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save_palestine)
(사진=save_palestine)

2023년 10월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대한 대규모 침공을 감행했다. 2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사망자는 6만6천명을 넘어섰고 부상자도 16만8천명을 넘어섰다고 최근 가자지구 보건부가 밝혔다.

이들의 상황은 77년 전 제주도의 상황과 흡사하다. 1948년 제주도민들을 상대로 무참한 살육이 진행됐고 당시 사망자가 3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1948년 섬인 제주도는 창살 없는 감옥의 생지옥이었다면 지금 철저히 봉쇄된 가자 지구는 지붕 없는 감옥의 생지옥이다.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4.3 당시 사망자 숫자의 두 배를 넘어서고 있다. 이스라엘은 육로를 통한 인도적 구호물품 수송조차 철저히 차단했고 세계보건기구는 이스라엘의 “고의적인 봉쇄와 식량, 의료, 인도적 지원의 막대한 지연으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1948년에는 몇몇 관련 국가 정치인들과 군인들 외에 전 세계 시민들은 제주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전혀 몰랐다. 제주도는 물리적으로도 고립되었지만 제주도민들이 받는 고통 역시 철처히 차단되었다.

지금 가자의 상황에 대해 우리는 실시간 전해지는 정보를 통해 접하고 있다. 아이들이 폭격을 받아 수족이 절단되지만 의료 물품들이 부족해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구호 물품 조차 봉쇄하는 이스라엘의 조치로 굶주림에 신음하고 있는 실제 모습을 영상으로 확인한다. 하지만 전 세계는 그들의 고통을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들에 대한 집단 학살을 실시간으로 접하면서도 학살 당사자들이 처벌받지 않고 학살이 방치되는 현실은 우리 인류가 처한 도덕적 위기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정치인들이 자신과 자국의 이익을 셈하면서 분명하게 목소리 내지 못하는 사이 꺼져가는 인류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민간인들이 구호품을 가득 실은 배를 타고 가자지구로 향했다. 8월 31일 ‘글로벌수무드함대(Global Sumud Flotilla)’ 50여 척이 가자지구로 출발했고 9월27일 ‘천개의 마들린’ 8척이 출발했다. ‘천개의 마들린’ 중 한 척에는 강정의 평화운동공동체 ‘개척자들’ 활동가인 해초(본명 김아현)가 유일한 한국인으로 승선해 있다.

해초(사진=김순애 제공)

해초는 제주를 떠나기 전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지난 2022년부터 항해를 하면서 국경 없는 바다를 건너는 일이 봉쇄를 부수고 연대와 연결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가로막힌 우리들이 만나는 것, 봉쇄를 깨부수는 것이 이번 항해의 목적입니다...... 무서울 때 그 감정을 다양한 태도로 받아들여 본다면 공포도 아름다움이나 희망에 대한 의지로 느낄 수도 있다는 것, 그것 또한 제주도와 동아시아 앞바다를 항해하면서 배운 것입니다. 이러한 배움과 의식은 모두 여러분들께 배운 것입니다. 저는 이 소중한 배움과 지지를 안고 ‘가자’로 갑니다......이번 여름에는 제주에서 ‘생명 평화 대행진’을, 육지에서 ‘새사람 행진’을 함께 했습니다. 이 길 위에 섰을 때라야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 제게 가장 소중한 깨달음은 길에서 만나 형성되는 ‘관계’였습니다. 길 위에서 또 바다 에서, 제 몸이 여기와 저기를, 나와 너를,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매개가 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이번 여정의 최종 목적지는 여러분들께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다. 돌아와 제 눈에 닿은 빛이 다시 여러분들께 닿을 때까지입니다.’

그레타 툰베리와 각국의 정치인들, 영화배우, 활동가들이 타고 있는 글로벌수무드함대는 한 달 가까운 항해를 통해 가자지구 해안에 접근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이들에 대한 위협을 시작했다. 오늘 자로 7척의 배가 나포되었다는 소식이 SNS를 통해 들려왔다. 

이들이 목숨을 건 항해를 하는 동안에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연일 폭격을 퍼부어댔다. 미국은 9월19일 가자전쟁 휴전과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 구호품 반입 차단 해제를 요구하는 결의안에 상임이사국 5개국 중 유일하게 여섯 번째 거부권을 행사해 부결시켰다. 

미국은 네타냐후의 가자지구 침공과 팔레스타인 학살에 대해서도 이를 암묵적으로 방조한 가장 큰 책임자로 국제적인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평화 해결사의 이미지까지 욕심내는 트럼프는 최근 가자지구 종전안을 들이밀면서 하마스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이스라엘을 전폭적으로 밀어줄 것이라고 협박하고 있다.

미국의 이런 오만한 모습은 4.3 당시 모습과 흡사하다. 1948년 제주에서 발생한 대량 학살은 이승만 정권이 자행했지만 ‘보이지 않는 손’으로 개입한 미국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자지구 학살에서도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권과 이를 방조한 미국에게 책임을 묻고 국제적 처벌이 있어야 한다. 국제 사회가 반드시 연대해서 그것을 해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인류가 도덕적인 위기를 돌파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평화의 섬 제주도의 수장인 오영훈제주도지사에게 묻고 싶다. 4.3의 판박이인 가자지구 학살에 대해 침묵을 지키는 것이 그가 말하는 4.3의 정의로운 해결이냐고. 그리고 오영훈도지사에게 말하고 싶다. 다른 정치인들처럼 글로벌수무드함대에 승선하지는 못할지라도 가자지구 학살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내고 제주와 같이 전쟁과 내전 등으로 학살을 당했던 지역들과 연대하여 집단 학살을 막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4.3의 정의로운 해결의 한 모습이라고.

김순애, 조천읍 함덕리 주민(녹색당원)
김순애 제주투데이 논설위원/제주녹색당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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