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 제8조 제1항은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
지난 8월 29일 헌법재판소에서 내려진 판결 내용의 일부다.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제정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하 탄소중립법)’ 제8조 제1항은 ‘정부는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의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35퍼센트 이상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만큼 감축하는 것을 중장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이하 “중장기감축목표”라 한다)로 한다’로 규정돼 있다. 이 조항이 ‘헌법불합치’판결을 받은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이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 ‘0’을 목표로 한다고는 하지만,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19년 동안 감축목표에 대해서는 어떤 형태로도 정량적 수준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국민의 기본권 보호의무를 위반,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판결했다. 더하여 미래세대에 과중한 부담을 지운다고 지적했다.
소송과정에서 정부는 현실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세울 필요가 있었고, 감축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이미 시행하고 있어 기본권 침해가 아니라고 반박했다고 한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부족으로 인한 기본권 침해를 인정했다. 이 판결에 따라 국회는 2026년 2월 28일까지 해당 법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을 제외한 다른 내용에 대해서는 기각하거나 위헌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탄소중립법의 위 조항과 더불어 동시에 헌법소원이 제기되었던 탄소중립법 시행령에 제시된 2030년까지의 40% 감축목표나 그에 따른 부문별, 연도별 감축계획이 지닌 여러 가지 문제점에 대해서는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부족이 국민의 기본권인 환경권을 침해한다는 것을 인정한 의미 있는 판결이긴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연도별, 부문별 감축목표의 구체적인 기준에 따라 감축목표의 달성 가능성 여부, 기후위기 대응의 속도 및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지 여부가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이는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 제출한 ‘제1차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보면 보다 더 중요하게 따져야 하는 내용이다. 해당 계획에서 윤석열 정부는 2030년까지 감축목표 중 현 정부 임기 5년 동안인 2027년까지 감축목표는 전체 감축목표의 40%만을 제시하고, 다음 정부 3년동안 나머지 60%를 감당하도록 제시해 차기 정부로 감축 책임을 더 많이 떠넘긴 바가 있다.
부문별 감축목표에서는 산업부문의 감축목표를 이전 문재인 정부보다 더 낮췄다. 산업계의 민원을 받아들여, 기업이 져야 할 책임을 사회로 전가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받은 바가 있다. 그리고 기준연도인 2018년과 목표연도인 2030년에 똑같이 ‘온실가스 배출량’이란 용어를 쓰면서 2018년은 ‘총배출량’, 2030년은 ‘순배출량’을 기준으로 삼는 ‘꼼수’로 감축량을 과장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제주도는 어떠한가? 오영훈 도정도 탄소중립법에 근거해 올해 5월 2033년까지 적용되는 ‘제1차 제주특별자치도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을 제출했고, 이와 함께 ‘에너지 대전환을 통한 2035 탄소중립 비전’ 선포식을 치뤘다. 중앙정부의 목표보다 15년 앞당겨서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지고, 이에 따른 대응의 신속성이 매우 필요하다는 점에서 탄소중립 시기를 앞당기겠다는 의지와 목표는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고 반드시 달성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제주도는 2030년에 ‘탄소 없는 섬’이라는 비전과 목표를 제시했던 ‘CFI 2030’ 전략의 구체적인 현실을 목도한 바 있다. 그래서 오영훈 도정이 제출한 ‘2035년 탄소중립 비전’의 적합성에 대해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기본계획은 ‘지속가능한 글로벌 탄소중립 선도도시 제주’의 비전하에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를 53% 감축하고, 2035년에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8개 분야별로 감축 정책과 부문별 정책과제를 구체적으로 제출했다.
그런데 연도별 감축목표 제시량을 보면 2035년 탄소중립 목표에서부터 의구심이 든다. 기본계획은 2033년까지 감축목표를 제시하고 있는데 2030년 53%에서 3년 후인 2033년에는 64%를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2년 후에 나머지 감축목표를 달성하겠다고 한다. 3년 동안 11%p를 감축했는데, 2년 동안은 3배 더 많은 36%p 감축을 한다고 한다는 것. 2년 동안 감축을 위한 무슨 ‘매직’이라도 부리려고 하는 것일까? 안타깝지만 부문별 감축목표를 봤을 때 그런 ‘매직’은 없어 보인다.
제주도에서의 온실가스 전체 배출량 중 제주도의 관리 권한에 있는 배출량은 65%를 차지한다. 그런데 부문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보면 2030년 감축률(1-목표배출량/기준배출량)은 35%인데, 2033년에도 35%를 제시하고 있다. 늘어만 가는 배출량 전망과 비교하여 목표감축량을 그보다 더 높게 잡지 않았다. 게다가 건물, 수송, 농축수산, 폐기물 등의 부문에서 폐기물 부문이 90% 정도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폐기물 부문 이외 부문의 감축률은 많지 않다.
이처럼 제주도의 2035년 탄소중립 목표는 과장됐거나 ‘정치적 선언’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 오영훈 도정 임기가 끝난 후의 계획이라고 이렇게 무책임할 수 있을까? 차라리 정부의 계획대로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천명하는 게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이전의 ‘탄소 없는 섬’이라는 비전은 그나마 제주도가 다른 지역보다 빠르게 많이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이끄는 계기와 동기를 부여하기라도 했지만, 오영훈 도정의 ‘2035년 탄소중립 비전’은 실현 가능하지 않은 ‘선언’에 불과할 뿐,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제주도에선 현재 탄소흡수원 역할을 하는 밭과 초지, 숲을 없애거나 줄이고, 숨골과 철새 도래지 등 생태계를 파괴하면서, 운송수단 중에서 탄소 배출을 가장 많이 하는 비행기의 운행을 늘리는 것을 전제로 한 제2공항 건설 기본계획이 고시됐고, 탄소흡수원이 많이 분포해 있는 중산간 개발은 멈추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해수온도의 상승으로 미역 등 조류를 비롯한 바다생물이 서식하는 해양생태계의 파괴는 가속화되고 있다. 폭염, 가뭄 등으로 농작물 서식의 조건은 악화돼 농민들의 가슴도 날씨만큼 타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상황 모두 탄소중립과는 멀어지거나 거꾸로 가는 길이다.
지난 9월 7일에는 ‘907제주기후정의행진’이 열렸다. ‘지구를 더욱 뜨겁게 만드는 세상을 바꾸기 위한 행동이자 기후위기로 인한 재앙이 가장 먼저 닥치는 제주를 이대로 둘 수 없다는 다짐’을 가지고 아동과 청소년, 농민, 노동자를 비롯한 제주도민의 목소리와 몸짓이 모인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외쳐진 다음과 같은 요구가 반영되는 제주도 탄소중립계획이 새로 만들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1. 제주 제2공항, 기후재앙 앞당긴다! 윤석열과 민주당은 제2공항 백지화하라!
2. 바다가 살아야 제주가 산다, 해양 보호구역 확대하라!
3. 씨앗도 농민도 타죽는다. 기후위기 대응하여 식량주권 확보하라!
4. 동물도 땅도 바다도 죽이는 공장식 축산, 정의롭게 전환하라!
5. 기후위기 시대, 공공교통이 살 길이다. 버스완전공영제 실시하라!
6. 전기 펑펑 쓰며 기후재난 촉발한다, 제주도는 관광자본 규제하고 감독하라!
7. 실패한 과거정책 판박이 제주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 전면 수정하라
강동진 치과의사
제주도의 시골동네에서 마을주민들의 치과주치의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애쓰고 있다. 사람들의 건강권, 생명과 연결되어 있는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다. 기후위기는 인류생존의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다. 성장제일주의에 갇힌 현 체제가 낳은 문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경험했듯 사람의 생명과 주거 등 인권과 깊게 연결되기도 한다. 한반도 최남단 제주도는 기후위기 최전선이다. 이러한 다양한 문제와 현상을 '기후정의'란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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