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훈 제주도정이 야심차게 내세웠던 ‘제주형 15분 도시 프로젝트’가 용역결과가 공개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모양새다. 제주형 15분 도시는 ‘제주 어디에 살든 도민의 동등한 기회와 삶의 질을 보장하는 사람중심 동의’라고 정의된다.
오영훈 도정은 작년 9월에 가졌던 ‘15분 도시 비전 선포식’에서 15분 도시 제주의 비전으로 '새로운 생활의 시작, 빛나는 제주'를 천명한 바 있다. 제주도를 30개 생활권으로 나눠 내년 2월까지 시범지구로 선정된 4개 생활권(제주시 애월, 삼도1~일도~, 서귀포시 표선, 천지~송산 생활권)의 실행계획이 수립된다. 이후 순차적으로 나머지 26개 생활권의 계획도 수립해 2033년까지 추진할 계획을 밝혔다.
15분 도시를 대표적으로 추진한 프랑스 파리는 도보와 자전거를 이용해 15분 이내로 도달할 수 있는 곳에서 주거와 일, 쇼핑, 건강, 교육과 취미 등 사회 기본 기능들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통해 동네 주민 간의 연계를 활성화시키고, 도시의 삶과 서비스가 동네 안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개념을 제시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15분’이라는 시간이 고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1~2km 공간 내에서 사회 기본 기능을 누리기 위해서 ‘자전거’나 ‘도보’로 접근 가능이 가능해야 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그 시간을 대략 10~20분 사이에서 도출한 것이 ‘15분’일 뿐이다.
15분 도시의 개념은 다양한 방식과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파리의 15분 도시,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슈퍼블록, 호주 멜버른의 20분 도시, 미국 디트로이트의 20분 도시 등이 그것이다. 스웨덴은 놀랍게도 ‘1분 도시’라는 비전을 제시한다.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N분 도시’가 유행하는 중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한 후보가 ‘21분 컴팩트 도시’라는 공약을 제출한 이후 15분 도시 부산, 15분 도시 광주, 15분 도시 청주 등 전국적으로 N분 도시가 계획 또는 추진 중이다.
그렇다면 ‘15분 도시’가 뭐길래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을까? ‘15분 도시’개념을 처음 고안한 카를로스 모레노 프랑스 파리1대학의 교수는 시민의 삶을 구성하는 6가지 요소로 주거(Living), 업무(Working), 생활 필수시설(Supplying), 돌봄(Caring), 교육(Learning), 문화·여가(Enjoying)를 제시한다. 또 이 모든 것들을 걸어서 혹은 대중교통으로 이를 제공하는 시설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기후위기에 맞서려면 자연과 도시의 공존뿐 아니라 삶과 일하는 방식을 바꿔 새로운 경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도 말한다. 콘크리트·화석연료 시대에 만든 도시들은 상업·문화·주거 등으로 용도를 나눠 그 사이를 이동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이때문에 언제나, 어디서나 필요한 기능을 접할 수 있는 다중심(다핵)도시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이를 토대로 ‘15분 도시’의 핵심을 추리면 △기후위기시대에 대응하는 경제구조 △시민의 삶을 구성하는 요소의 충족 △걷기와 대중교통 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기반해 ‘15분 도시’의 핵심을 두 가지로 정리하면 첫째 “일상생활에 필요한 서비스를 도보 또는 자전거, 대중교통으로 15분 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시 공간을 조성”할 것, 둘째 “도로와 자동차 등을 억제하고, 도시 내에 녹지공간을 늘려 탄소배출을 줄여 친환경녹색도시를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5분도시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파리의 경우 △자전거와 보행 인프라 정비 △도심 녹지화 △공공 공간 전환 및 이를 위한 주민 참여 △‘완전한 동네’ 구축과 번영을 위한 정책 △지역상점 활성화 △모두를 위한 주택 공급 등의 방향 속에서 세부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외에 많이 알려진 대표적인 정책은 도심의 주차공간을 공원이나 테라스로 바꾸는 것과 더불어 도로의 차량속도제한을 시속 30km로 정한 것이다. 바르셀로나의 슈퍼블록정책은 가로세로 400m의 도시블록을 정하고, 블록 안에는 자동차와 오토바이의 출입을 금지해 응급차나 주민이 소유한 차만 출입가능하도록 하면서 시속 10km로 속도 제한하고 있다.
이에 근거해 오영훈 도정이 밝히고 있는 ‘15분 도시 제주’의 비전을 평가해 보자. 오영훈 도정은 15분 도시의 4가지 전략으로 △도시·읍면 생활필수기능 공급 △이동수단 혁신 △탄소중립 △공동체 활성화 등을 제시했다.
각각의 전략을 구현하는 세부정책이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단계지만, 제주도정이 그동안 밝힌 자료에 따르면 자동차와 도로 중심에서 도보와 자전거 중심의 도시로의 전환 방향이 보이지 않는다. ‘이동수단 혁신’을 내세웠는데, 그 내용은 수요응답형 버스, 수소트램, 수소버스, 수소 도심항공교통(UAM) 등 이동수단의 다양성 확보에 초점이 맞춰진 느낌이다.
앞서 ‘제1차 제주도탄소중립기본계획’에서 수송분야에서는 전기자동차보급이 핵심정책과제로 제시되고 있어 ‘자동차 중심의 제주가 아닌 걷기 좋고 자전거를 타며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제주를 만들겠다’고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과제는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심지어 ‘버스준공영제’ 실시에 예산낭비가 지적되자, 대중교통인 버스와 버스노선을 줄이고, 민영화하는 정책을 추진 중에 있다. 제주도 곳곳에서 자동차 도로건설이 계획되거나 진행되고 있다는 것 또한 주지의 사실이다. 제주도정 정책의 일관성이 전혀 보이지가 않고, 앞뒤가 맞지 않는다.
다음으로는 ‘탄소중립’을 내세웠지만 이를 위해 최근 발표한 ‘제1차 제주도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도심에서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녹지공간’을 늘리거나 확보하는 게 핵심이고, 제주도의 읍면지역에서는 존재하고 있는 숲, 목장 등 초지, 곶자왈 등의 탄소흡수원을 파괴, 개발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지하수보호구역 중산간에 대기업이 추진하는 대규모 관광단지개발이 검토되고 있는 상황이 ‘탄소중립’과 맞지 않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선거 때만 되면 주민숙원사업이라면서 후보들이 공약으로 ‘주차장 확대’를 내거는 모습도 익숙한 광경이다.
세번째로 ‘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사업의 시행과정에서 주민참여는 필수적이다. 주민참여는 한두 차례의 ‘사업설명회’를 통해 이뤄지지 않는다. 도시공간과 생활권에 거주하는 도민 및 지역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참여하고,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정보가 충분히 제공돼야 하며, 이를 위한 구조가 갖춰져야 한다.
더불어 이와 관련한 도정의 정책이나 계획이 구체적으로 제시돼야 한다. ‘15분 도시’는 기존 자동차와 도로 중심의 문화와 생활에 젖어 있는 삶을 바꾸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만큼 주민들의 정책을 얼마나 수용할 수 있을지 여부에 그 실현가능성 여부가 달려 있다. 도민들을 단지 정책의 수혜대상으로만 여기거나, 정책실행의 수동적인 참여자로만 간주하는 것은 ‘15분 도시’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15분 도시 제주’가 제시됐을 때 가장 먼저 제기되었던 비판은 면적이 넓고, 인구밀도가 낮은 제주도에는 적용하기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15분 도시’정책이 시행되는 곳이 대부분 인구가 수백만, 천만에 달하는 대도시이기도 하다.
또 우려되는 점은 생활인프라가 갖춰져 있는 제주시 동지역과 그것이 부족한 읍면지역의 다양한 환경에 15분 도시 개념을 동일하게 적용가능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최종적으로 제시된 구상에서도 읍면지역의 의료시설 등 필수시설 접근성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해결책이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우려들에도 불구하고 ‘15분 도시’의 철학과 핵심개념, 구체적인 시행은 기후위기 시대에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그 정신과 철학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라도 핵심 철학과 개념을 되새기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도시에서는 15분 도시의 구현을 위한 접근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터널을 뚫고 도로를 새로 건설하는 등의 계획을 추진하는 일도 벌어진다고 한다. ‘15분’이란 시간에 매몰된 까닭이다. ‘15분’이란 시간보다 ‘사람과 지역공동체’가 핵심임을 간과해서 나타나는 모습이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속담이 있다. 같은 씨앗을 뿌려도 자라는 토양이나 환경이 달라지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게 된다는 의미라고 한다. ‘15분 도시’가 유행을 쫓아가는 행정행위가 되거나, 원래의 취지와 개념과는 상반되게 변하는 결과를 낳거나 의도해서는 안될 것이다.
강동진 치과의사
제주도의 시골동네에서 마을주민들의 치과주치의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애쓰고 있다. 사람들의 건강권, 생명과 연결되어 있는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다. 기후위기는 인류생존의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다. 성장제일주의에 갇힌 현 체제가 낳은 문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경험했듯 사람의 생명과 주거 등 인권과 깊게 연결되기도 한다. 한반도 최남단 제주도는 기후위기 최전선이다. 이러한 다양한 문제와 현상을 '기후정의'란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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