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외농사는 재밌었다. 직파재배를 고집하다가 처음으로 모종을 내서 정식(定植)한 참외는 의외로 잘 자라주었고, 수확도 재미있었다. 토종 먹골참외는 많은 양을 생산하였고, 작황도 좋았다.
토종 사과참외에 이어 토종 먹골참외까지 소비자 반응도 좋았다. 토종 먹골참외와 토종 사과참외, 그리고 노랑참외까지 세 종의 참외를 재배하고 판매하면서 다음 참외농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감도 잡았다.
수박은 양도 적었고 늦게 정식하여 수확을 할 수 있을까 나름 걱정하였지만 작년보다는 많은 수확량에 감사한다. 관리가 부실하고 시기가 늦어져 크기가 대체로 작았다. 6kg 정도의 수박은 생산했어야 하는데 4~5kg 크기에 머물러 아쉬웠다.
하지만 토종 산수박을 시험 재배해 보는 한해였다. 동그랗게 자라는 흑수박과 달리 산수박은 길쭉하게 자라고 크기도 작은 수박이었는데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요즘 추세에 더 적합하다는 느낌이다.
당근농사는 어려움이 더 많았다. 세 번으로 나누어 파종하였는데 마지막 파종한 당근은 태풍에 싹을 잃어버렸다. 덕분에 당근 파종량은 계획했던 것의 2/3로 줄었다. 토종 흰당근의 매력을 작년에 알고 올해는 흰당근의 파종량을 조금 늘렸고, 보라색 당근 씨앗을 구해 같이 파종하였다. 기존의 주황색 당근의 양은 그만큼 더 줄어들었다.
파종량이 줄기는 하였으나 두 번 파종한 당근은 잘 자라주었고, 판매상황도 괜찮다.
작년 제주 월동무의 맛이 유난히 좋다는 소비자 반응에 힘입어 파종량을 늘렸는데 이번 한파에 많이 상한 듯이 보인다. 초겨울 따뜻했던 날씨 탓에 병이 생겨 무가 상하더니만 한겨울을 지나면서는 한파로 절반 이상의 무를 수확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12월 초반에 예상하지 못한 한파와 설 전후로 계속된 한파에 우리만 놀란 것이 아니라 농작물들도 많이 놀란듯하다. 조금 일찍 수확하여 저장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
태풍에 잠식당한 당근밭을 갈아엎고 비트를 조금 심었고, 여러 가지 잎채소를 흩뿌려 파종하였다. 심었던 비트가 예상외로 잘 자라주어 봄 비트 재배에 도전하게 됐다. 모종만들기가 유난히 까다로운 비트는 직파로 재배하기로 한다. 잎채소는 토종 구억배추 얼갈이로 조금 판매하였고, 청경채, 시금치, 쑥갓, 비타민채 등을 수확하였다.
날마다 수확해야 하는 일이 번거롭고 어려웠다. 특히 새털처럼 가벼운 시금치를 수확하려면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작고 여린 시금치는 특히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았다. 매해 시금치 농사에 좌절하다가 올해 처음 긍정적인 결과에 만족.
양배추와 브로콜리 모종을 정식했던 8~9월은 가뭄이 극심했다. 모종을 정식할 때 물을 따로 주지 않는 방식으로 심었는데 올해는 바짝 마른 땅에 심고 물마저 주지 않고 정식한 후로도 계속 비가 내리지 않아 모종은 타들어 갔다. 한 번 더 모종을 보식하면서 언제쯤 비가 올 것인지 하늘만 올려다봤다.
말이 보식이지 거의 죽어 사라진 양배추 브로콜리 밭을 보면서 이 녀석들은 제발 살아주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그 후로도 비는 오지 않아 많은 모종이 사라졌고 휑한 양배추밭을 보고 있노라면 속이 쓰리다. 자연 재배 밭에도 농업용수를 설치해야 하나?생각 중이다.
가을감자를 조금 수확하였고, 토종고추 울릉초를 재배하여 고춧가루를 생산하기도 하였다. 노각, 할라피뇨, 바질, 고수, 루꼴라 등도 조금씩 생산하여 꾸러미를 보내기도 하였다. 2022년 한 해 동안 생산하고 가꾸었던 작물들을 정리하는 데 아직도 8월에 머물러 있다. 8월까지 생산하고 판매한 작물이 36가지나 되었다. 12월까지 정리하면 40여가지가 훌쩍 넘을 것이다.
짧은 경력이긴 하나 당근농사도 3년 차고, 귤농사 5년 만에 무투입 자연재배 귤을 생산한 첫 해이기도 하다. 계속 반복되는 일상 같아도 해마다 새롭다. 매해 농작물을 마주 대하다 보면 처음인 듯 낯설기도 하거니와 어렵다.
2022년 한해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더 느끼는 해였다. 파종한 당근이 사라지고, 비트는 모종에 실패하고도 3번의 직파 중 한 번의 분량만을 제대로 수확하였다. 심은 모종은 가뭄에 타들어 갔고, 아직 수확하지 않은 무는 얼어죽을 지경이다.
겨울이 깊어간다는 것은 새로운 기운인 봄기운이 몰려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파 끝에 따뜻한 봄기운이 물씬 느껴졌으면 좋겠다.
전업농이 된 지 4년 차. 농민으로 살면서 느끼는 일상을 가볍게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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