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주녹색당)
'제주를 지키려고 뭐라도 하는 시민들'은 원지사 사퇴 절차가 마무리되는 11일까지 제주도청 앞에서 ‘난개발 마침표 촉구’ 1인 피켓시위를 이어간다. (사진=제주녹색당)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원희룡 제주지사가 지난 1일 지사직을 사퇴했다. ‘문재인 정부의 모든 것을 되돌려놓겠다’며 ‘정권심판론’을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제주에는 ‘도정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제주도는 원 지사 사퇴로 오는 12일부터 내년 민선8기 출범 전까지 남은 10개월 간 구만섭 행정부지사 대행체제로 꾸려진다. 한 달 전 부임한 구 행정부지사는 외부 인사다. 일각에서는 정무적 판단이 어렵고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결정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도정 공백’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제주도민들은 지난 2일 제주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제주 자연생태를 망가뜨린 주범으로 남지 않으려면” ‘송악 선언’에 약속한 ‘난개발 마침표’에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이고 사임할 것을 촉구했다. 

앞서 원 지사는 지난해 10월 난개발 논란이 있는 대규모 개발사업에 관해 입장을 정리한 ‘청정제주 송악선언’을 발표했다. 당시 원 지사는 “제주 자연은 국민이 누릴 권리가 있는 대한민국 소중한 자산”이고, “청정과 공존은 양보할 수 없는 ‘헌법적 가치’”라며 “아직 남아 있는 난개발 우려에 오늘로 마침표를 찍겠다”고 한 바 있다. 

이에 ‘제주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는 시민들’은 기자회견에 이어 3일부터 원지사 사퇴 절차가 마무리되는 11일까지 제주도청 앞에서 ‘난개발 마침표 촉구’ 1인 피켓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숲이 베어지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어, 팔색조가 사라지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어, 강이 오염되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어 지난 3년간 제주 난개발 현장들을 기록하고 알려온 6개 시민 단체들. 그들이 보내온 목소리를 제주투데이가 가감 없이 담았다. 

 

강정천을 지키는 사람들

 

작년 1월, 제주해군기지진입도로 강정천 교각공사가 시작되면서 천연기념물 원앙의 총탄 사체가 여러 차례 발견됐다. 이를 계기로 해군기지진입도로 공사에 문제를 제기하는 주민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강정천은 지키는 사람들(이하 강지천)은 제주 하천 생태 축인 강정천을 가로지르는 강정 해군기지 진입도로(제주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진입도로) 사업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강지천은 해당 공사가 서귀포 주요상수원 환경과 생태계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에 항의하며 공사 저지에 나섰다. 

강지천은 총탄 맞은 원앙의 사인을 전깃줄 탓으로 돌린 수사결과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공사를 위해 시행했던 환경영향평가의 문제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 : '해군도로' 왜 꼭 '직선도로'여야 했을까)

이들에 따르면 해군기지 진입도로 환경영향평가에는 원앙뿐 아니라 멸종위기식물 솔잎란의 서식 위치도 허위로 작성됐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넷길이소 담팔수나무(일뤳당, 넷길이소당) 위치도 '진입도로 난쟁이도 교량' 위치보다 상류에 있다고 허위로 기재했다. 솔잎란 위치도 도순천교 부근에 있어서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내용 역시 허위라고 했다. 

강정 주민들은 이전에 나타나지 않던 현상이 공사 이후 연이어 출몰했다고 전했다. (☞관련영상 : 제주해군기지 진입도로 공사현장에 일어나는 이상한 일들) 공사가 진행 후 천연기념물 녹나무 자생지가 파괴됐다. 주변 주상절리가 붕괴도 교각 공사를 위한 하천 천공 작업 이후 발생했다.(☞관련기사 : 강정천 절벽 붕괴, '해군도로' 공사 영향 가능성 제기됐다) 상수도원 오염으로 수돗물에서 유충이 발생해 많은 시민이 불안과 불편을 겪기도 했다.(☞관련기사 : 서귀포서 또 수돗물 유충 “해군기지 진입도로 공사 원인 추정”) 백화현상과 철 박테리아 이상 증가도 공사 이전에는 없었던 현상이라고 했다. 

지난 7월초, 영산강환경청·서귀포시청·상수도사업소와 제주도 관계자들은 강지천 요청에 따라 현재의 공사 환경을 실사했다. 당시 많은 현장 문제점에 공감했다고 한다. 환경영향평가서에 따라 공사를 우기 작업중지 명령을 내렸다. 문제가 지속해서 발생하는 경우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는데도 의견을 같이했다. 

강정 해군기지 진입도로는 2015년 10월 국방부가 실시설계 용역을 완료했다. 토지보상은 국방부가, 공사는 제주도가 추진 중이다. 관리는 제주도 '강정공동체사업추진단'이 담당하고 있다. 

이에 강지천은 "절대보전지역인 강정천에서 대형 도로 공사가 과연 합당한 것이었냐"며 "왜 공사 이후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발생하지 않은 파괴와 붕괴가 연속적으로 일어나는지, 제주도정이 책임지고 역학조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생태계 파괴, 지반 붕괴, 수질 오염, 공동체 와해를 가속하는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진입도로 사업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자림로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시민모임

비자림로 확장공사는 제주시 구좌읍 대천교차로부터 금백조로 입구까지 2.9㎞를 왕복 2차선에서 4차선으로 확장하는 공사다. 2018년 8월 제주도는 도로 주변의 30년 수령의 삼나무 900여 그루를 잘라내는 공사를 시작했다가 환경 훼손 등 시민들 반발로 중지됐다. 이때 '비지림로를 지키기 위한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이 구성됐다. 

첫 공사 중단 이후 제주도는 우회도로를 만드는 설계 변경안을 발표, 2019년 공사를 재개했다. 하지만 공사구간에서 환경영향평가에 담기지 않은 팔색조와 애기뿔소똥구리 등 멸종위기종이 다수 서식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법정보호종 발견과 서식지 훼손 논란에 공사는 다시 중단됐다.(☞관련기사 : 비자림로 공사재개 어려울 듯…환경청 “환경영향 저감대책 보완 필요”) 지난해 5월에는 영산간 유역환경청과 환경영향 저감대책 협의를 마무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사를 재개했다가 과태료 처분까지 받았다. (☞관련기사 : 환경청 "비자림로 공사 재개, 법 위반"...과태료 500만원 처분 예고)

제주도는 지난 3년간 3차례 공사를 중단했던 비자림로 확장 공사를 올해 안에 재개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6월 제주도는 영산강유역환경청과 수차례 보완한 비자림로 환경영향 저감대책을 최종 협의하고 11월 공사 재개를 예고했다. 

이에 시민모임은 "국토부가 협의 요청한 전략환경영향평가 반려로 제주 제2공항은 사실상 무산됐다. 따라서 제2공항 연계도로임이 밝혀진 비자림로 확장 공사는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비자림로는 앞서 2018년 구체화된 구국도 건설계획에서 제2공항 연계도로로 밝혀졌다. 제주도는 제2공항 건설 계획에 따라 비자림로에 이어 금백조로까지 총 14.7㎞ 도로 확장 계획을 세웠다.

시민모임은 "환경부는 제2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서 반려 사유로 '법정보호종 영향 등 보완 내용 누락 및 미흡' 등을 들었다. 이는 비자림로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사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생태계 파괴 및 난개발의 상징과도 같은 비자림로 공사를 당장 철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녹지공원화를 바라는 사람들

찬반 논란에도 불구하고 강행되고 있는 서귀포시 도시 우회도로 개설 사업은 사업비 총 1,308억 9,000만원을 투입해 서귀포여중~서홍로~동홍로~삼성여고를 잇는 총연장 4.3㎞(왕복 4~6차로) 도로개설 사업이다.

제주도는 이 사업을 1·3구간과 2구간 2개로 나눠 진행하고 있다. 1·3구간(서귀포여중~서홍로·동홍로~삼성여고) 예비타당성 조사는 이미 진행 중이고, 2구간(서홍로~동홍로)은 내년 초 공사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2구간의 경우 2016년 지방재정투자심사를 받았지만 3년 간 공사에 착수하지 못해 다시 심사 중이다. 

2016년 제주도는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사업에 대한 투자심사를 받았다. 그러나 도로가 서귀포학생문화원 앞을 지나며 학생 안전 문제가 불거졌다. 공사 구간에 포함된 토지가 인근 잔디광장(어린이공원)으로 사용되고 있어서다.

도시우회도로는 해당 부지를 소유한 제주도교육청이 토지 매각을 거부하면서 2014년부터 차질을 빚어온 사업이다. 투자심사 후 3년간 공사에 착수하지 못하면 재심사를 받아야 하는 데, 해당 절차를 무시하려고 강행하려다 작년 7월 언론에 덜미를 잡혔다.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녹지공원화를 바라는 사람들(이하 녹바사)'은 도로신설 계획 철회와 예정 부지 녹지공원화를 요구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이다. 이들은 "도로신설 사업을 백지화하고 이미 도가 사들인 예정지 땅을 녹지공원화 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600m채 되지 않는 동문로터리와 초원사거리는 교통체증이 많은 구간이다. 800m가 안되는 동문로터리와 중앙로터리는 인도가 비좁고 가로수조차 없어 차량 매연과 소음이 보행자에게 그대로 노출된다. 

'녹바사'는 "일주도로, 태평로, 동홍로, 중앙로 등 얼마든지 인근 차로를 동서남북으로 이동할 수 있는데, 왜 비좁은 중정로와 동문로에 차가 다녀야 하냐"고 물었다. 

기후위기와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맞이한 전세계가 탄소중립 이행을 국가 최상위 목표로 설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도심지 북쪽을 동서로 횡단하는 6차선 광폭차로를 새로 낸다는 건 시대착오적 생각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중문로와 동문로를 파리, 오슬로, 쿠리치바바(브라질), 폰테베드라(스페인) 도심지처럼 차 없는 거리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선흘2리 대명동물테마파크 반대대책위원회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은 거문오름이 위치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마을이자 세계최초 람사르습지도시에 속하는 제주 중산간 조천읍 선흘2리에서 추진되고 있는 열대맹수사파리 사업이다. 주민 반대에 강하게 부딪힌 해당 사업은 공무원 개입 등 각종 의혹들이 터져나오며 사실상 무산 상태다. (☞ 관련기사 : “선흘2리 이장, 원 지사 만난 후 대명동물테마파크 찬성 ‘돌변’”)

사업 부지는 제주 고유숲이자 멸종위기 야생동식물의 보고인 곶자왈 지역으로 세계자연유산마을이다. 선흘2리 주민들은 총회를 통해 선흘2리 대명동물테마파크 반대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세웠다. 람사르습지도시지역관리위원회도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며 반대 여론에 힘을 실었다. 

주민들과 여론의 반대가 2년간 지속되자 작년 11월 원희룡 도지사의 '송악선언'을 통해 주민들이 반대하는 사업에 대해 재고하겠다고 선언했다. 올해 3월 개발사업심의회에서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변경승인도 부결됐다. (☞ 관련기사 : 제주도 개발사업심의위,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 제동)

해당 사업으로 주민 간 갈등이 첨예했던 선흘2리. (☞ 관련기사 : [목요♨탕] 73년생 '육짓것' 이장이 꿈꾸는 마을민주주의) 지난 5월에는 제주동물테마파크 서경선 대표이사와 전 이장이 사업 찬성을 댓가로 금품을 주고 받은 혐의로 검찰에 기소돼 재판에 넘겨진 상황이다. (☞ 관련기사 : 원희룡 지사 면담 하루 전날 '뒷돈' 받고 마을 배신한 선흘2리 전 이장)

사업자측은 지난 7월 사업변경승인 보완서를 다시 도에 제출하며 사업 강행 의지를 보였지만 제주도는 지난 29일 건축계획심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이를 반려했다. 

반대대책위는 "제주동물테마파크 추진 과정은 난개발의 난맥상이 고스란히 드러난 부끄러운 제주의 자화상"이라며 "제주행정은 사업자의 불법행위가 만천하에 드러난 이상 올해 12월 31일로 만료되는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기간을 더 이상 연장해 주어서는 안 된다"고 압박했다. 

 

성산환경을 지키는 사람들

환경부가 지난 20일 국토교통부가 협의를 요청한 제주 제2공항 건설사업 전략환경영향평가서를 최종 ‘반려’했다. 2015년 발표 당시부터 사업의 타당성과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약 5조 짜리 국책사업이 협의 대상조차 못된 채 6년 만에 사실상 무산 수순을 밟게 된 것이다. 환경부는 조류 서식지 보전방안 (☞ 관련기사 : 조류충돌 전문가 "중대형 물새서식지 인근 제2공항...대형사고 배제 못해") 항공기 소음 예측, 법정보호종 영향 등을 반려 사유로 제시했다. 

'성산환경을 지키는 사람들(이하 성지사)'은 그동안 마을 안팎의 도움을 받아 정부가 만든 보고서가 실제 상황을 반영하지 않은 거짓임을 밝혀왔다. 이들은 제주 동부지역을 삶의 터전으로 하는 다양한 종류의 조류를 조사하며 성산의 환경이 지구의 건강과 깊이 연결돼 있음을 알게 됐다고 했다. 

환경부 반려로 성산으로 예정됐던 제2공항 건설은 사실상 추진 동력을 잃었지만 이들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한다.

세계의 시민으로서 행동해야 할 책임을 느끼게 된 '성지사'는 '지켜야할 땅, 바당 그리고 이웃 I -지구온난화의 위기 속에서 제주 성산 제2공항 건설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대해 세계 시민과 대한민국 정부에 보내는 글 Ver. 1.0'을 제작하기로 했다. 백서를 통해 그동안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집단적 합리성을 찾아 행동하려는 노력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성지사는 "성산 제2공항이 실질적으로 무산되었음에도, 제주 제2공항을 전제로 한 사업을 포함한 난개발 사업들이 제주와 대한민국 곳곳에서 여전히 추진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느낀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제주의 생태환경을 돌보려는 소모임들이 서로 연대하려는 움직임이 있기에 희망이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송악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원희룡 제주지사는 작년 10월 25일, 송악산을 배경으로 ‘청정제주 송악선언’을 발표했다. 그해 11월 2일 그에 대한 후속조치로 '청정제주 송악선언 실천조치 1호'를 내놨다. 

원 지사는 ‘송악선언’에서 제주투자 3원칙(환경보호, 투자부문간 균형, 미래가치를 높이는 투자)에 따라 난개발에 마침표를 찍겠다고 선언했다.

최전선에서 이와 같은 송악선언을 이끌어낸 이들이 바로 '송악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하 송사사)'이다. (☞ 관련기사 : 송악산 난개발 막아낸 작은 거인 김정임)

원희룡 제주지사는 송악선언 당시 난개발 논란이 일고 있는 개별사업마다 짧은 입장을 밝혔다. 얼핏 환경보전 중심의 정책을 펼치겠다는 입장으로 보이나 면밀히 살펴보면 적법성을 확보한 후 추진하겠다는 내용이 전반적이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에 가까운 선언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 관련기사 : [주간원희룡]그림 같은 선언식과 의지박약 실천조치)

'송사사'는 그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다고 했다. 이들은 "원희룡 제주지사는 대권 행보를 위한 정치적 상징으로 '송악선언'을 이용했다"며 "우리는 그를 ‘제주를 이용한 인물로’ 똑똑히 기억해야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송악산 문화재(천연기념물) 지정과 세계지질공원 지구 지정(지질명소, geosites)을 당장 추진하고 송악산 일대와 알뜨르를 포함해서 '생태·평화대공원'을 만들기 위한 계획에 즉각 착수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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