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6년 평안도 운산
나라가 망해가던 19세기 말의 일이다. 제국주의 열강은 조선에서 이권 챙기기에 혈안이 되었다. 철도 부설권, 전기 가설권, 광산 채굴권 등 학교 다닐 때 다들 들어본 이야기다. 그 중 평안도 운산금광은 미국이 달라붙었다. 1896년 4월 외부대신 이완용과 미국인 모오스 사이에 운산금광 특허권이 다시 조인되었다.
채굴량이 상당했다. 소문이 퍼지자 운산 주민들이 미국인 금광회사의 철조망으로 몰려들었다. 이를 제지하던 미국인은 큰소리로 ‘노터치(No touch – 손대지 말라)’를 연발했다. 주민들은 그 발음을 ‘노다지’로 알아듣고, 금이 많이 나온다는 뜻으로 통용했다.
물론 주민들은 그 금을 터치(touch)하지 못했다. 하지만 왕실은 많은 돈을 만졌다. 그 많은 이권을 넘겨주고 왕실은 얼마를 챙겼을까? 앞의 조약에는 주식의 4분의 1을 왕실이 소유한다는 조항이 있다. 열강들이 그래도 25%는 넘겨줬다는 말이다. 이후 러시아 니스첸스키와 체결한 조약도 소득의 4분의 1을 왕실에 상납한다는 조항을 넣었다. 1900년 일본의 하야시 공사와 체결한 직산금광 특허에서도 이익금의 25%를 황실에 바치기로 하였다.
21세기 제주도
기후위기가 심각하다. 탄소에게 죄를 돌리며 모두가 탄소제로(zero)를 외친다. 석유, 석탄 등 화석연료는 이제 물러가야 한다. 그 자리에 재생에너지를 놓는다. 그를 위해 소환되는 것이 태양광 발전, 풍력발전 등이다.
바람의 섬 제주는 특히 풍력발전에 유리하다. 이윤이 있다면 지옥도 마다하지 않는 자본이 제주의 바람을 놓칠 리 없다. 19세기 말 열강이 몰려드는 것 이상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제주의 풍광을 바꿔놓은 그 많은 바람개비들은 그렇게 들어 선 것이다.
풍력발전 사기업들은 제주도에 얼마를 납부하고 있을까? 전혀 없었다. 2013년 이전에 들어선 풍력발전은 납부하지 않는다. 공짜로 바람을 이용해 막대한 이윤을 얻고 있다는 말이다. 평양 대동강 강물을 팔아먹었다는 봉이 김선달이 따로 없다.
이건 매우 부당하다. ‘우리 모두의 것’인 바람을 이용해 특정 기업만 배불린다면 이는 잘못이다. 공적 자원을 사적으로 사용했다면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이런 지적이 많아지자 나중에야 조치가 이뤄졌다. 2013년 이후 신규 사업자는 순이익의 17.5%를 기부하기로 법제화했다. 그리하여 지금은 순이익의 17.5%를 제주도에 기부한다. 매출액의 17.5%가 아니라 모든 경비를 빼고 남은, 순이익의 17.5%다. 나머지 순이익의 82.5%는 모두 사기업의 몫이다.
17.5%!!! 나라가 망해가던 19세기 말, 제국주의 열강도 25%를 지급했다. 그런데 21세기 제주도는 그보다도 못하다. 그것도 기부금이다. 풍력자원개발대금 혹은 풍력자원이용대금도 아니고 기부금이라는 형식이다. ‘바람은 우리 모두의 것’이라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17.5%의 바람만이 우리가 터치(touch)할 수 있다는 뜻이다.
기술과 자본이 모자라니 어쩔 수 없다?
혹자는 말한다. 풍력발전 사기업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초기 투자비용이 많으니 82.5%를 먹는 건 당연한 게 아니냐고. 그걸 부당하게 생각한다면 제주도가 직접 풍력발전을 하라고. 제주도는 기술과 자본이 부족하니 사기업에 넘기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그런가? 물론 위의 반론에도 나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최소한 염치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50:50 즉 이익의 반을 나누는 정도는 되어야 공적자원에 대한 바른 자세라고 생각한다. 소위 ‘반띵’은 되어야 설득력을 가질 거란 말이다. 무능했던 고종이 와도 이 정도는 받아냈을 것 같다. 지금은 대포를 끌고 와 위협하던 조선 말기가 아니다. 시대가 달라졌지 않은가?
19세기 말에도 기술과 자본 부족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독립신문> 1896년 7월 2일자 논설은 이권 양도의 결과인 철도 부설을 문명의 진보, 개화의 실상으로 서술했다. 그리고 1896년 11월 5일자 논설에서는 두만강변 벌목 허가권을 러시아가 딴 것에 대해, 조선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1897년에 들어와서는 기조가 바뀐다. 독립협회가 반대 투쟁으로 태세 전환을 이룬 것이다. 자주성이 담보되지 않은 근대화의 허상을 깨달은 결과다. 그리하여 1898년 9월 11일 회의에서 열강의 이권 침탈을 비판하며, 이권 양여에 가담한 전임회장 이완용을 독립협회에서 제명하였다. 이완용은 독립협회 시절부터 매국노의 기질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마찬가지다. 열강은 조선을 침탈의 대상보다는 동반자적 관계로 설정했어야 한다. 그리하여 50:50을 했더라면 ‘이권 침탈’이라는 용어가 우리 역사에 등장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물론 21세기 제주도의 상황은 다르다. 제주도가 직접 자체적으로 풍력발전을 하는 게 있다. 2012년 공기업으로 설립된 ‘제주에너지공사’가 그것이다. 이후 모든 풍력발전사업을 제주에너지공사가 독점하여 풍력에너지 개발 수익의 도외 유출을 막고, 도민에게 돌려주자는 것이 설립 취지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사기업에 대한 풍력발전 사업허가는 늘어만 갔다. 그리하여 이제 제주에너지공사의 역할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사기업이 사실상 제주의 풍력발전을 주도하고 있다. 그에 더하여 추자풍력발전이라는 거대 사업은 해외자본이 독식할 전망이다. 에너지 자주권을 지키기보다 자본 앞에 굴복한 결과다.
제주의 노다지를 왜 그리 쉽게 사기업에 넘겼는지 나로서는 이해하기가 힘들다. 19세기 말 역사를 통한 기시감만 남는다. 독립협회 강경파는 1896년부터 1898년 7월까지의 이권양도 사업을 모두 조사했다. 그 결과 역대의 외교관계자들이 뇌물을 받고 허락한 사실을 밝혀냈던 것이다. 반복되는 역사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에너지 수익금을 도민에게 나눠주자
순이익의 50%가 아닌 17.5%, 성에 안차는 그 수익금은 지금 어떻게 쓰이고 있을까? 2016년부터 ‘풍력자원 공유화기금’으로 조성하여 재생에너지 개발 보급 및 이용 장려 등의 사업에 쓰고 있다. 공적 자원을 활용한 수익이니 공적 사업에 쓰는 것은 타당하다.
하지만 나는 다른 생각을 해본다. 작은 돈이라도 도민 전체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효능감을 느끼게 하자는 말이다. 그 효능감은 도민의 관심을 자극하여, 참여 민주주의를 이루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직접 연관된 문제라고 느껴야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그 관심이 참여를 불러오며, 참여가 있어야 실제 주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참여 속에 소통과 감시와 견제와 중지 모으기와 협력이 이뤄진다. 그래야 나의 제주도, 나의 풍력발전사업, 나의 재생에너지, 나의 탄소제로, 나의 기후위기 극복이라는 인식이 생겨나기 쉽다.
하지만 현재는 그게 안 된다. 나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제주 풍력발전의 수익금을 누가 가져가는지, 제주도에 기부된 17.5%의 수익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도민 대부분은 모른다. 앞서 말한 기금의 용도 즉 ‘재생에너지 개발 보급과 이용 장려에 사용함’을 알려주어도 막연하게, 추상적으로 느낄 뿐이다. ‘바람연금’ 등의 이름으로 직접 나눠줘야, 관심과 참여가 일어난다. 직접적 터치(touch)라야 실감할 수 있다.
터치(touch)를 공약으로 내걸어라
물론 우려가 없는 건 아니다. 도민이 ‘공유자원’에 대한 관심보다 오로지 ‘수익’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비판이 그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난개발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필요 이상의 풍력발전을 도입하는 어리석음을 범할지도 모른다. 수익이 늘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어쩌면 엘리트주의, 전문가주의의 소산일 수도 있다. 대중을 우매하게 생각하는 위험한 생각 말이다. 우려가 있음에도 나는, 오늘 시점에서 엘리트주의나 전문가주의보다는 ‘집단지성’, ‘대중지성’을 믿는다. 숙의형 민주주의, 참여 민주주의가 가지는 교정 기능을 믿는다.
나의 견해에 동의하면서도, 실제 그 금액이 너무 작은 것이라 실효가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나는 더 많은 재원을 말하고 싶다. 풍력발전에만 국한 시킬 게 아니다. 제주의 공적자원과 관련된 모든 수익에 50% 수익금을 받아낸다면 결코 작은 액수가 아니다.
대표적인 예로 JDC 면세점 수익이다. 그 수익은 제주라는 관광지가 만들어 준 수익이다. 물론 투자자의 역할도 있으니, JDC는 순수익의 50%를 가져가면 공정하다. 나머지 50%는 도민의 몫이어야 한다. 도민에게 직접 나눠주는 ‘도민수당’이면 좋겠다. 도민이 이런 수당을 받는다면, 도민 누구나 관광 활성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JDC 면세점 수익 증가를 기원할 것이다. 그래야 JDC도 ‘현대판 동양척식주식회사’, ‘제주 다판다 센터’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않겠는가.
이런 걸 공약으로 내건 정치인을 보고 싶다. 제주의 공적자원을 활용한 기업의 순수익 중 50%를 도민에게 나눠주는 장치를 만들겠다는 공약 말이다. 이런 공약을 내걸고, 도민의 여론이 막강해진다면 불가능한 꿈만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주인이 자기의 물건을 되찾겠다는 주장은 정당하다. 기업이 공유자원을 점유하여 이익의 25%도 아닌 17.5%만 넘겨주겠다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 19세기 말 이권 침탈을 부당하게 평가하는 것도 같은 이치 아니겠는가.
제주의 ‘노다지’에 터치(touch)를 가능하게 만들 정치인을 찾는다. 나는 그를 지지할 것이다. 물론 내란정당 정치인은 제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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