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우리 수박은 아직 밭에 적응도 못하고 있을 때 오일시장에서 혼자 들기에 버거울 정도로 무거운 수박을 샀다. 다들 수박값이 비싸다고 아우성이었던 즈음이다. 친구들 모임에서도 커피잔을 사이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수박값 비싸다 이야기 하길래 “수박 한 덩이에 1만5000원이 비싸냐?”고 되물었다.
커피 한잔에 5000원은 비싸다 하지 않고 서슴없이 지갑을 열면서. 왜 수박은 하나에 1만5000원 받으면 안 되나? 2만원은 받아서 안 되는 법이 어디 있기라도 한 거냐구? 수박값은 그렇다 치고 올해 유난히 수박이 크다 느꼈다. 사면서 몇 킬로쯤되냐 아저씨께 여쭈었더니 10kg는 될 거라고 하더라. 오늘도 동네 가게에서 아주 커다란 수박이 입고되는 것을 보았다. 자연재배로 10kg에 달하는 수박을 생산해 낼 수 있을까?
수박은 대표적인 다비성 작물이다. 작물마다 특성이 있어 자랄 때 비료 혹은 양분을 많이 필요로 하는 작물이 있고 조금 덜 필요로 하는 작물이 있다는 이야기다. 가령 옥수수는 나무를 크게 키워야 하니 질소질이 많이 필요하고 그런 만큼 자랄 때 양분이 될 만한 것을 비료로든 퇴비로든 많이 공급해 주어야 한다.
열매를 크게 만들어내는 수박이나 호박은 상대적으로 열매가 작은 참외나 오이에 비하여 역시 질소가 많이 필요하단다. 이런 작물들을 다비성 작물이라 한다. 땅속 작물인 감자나 당근도 열매를 크고 튼실하게 키워내려면 역시나 양분이 충분히 필요하다. 이리저리 이야기 나누다 보면 다비성 작물이 아닌 것이 없고 비료나 퇴비 없이 키울 수 있는 작물은 없어 보인다.
다비성 작물이란 말에 의문을 갖게 된 계기는 옥수수를 키우면서였다. 옥수수는 내 첫 텃밭에서부터 재배하기 시작했으니 벌써 10년 역사를 자랑하는 작물이다. 밭 만들기가 되었던 때도 아니고 퇴비를 만들어 작물에 투입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첫해부터 옥수수는 우리 가족에게 먹을 것을 주었다.
농약 방제를 하거나 영양제도 주거나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별 탈 없이 잘 자라 주었다. 손바닥만큼의 텃밭일 때야 어쩌다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작년에는 200평 남짓의 밭에다 땅콩과 옥수수를 번갈아 심었는데 벌레 피해도 없이 실한 옥수수를 수확하였다.
수박과 호박도 마찬가지이다. 열매를 크게 키워내야 하니 줄기가 충분히 자라고 그 줄기가 열매를 키울 수 있도록 충분한 영양을 공급해 줘야 한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줄기를 뻗는 수박, 호박, 참외, 오이 등은 잎이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 중요하다. 줄기를 넓게 뻗게 하고 그 줄기에서 자라난 잎이 튼실하게 잘 자라서 태양으로부터의 에너지를 충분히 잘 저장한다면 커다랗고 실한 열매를 달 수 있다.
풀 관리를 소홀히 하여 잎이 잘 자라지 못한다거나, 잎이 광합성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닌 그늘이라면 열매는 조그맣게 달리고 잘 자라지 못한다. 참외는 손자 줄기에서 열매가 열리고 손자 줄기까지 왕성하게 자라게 두다 보면 서로 엉켜 스스로 그늘을 만든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는 참외는 수정이 되었다 하더라도 크게 자라지 못한다. 참외가 햇빛에 노출되지 못하여 그런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그 참외를 키워줄 잎이 그늘에 가려 광합성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요즘은 토종 먹골참외를 수확하고 있다. 참외는 비료를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 작물이라고들 말한다. 참외는 자연재배에 최적인 작물이다. 모종을 심을 때 물을 따로 주지 않고 심어도 현재까지 잘 자라고 커다란 열매를 수확하고 있으니 말이다.
참외만 그런 것이 아니다. 수박이나 호박도 충분히 큰 열매를 수확할 수 있다. 다비성 작물이다 아니다 구분해놓고 그렇게 재배하지 않으면 절대 안 되는 것처럼 교육하고 교육받고 그렇게 농사짓고 있다. 굴레다.
수박만이 아니다. 감자도 점점 커지고 있다. 양파도 조금 과장하면 어린아이 머리통만 한 게 많이 생산된다. 크기를 키운다는 것은 생산량이 늘어난다는 것이고 농민의 수입과 직결된다. 양파 한 개당 10g씩만 커져도 전체 생산량은 어마어마하게 달라질 것이다. 비료를 구매하고 퇴비를 구매하게 되는 구조다.
양파가 크게 자란 만큼, 수박이 10kg으로 자란 만큼, 농민의 수입도 늘어났을까? 비료도 퇴비도 농약도 그 어떤 자재도 사용하지 않는 농사를 시도해보자.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 진리일까, 진리라 믿는 것일까? 나도 내년에는 자연재배로 10kg짜리 수박 수확에 도전!
전업농이 된 지 4년 차. 농민으로 살면서 느끼는 일상을 가볍게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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