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형식적·법적으로는 국회의원의 투표에 의한 결과였지만 실질적으로는 ‘탄핵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에너지와 힘에 의해 쟁취한 결과였다. 탄핵이 가결된 후 광장에서는 ‘다시 만난 세계’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윤석열은 대통령 직무를 정지 당했지만 아직 헌법재판소의 심판절차가 남았다. 그렇지만 ‘탄핵안 가결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말하듯이 이제부터 우리는 ‘탄핵 너머’ 새롭게 만나야 할 나라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2016년 박근혜 탄핵으로 내 삶이 바뀌기를 염원했지만 5년 후 다시 윤석열이란 ‘괴물’을 만난 전철을 다시는 밟지 말아야 한다.
‘12.3 내란사태’는 국회에서의 ‘해제결의안’과 ‘탄핵소추안’의 통과로 막을 내리긴 했지만 우리는 이미 또 다른 ‘비상사태’를 겪고 있거나 직면하고 있다. 기후변화라고 일컬어지는 ‘기후비상사태’가 그것이다. 세계기상기구에 의하면 올해 지구평균온도가 1.54도 올라 지난해에 이어 연속으로 국제적으로 합의한 임계치인 1.5도를 넘어 가장 뜨거운 해를 기록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산업화 이전 약 278ppm에서 지난해 420ppm으로 약 51% 증가했고, 전 지구 평균 해수면은 지난 2014∼2023년 연간 4.77㎜ 상승하며 1993∼2002년 속도의 두 배 이상 수준을 보였다. 해수면 온도도 상승해 매년 최고기록을 깨뜨리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고 제주도도 마찬가지다. 제주기상청에 의하면 무더위를 측정할 수 있는 지표인 △평균기온 △평균 최고기온 △평균 최저기온 △열대야일수 △폭염일수 모두 관측을 시작한 1973년 이래로 가장 높았다.
지구기온상승으로 야기되는 ‘기후재난’ 피해도 매우 심각하다. 세이브더칠드런에 따르면 2023년 한해 최소 1만2000명이 홍수, 산불, 사이클론, 폭풍, 산사태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세계기상기구에 의하면 2020년생 아동은 1960년생의 조부모 세대보다 평생 6.8배 이상 폭염을 경험하고, 산불과 가뭄은 각각 2배, 3배 많이 노출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회에 보고된 바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3년까지 최근 11년간 피해액은 약 4.1조 원, 복구액은 약 11.8조 원으로 총 경제피해액은 약 15.9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기간 동안 기후재난으로 인한 사망 및 실종자는 총 341명에 달했으며, 특히 비수도권과 비도시 지역이 수도권보다 불균형하게 높은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기후비상사태’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국제적으로 기후변화대응에 무책임하고 게으른 국가를 일컫는 ‘기후악당국가’란 오명을 얻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기 국제환경단체에 의해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뉴질랜드와 함께 세계 4대 기후악당국가로 꼽힌 이후 문재인 정부를 거치고, 윤석열 정부에 이르기까지 지속하여 오명을 얻고 있다. 올해 개최된 29차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9)에서도 기후운동단체에 의해 ‘오늘의 화석상’을 수상한 바가 있다.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의 가파른 증가 속도, 석탄화력발전소 수출, LNG개발 및 이에 대한 재정 지원,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부족 등이 지적된다.
윤석열 정부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탄소중립기본계획은 재생에너지 발전은 늘리지 않으면서, 원자력 발전 비중을 높여 왔다. 산업계의 온실가스 감축량을 줄여주는 혜택을 부여했고, 온실가스 감축을 차기 정부로 떠넘기는 책임회피 정책도 폈다. 해양보호구역에서 석유 시추작업을 펼치는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경제적 성과로 내세우고 있으며, 온실가스 배출과 환경파괴·생태학살을 야기하는 가덕도·새만금·제주제2공항 등 10개의 신공항 건설을 강행하고 있다. 민주주의 파괴와 독재의 면모뿐만 아니라 ‘기후 악당’의 모습마저 고스란히 띠었다. 그리고 이를 주문 외우듯이 ‘경제성장 달성’이란 거짓과 수사로 합리화한다.
이러한 ‘기후악당’ 윤석열 정부의 기본 틀은 문재인 정부에서 만들어진 탄소중립기본법에 기초하고 있다. 탄소중립기본법의 일부 조항은 올해 8월에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판결을 받기도 했다. ‘탈원전’을 내세웠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원자력발전이 차지하는 비율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었으며, 신고리 5·6호기 원전 건설허가가 내려졌다. 2025년 예산에서도 윤석열은 민주당이 예산을 감액하는 횡포를 저질렀다고 강변했으나 대왕고래프로젝트 예산만 삭감됐을 뿐 원전 관련 예산은 정부가 제출한 것보다 오히려 늘었다.
‘기후악당’의 면모는 문재인 정부나 윤석열 정부,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 크게 다르지 않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있어서도 ‘민간기업’을 위주로 한 재생에너지 민영화정책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나 마찬가지이다. 재생에너지를 민간기업이 구매하고 판매할 수 있는 것을 골자로 하는 ‘PPA(전력구매계약)법안’이 민주당 주도 하에 국회를 통과한 바 있다.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은 민간기업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이는 대세로 굳혀졌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의 이재명 후보는 재생에너지를 누구나 생산하고 사고팔 수 있는 ‘에너지 고속도로’를 새 정부 에너지 정책의 핵심으로 내세웠다.
민주당 주최 국회 토론회에서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과 더불어 전력 유통시장 개방 등의 제도개선 병행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전력시장의 개방 및 자유화(민영화)를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여기고, 정부와 공공부문의 역할을 이를 위한 인프라·시장을 지원·육성하는 역할에 한정하는 정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바가 있다.
제주에서도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다른 행보를 보이지 않는다. ‘탄소없는 섬(CFI) 2030’을 제출했던 우근민 전 지사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전신인 민주통합신당과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모두에 몸담았었으며 국민의힘 소속인 원희룡 전 지사는 이 정책을 계승했다. 민주당 소속 현 오영훈 도정은 ‘2035년 탄소중립’을 선포하고 ‘탄소중립 선도도시’로 제주도를 탈바꿈하겠다고 선언했으나 구체적인 정책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실현가능성도 거의 없다.
오영훈 도정은 ‘제2공항 건설’에 대해 ‘제주도의 시간’을 운운하며 명확한 반대 입장을 표하지 않고, 오히려 국토부의 기본계획 고시를 촉구했다. ‘차 없는 거리’를 내세우며 보여주기식 전시성 행사를 중요시하게 여기고, 생태보호지역인 중산간에 대형숙박시설 설치를 허용하는 등 생태 파괴 개발도 지속하고 있다. ‘성장과 개발’을 앞세우며, 제주도의 자연과 생태를 파괴하는 일에는 보수 양당 어디 소속이든 무관하게 일관적으로 비슷하다.
이처럼 우리나라가 ‘기후악당국가’란 오명을 얻고 있는 건 윤석열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윤석열도 이 체제가 낳은 인물일 뿐이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체제’의 문제임을 보여주는 것이며, 따라서 ‘기후악당국가’라는 오명을 씻어내려면 ‘윤석열 탄핵’을 넘어 ‘체제 전환’이 이뤄져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비슷한 정책을 펼치고 있으면서도 정쟁으로 서로를 적대시하는 정치에 몰두하는 ‘보수양당체제’가 바뀌어야 하고, ‘경제성장’을 우선하면서 생태학살과 자연파괴를 당연시 여기는 ‘성장중심체제’를 멈춰야 한다. 기후위기에 책임이 없는 계층이 피해는 가장 먼저, 가장 많이 입는 불평등체제를 평등체제로 바꾸는 ‘체제전환’이 필요하다.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탄소배출에 가장 책임이 있는 기업과 부자들에게 우선 책임을 묻고, 탄소감축의무를 부과하는 ‘기후정의’를 실현하는 체제가 만들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IPCC 6차 보고서에서도 “지속가능한 미래로 전환하려면 기존의 흐름을 흔드는 혁신적인 변화가 필요하고, 기술적·시스템적·문화적 변화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정치인을 비롯한 의사 결정권자들의 일관성 있는 행동과 ‘대중의 압력 및 사회 운동’ 모두가 요구된다”고 적시하고 있다.
‘기후비상사태’는 불평등이 아닌 평등 세상, 성장제일주의이자 생태파괴적인 세상이 아닌 기후정의를 실현하는 생태친화적인 세상을 만드는 것으로만 해결될 수 있다. 기후악당정책을 공유하는 민주당과 국민의힘 보수양당체제는 대안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내란사태를 끝장낸 ‘탄핵광장’에서 보여주었던 시민연대의 힘과 에너지, 민주주의가 대안이다. 이제 그 ‘광장의 힘’으로 탄핵 너머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체제전환의 길을 개척해 나갈 때이다.
기후정의가 실현되고 체제전환의 길이 열릴 때, 세월호·이태원 참사,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김용균·이민호·강태완 같은 청년의 죽음, 쏟아지는 폭우에 목숨을 잃은 반지하 주택주민, 지하도를 지나다 빗물에 휩쓸려 사망한 주민 등과 같은 재난과 비극이 사라지고 ‘다시 만난 세계’의 가사인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을 그 길 위에서 소리높여 부를 수 있기를 바라본다.
강동진 치과의사
제주도의 시골동네에서 마을주민들의 치과주치의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애쓰고 있다. 사람들의 건강권, 생명과 연결되어 있는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다. 기후위기는 인류생존의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다. 성장제일주의에 갇힌 현 체제가 낳은 문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경험했듯 사람의 생명과 주거 등 인권과 깊게 연결되기도 한다. 한반도 최남단 제주도는 기후위기 최전선이다. 이러한 다양한 문제와 현상을 '기후정의'란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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