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에 들어서고 현재까지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서 크게 영향을 끼치는 두가지 일이 일어났거나 진행 중이다. 두가지는 모두 깊이 연결돼 있어 영향을 미친다. 하나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가 당선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동유럽의 아제르바이잔에서 제29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가 지난 11일부터 열리고 있단 사실이다.
트럼프 당선자는 첫 번째 대통령 임기 말에 미국을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시켰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바로 복귀해 실제 탈퇴기간은 두 달 남짓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취임 초기에 탈퇴할 것으로 예상돼 영향을 미치는 기간이 길어질 것이다. 트럼프는 2017년에 ‘기후변화는 사기’라는 입장을 표명했고, 석유와 가스를 지속적으로 추출하겠다는 ‘Drill, Baby, Drill’라는 슬로건을 선거 유세 주요 캠페인으로 사용한 바 있다.
트럼프의 당선으로 인해 지구적 차원의 기후위기 대응에는 많은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기후과학과 에너지정책을 주로 다루는 매체인 Carbon Brief는 트럼프의 기후에너지정책으로 인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40억톤이나 더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트럼프 당선자는 지난 11일 리 젤딘(Lee Zeldin) 전 하원의원을 환경보호청(EPA) 청장에 지명한다고 밝혔다. 리 젤딘은 파리 기후협정에 반대하고 석유 및 가스 확장을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혀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지명을 수락하면서 "미국의 에너지 우위를 회복하고 자동차 산업을 활성화하며 미국을 인공지능 분야의 글로벌 리더로 만들겠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환경보호’를 책임지는 기구의 책임자와는 어울리지 않는 입장임이 분명하다.
이러한 트럼프의 당선은 같은 시기 열리고 있는 COP29에서의 협상 전망도 매우 어둡게 만들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12일 동안 열리는 COP29에는 198개국 4만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회의다. 그러나 중국, 인도 등 탄소다배출국 뿐만 아니라 G7 국가에선 영국과 이탈리아만 정상이 참석하는 등 선진국의 주요 정상이 불참해 ‘기후행동에 대한 정치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과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 중이다.
이번 COP29에서의 주요 협상내용과 쟁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후 재원’과 관련한 문제이다. COP29는 ‘금융 총회’라고도 불리며 특히 개발도상국의 기후 행동을 지원하기 위해 해소해야 하는 경제적 격차가 초점이다. 모든 국가가 약속을 이행하는 데 중요한 기후 재원을 위한 새로운 공동 목표(NCQG)를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2009년 코펜하겐 COP15 총회 이후 꾸준히 제기되는 기후재원 논의는 매우 지지부진하다. 지난해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COP28에서 올해까지 기후재원의 조달 방안을 확정하기로 했는데,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의견 차이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개발도상국들은 1조 달러 이상(1400조 원)의 기후 재원 조성을 위해서는 선진국들이 협약상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선진국은 재원 조달국의 범위를 '온실가스 최다배출국' 중국 등으로 넓혀 더 많은 국가가 돈을 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여기에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나라인 미국에서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트럼프의 등장으로, 파리협약의 탈퇴를 공언하고 있어 기후재원 논의는 한걸음도 진전되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다.
둘째, NDC(국가별 감축목표) 이행 및 글로벌 재고조사에 관한 내용이다. 회의기간 동안 각국은 최신 글로벌 재고조사(GST)의 결과를 바탕으로 파리 협정에서 정한 기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국가별 공약(NDC) 개선에 합의해야 한다. 2025년 NDC 갱신에 앞서 각국이 파리협정 목표에 맞는 야심찬 감축 목표를 세울 필요가 강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주요 선진국에서 이탈리아와 함께 정상이 참여하고 있는 영국의 키어 스타머 총리가 지난 12일 ‘2035년까지 1990년 대비 81% 감축’을 선도적으로 밝혔다.
내년도 COP30 개최국인 브라질이 2005년 대비 배출량을 59~67% 감축 계획을 제출했고, 지난해 COP28 개최국 아랍에미레이트도 2019년 대비 47% 감축하겠다는 NDC를 제출했으나, 아직 소수 국가에 그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마저도 신뢰성 있는 목표이자 계획인지에 대해서도 의심받고 있다.
셋째, 에너지 전환과 손실 및 피해 보상기금에 관한 내용이다. 화석 연료에서 벗어나 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하는 방법과 기후위기에 가장 취약한 국가를 지원하기 위해 최근 설립된 손실 및 피해 기금을 효과적으로 실행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논의한다.
지난해 COP28에서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을 합의했으나 COP29에서도 화석연료의 영향력과 그림자는 여전하다. 산유국이자 개최국인 아제르바이잔의 대통령은 석유와 가스를 ‘신의 선물’이라고 지칭하며 화석연료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연설을 했다. 화석연료 기업을 대표하는 로비스트가 또한 1700명 이상 참가하고 있으며 이는 기후취약국 10개 국가의 대표단을 합한 숫자보다 많다.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화석연료거래가 이뤄지기도 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지난 15일에는 기후 전문가, 과학자 및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을 비롯한 전 유엔 최고 책임자들이 공개서한을 통해 석유 및 가스 확대 국가가 COP 의장직을 맡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 개혁을 촉구하고 나섰다. ‘화석 에너지의 단계적 퇴출·전환을 지지하지 않는 국가를 배제하는 엄격한 자격 기준’을 마련하고, ‘현재의 구조로는 기하급수적인 속도와 규모로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며 COP 절차의 개혁을 촉구한 것이다.
COP28에서 확정된 ‘손실 및 피해보상기금’에 관해서도 논의도 이뤄질 예정이다. 기금액은 1000억 달러 규모로 합의됐지만 매년 기후피해로 인한 손실이 약 4000억 달러로 추정되는 만큼 매우 적다는 지적이 많다. 1000억 규모조차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2024년 현재까지 출연금은 약 7.9억달러 규모로 미미한 수준이다.
이처럼 중요한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도 주요쟁점인 ‘탄소시장 규칙’과 관련해서는 합의가 수월하게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파리협정 6.4조의 내용으로 탄소배출권 거래시장에 관한 세부지침이다. COP29 개막 첫날에 각국이 합의한 것이다. 2015년 파리협정 이후 10년간 세부이행지침을 확정하지 못하다가, 이번에 합의함으로써 국가간 탄소배출권 거래가 활발해질 것이라고 전망되고 있다. 약속한 수준의 온실가스 감축량을 맞추지 못한 국가는 국제 시장에서 감축에 성공한 국가의 배출권을 구매하게 된다. 이 합의에 대해 Carbon Brief(기후위기 전문 웹사이트)는 별다른 논의없이 이뤄졌다며 ‘투명성과 적절한 거버넌스에 있어 나쁜 선례를 만든다’고 지적했다.
COP29에서의 쟁점 내용과 진행 상황을 살펴보면 그레타 툰베리의 “아제르바이잔은 COP29를 개최할 자격이 없다”는 지적이나 기후취약국가들이 선진국들을 향해 “행동이 아닌 말만을 떠벌린다”는 비판이 타당해 보인다. COP29에서 이전과 달라지지 않은, ‘평소처럼 하는’ 선진국들의 대응은 기후위기의 미래를 더 암울하게 한다.
COP29 자리에서 발표된 자료에서도 석유, 가스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은 줄어들지 않고 있음이 드러났다. 세계기상기구는 2024년 올해 지구평균기온이 1.54도 상승해 파리기후협정에서 목표로 삼았던 1.5도를 돌파한 첫해가 됐다고 발표했다. 세계기상기구는 세계가 파리 협정에서 설정한 1.5도 온도 목표를 초과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하였지만, ‘적색경보’가 발령된 것임은 분명하다.
기후위기로 인해 입는 피해는 심각하다. WWA(World Weather Attribution)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가장 치명적인 기후재해 10건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57만 명에 달한다. 기후재해는 더욱 심해질 것이며, 그에 따른 인명피해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경제에 끼치는 영향도 크다. 자연과학 저널인 네이처에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기후변화의 여파로 2000년부터 2019년까지 총 2조8000억 달러(약 3769조 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했다. 피해 규모는 2000년 600억 달러(약 81조 원)에서 2022년 2800억 달러(약 377조 원)로 20년 사이에 4배 이상 늘었다. 2050년에는 기후변화로 인해 소득이 20% 줄어들 것이라고 추정된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국회에 제출된 자료에 의하면 2013년부터 2023년까지 최근 11년간 한국의 기후재난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액은 16조 원 규모이며, 2022년 경제 피해액은 2013년 대비 5.3배 증가했다.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은 ‘평소대로(Business As Usual)’ 한가한 반면에, 기후위기는 급박한 현실이고, 미래는 매우 암울하다. 전 지구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그리고 좁혀서 제주도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선 지난 8월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의 제8조 1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판결이 내려진 바가 있다. 2031년부터 2049년까지 감축목표에 관하여 그 정량적 수준을 제시하지 않은 것이 헌법에 불합치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내용에 대해 국회는 2026년 2월까지 개정된 내용을 합의해야 한다. 그리고 2025년에는 2035년까지 감축목표를 담은 새로운 NDC를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공개적이고, 믿을 수 있는 사회적 논의는 보이지 않는다. 제주도는 2035년에 탄소중립도시를 이루겠다는 ‘야심차고 선도적인’(?) 비전을 선포하였지만, 세부적인 이행목표나 계획은 이전에 실패로 드러난 것과 다르지 않는, 신뢰할 수 없는 내용을 제출하였고, 오히려 탄소배출을 늘리는 계획은 지속적으로 차질없이(!) 진행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상황을 목도하며, 비관에 사로잡히지는 말아야 할듯 싶다. 그러한 태도는 기후위기에 책임이 있는 국가와 세력이 지금처럼 평소대로 기후위기를 ‘그린워싱’의 기회로 활용하는 것에 도움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기후운동가 중의 한 사람은 ‘1.5도는 깨졌다. 그러나 기후싸움은 지속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구기온은 0.1도라도 상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1.6도보다는 1.5도 이내로, 1.7도 보다는 1.6도 이내로, 2도보다는 1.9도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 기후재해의 강도나 빈도를 약하게 한다. 그리고 지구기온의 상승과 기후위기의 영향은 몇 년이 아닌 수십 년, 수백 년에 걸쳐서 이뤄지는 장기적인 과정이다. 따라서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행하는 기후행동이 중요하다.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기후행동에서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격언이 아닌가 싶다.
강동진 치과의사
제주도의 시골동네에서 마을주민들의 치과주치의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애쓰고 있다. 사람들의 건강권, 생명과 연결되어 있는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다. 기후위기는 인류생존의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다. 성장제일주의에 갇힌 현 체제가 낳은 문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경험했듯 사람의 생명과 주거 등 인권과 깊게 연결되기도 한다. 한반도 최남단 제주도는 기후위기 최전선이다. 이러한 다양한 문제와 현상을 '기후정의'란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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