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데몬 헌터스(사진=넥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사진=넥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의 글로벌 열풍이 국내에서도 심상치 않다. 국립민속박물관의 기념품이 매진되고 남산타워에 외국인 방문객이 늘어나는 등 지난 7월 한 달 동안 서울 외국인 관광객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고 한다.

케데헌은 ‘무녀’에서 ‘아이돌’에 이르는 세대를 걸친 여성 헌터들이 악령으로부터 세상을 지킬 방패, ‘혼문(魂門)’을 지켜나간다는 내용의 미국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전통과 현대의 한국문화가 디테일하게 재현되고 여기에 글로벌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K팝이 함께 녹아져 전 세계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중이다.

케데헌뿐만 아니라 이에 앞서 제주의 역사문화를 통해 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와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모두 여성 서사로, 전 세계가 제주 여성의 이야기에 주목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폭싹 속았수다(사진=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사진=넷플릭스)

제주 지역에서도 이러한 흐름을 활용하여 제주의 역사문화에 대한 관광 콘텐츠 개발이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논의는 얼마나 많은 관광객을 제주에 유치할 것인가 그리고 제주의 역사문화를 어떻게 관광 상품화하여 판매할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다. 반면, 지금 세계가 제주 여성들의 삶과 문화에 주목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가시화하고 가치화해 나갈 것인가와 같은 심층적인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케데헌과 제주여성문화, 그리고 제주다움

케데헌은 제주도민에게 반가운 장면으로 시작된다. 글로벌 아이돌로 분한 세 명의 여성 주인공 루미와 미라, 조이가 멘토인 셀린으로부터 데몬 헌터의 역할을 부여받는 장면 속 배경이 제주도이기 때문이다. 산담으로 둘러싸인 무덤과 돌하르방 등을 통해 그 배경이 제주임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케데헌 속 주인공인 여성 헌터들의 근원이 제주의 심방(무당)인 사실도 재미있지만, 여성 캐릭터를 세상을 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발휘하는 헌터나 아이돌로 그린 상상력이 재미를 더한다.

한편, 케데헌은 ‘재미’만큼이나 ‘메시지’에 주목하게 하는 작품이다. 케데헌의 감독인 매기강은 이 영화를 통해 ‘한국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영화의 절정에 이르러 주인공 루미가 정체성의 혼란을 깨고 자기 자신을 드러내어 악령과 싸우겠다고 결단하는 장면은 사실상 한국(인)의 정체성과 문화를 세계에 당당히 선보이겠다고 하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지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우리 스스로 ‘한국적인 것’ 그리고 ‘제주적인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게 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는 한국인이자 제주도민인 우리는 그동안 누구의 시선에 맞춰 살아왔는가 그리고 그동안 우리는 제주적인 것, 제주다움을 어떻게 만들어 왔는가에 관한 물음이다.

제주여성문화, 제주다움을 상상하는 기회일까?

제주는 ‘여다(女多)의 섬’으로 알려져 있고, 여성 신화와 해녀 등의 여성문화는 제주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로 작동해 왔다. 이에 전국적으로 보기 드물게, ‘해녀박물관’과 ‘김만덕기념관’ 그리고 ‘설문대할망전시관’과 같은 여성역사문화 특화 전시관이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이외에 전반적인 제주의 축제나 박물관 등에서 여성 관련 콘텐츠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처럼 제주여성문화는 ‘특별하게’ 다루어지는 대신 제주 전체의 역사에서는 배제되었다. 또한 여성 관련 콘텐츠가 다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여성을 모성적 존재로 그리는 경향이 강해, 다양한 여성 캐릭터와 문화를 드러내기에는 한계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제주 여성의 역사문화는 제주의 땅과 바다, 산을 창조하고 제주에 곡식을 가지고 와 생명을 피운 수많은 여신들과 해녀를 비롯하여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과 공생해 온 역동적인 삶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이처럼 제주인들의 삶과 문화는 인간 공동체뿐 아니라 인간과 자연 그리고 비인간 존재들과의 공생을 통해 형성되어 왔다. 이는 오늘날 기후생태 위기 시대에 ‘제주다움’을 통해 대안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어떠한 가능성을 상상하게 할까?

‘제주다움’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다시 케데헌으로 돌아가 보자. 주인공 루미에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것은 혼문이 사라질지도 모르는 두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루미는 두려움과 함께 자신을 숨기며 살아왔다. 그러나 루미는 자신을 숨긴 채 혼문을 지키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결국 헌터이자 데몬이기도 한 자신을 드러내고 악령의 왕인 귀마에 맞서 외친다. “혼문(魂門)이 사라지면, 다시 새로 만들면 돼!”

영화 속 혼문의 존재는 오늘날 개발로 인해 사라진 공동체와 삶을 떠올리게 한다. 과거 도깨비와 저승사자의 모습을 한 악령은 오늘날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그리고 인간중심주의 등으로 인한 다양한 차별의 모습을 띠고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오늘날 제주의 혼문은 파괴되었고 파괴되어 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제주의 혼문을 지키고 새롭게 만들어 온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제주동부하수처리장 증설 공사 중단을 하며 집회를 열었던 제주 해녀들.(사진=제주투데이 DB)
제주동부하수처리장 증설 공사 중단을 하며 집회를 열었던 제주 해녀들.(사진=제주투데이 DB)

‘제주다움’이라는 혼문은 무엇인가? 이는 과거에 존재했던 그리고 우리만의 어떤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제주다움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그것은 기후생태 위기 시대, 다양한 존재들이 모두 함께 개발과 파괴를 넘어 인간과 자연, 비인간 존재들의 공동체와 공생적 삶을 만들어 가는 길이다.

강경숙 제주투데이 논설위원/젠더플러스연구소 대표
강경숙 제주투데이 논설위원/젠더플러스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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