조로 옮기라는 업무 가이드가 있지만 현장에서는 지켜지기 어렵죠. 업무는 많은 데 사람이 부족하니까. 허리나 손목이 삐끗해도 참고 일할 수밖에 없어요. 제가 조퇴하거나 병가 쓰면 다른 선생님이 힘든 걸 아니까요."
학교 현장 5년차인 은지씨는 호텔, 요양원, 식당 등 대용량 조리 업무 경험이 많지만, 단시간 내에 이같은 규모의 음식을 마련해야 하는 곳은 학교가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메뉴 가짓수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을 수도 있어요. 실제로 교육청과 노조 간담회 때 자주 요청하는 이야기에요. 학교끼리 경쟁이 붙어서 메뉴가 다양화됐는데, 그만큼 다양하게 버려지거든요. "
이같은 고강도의 노동에 비해 임금은 터무니 없이 적다. 하루이틀 문제가 아니라 꾸준히 대두된 문제다. 한달 기본급은 올해 기준 약 198만원(최저임금 약 206만원)이다.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결원 문제도 심각하다. 올해 도내 급식실 정원은 899명으로, 학비노조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105명이 결원됐다. 전체 11.9%로 제주는 전국 1위 수준이다.
도교육청 공고도 매번 미달이 나는 상황에서, 노동자 스스로가 대체인력을 구하지 못하면 인력이 부족한 대로 일할 수밖에 없다. 1명당 맡아야 하는 음식양은 사람이 적을 수록 늘어난다. 결국 휴가를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상황까지 온다. 지난 2월부터 노조 위원장을 맡고 있는 경선씨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 노조에 왔을 때 여기가 노동조합인지, 인력사무소인지 헷갈리더라고요."
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겸직을 위한 허가 과정도 녹록치 않기 때문. 특히 급식 노동자는 계약기간 1년 중 방학을 제외한 9.5개월만 급여를 받는다. '보릿고개'. 급식실에서 방학을 부르는 말이다. 은지씨는 말했다. "주변에는 방학을 대비해 월급을 쪼개서 6개월 적금을 드는 선생님도 있고요. 주로 선과장에 많이 가고, 저 같은 경우에는 새벽 우유배달도 해봤어요. 4대보험이 가능하면 못한다고 보시면 돼요."
다만, 급식 처우 개선은 목소리가 많이 나온 만큼 작은 변화도 일고 있다. 김광수 교육감은 오는 2026년부터 급식실 종사자에 한해 상시전환을 약속했고, 김치 완제품 조달도 협의했다. 몇년 간 당사자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고, 요구한 것들이다. 실제로 이행되기까지는 지켜봐야 한다.
이들이 파업에 동참하는 이유는 '직무가치를 인정해달라'는 행동이다. "지금은 저희를 '소모하는 존재'라고 보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신규 유입이 적은 이유이기도 하고요. 같은 동료들의 자존감은 떨어지고 있어요. '파업해도 들어주지도 않을 거 뭐하러 하냐'고 이미 자포자기하는 분들도 많아요. 급여를 올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도교육청부터 시작해서 교육부, 대통령 등 관리자가 저희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어야 본질적인 게 바뀔 수 있어요."
이들이 격무를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결국 '아이들' 때문이다. 임씨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처음 발령받은 학교가 이른바 '일진' 학생들이 많은 곳이었어요. 학교에 잘 안나오는 학생한테 배식하면서 '밥 먹으러라도 학교 오라'고 하고, 담배 피우지 말라고 농담도 하고 그랬죠. 처음에는 무시하다가 1~2년 지나니 마음의 문을 열고 학교도 잘나오니까 정말 흐뭇하더라고요. 졸업 전 마지막 급식날에는 일렬로 서서 저희한테 큰절을 해주는데 ... 그날 같이 일하는 분들이랑 엄청 울었어요. 이러니까 우리가 일할 수밖에 없지 싶어서."
박씨도 말했다. "배식 하다보면 '선생님, 급식 너무 맛있어요. 짱이에요' 같은 말을 해줘요. 사실 이 한 마디 때문에 참고 일하는 것 같아요. 윤석열 정권이나 교육부에서는 '교육복지'를 강조하고 있어요. 그 주체는 아이들이 맞아요. 하지만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이 가기 위해서는 일하는 노동자가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