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여러모로 잘 맞는 사과참외와 먹골참외. (사진=김연주)
나와 여러모로 잘 맞는 사과참외와 먹골참외. (사진=김연주)

세 번의 태풍이 휩쓸고 지나갔고 토종 독새기콩 콩밭을 갈아엎었다. 그해 여름 우린 너무나도 열심히 콩을 파종하고 순치기를 하고 검질(김의 제주어)을 맸다. 본잎이 나와 왕성하고 건강하게 자라는 콩 새싹을 보며 뿌듯했고 힘이 불끈 솟았다. 순치기를 하고 가지를 많이 치고 안정적인 자세로 자라는 콩들을 보면서 어찌나 믿음직스러워 했던지.

콩밭을 갈아엎은 날 남편은 응급실에 실려 갔고 수술을 했다. 한 달쯤 지났을까? 아직은 움직이지도 말라는 그 몸으로 콩 수확기를 움직여 콩을 수확하였었다. 말이 수확이지 우리의 주머니엔 주글대는 콩들만 가득이고 제대로 영근 콩은 거의 없었다. 

절망했고 힘을 잃었다. 그해 겨울 열심히 한다고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니라는 참담한 교훈을 얻었고 콩농사는 할 게 못된다는 못된 교훈도 함께 얻었다. 

지금은 당근과 무와 감자 수확을 앞두고 있다. 귤 수확도 한 번쯤 더 할 수 있으면 해야 한다. 비트도 수확해야 하고, 양배추와 브로콜리, 콜라비도 수확을 앞두고 있다. 갈아엎지도 않았고 많은 면적을 재배하지도 않았다. 

수확 중인 당근. (사진=김연주)
수확 중인 당근. (사진=김연주)

당근은 500평 중 300평이 살아남아 자라고 있고 비트는 100평 중 50평이 자라고 있고 세 번을 파종하였다. 자라고 있는 나머지 50평도 수확은 어려워 보인다. 귤은 500평 밭을 임대하여 재배 중인데 작년까지는 거의 판매하지 못하였던 귤을 올해는 꽤 많은 양 판매 중이다. 

당근이 자라지 못한 곳에 비트를 파종하였고, 그리고도 남은 곳엔 잎채소를 파종하여 지금껏 수확하고 있다. 청경채, 토종구억배추, 시금치, 비타민채, 쑥갓, 상추등 그해 여름 3000평 넘게 콩파종만을 했던 것과는 다르게 봄 양배추와 봄 비트를 시험재배했다. 

무투입 자연재배라 어려울 거라는 건 나의 선입견. 봄 양배추도 훌륭히 잘 자라주었고 무엇보다 소비자반응도 좋았다. (사진=김연주)
무투입 자연재배라 어려울 거라는 건 나의 선입견. 봄 양배추도 훌륭히 잘 자라주었고 무엇보다 소비자반응도 좋았다. (사진=김연주)

양배추는 벌레가 구멍을 숭숭 뚫어놓는 바람에 알이 차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나름 선전하였다. 그래도 겨울 양배추에 비하여 알이 작고 아삭한 맛이 덜하여 별로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웬걸 소비자들이 꾸준히 찾아주는 경이로운 일이 일어나 그 양배추를 다 팔았다. 

이쯤 되니 내년에도 봄 양배추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야심차게 준비했던 겨울 양배추 농사가 가을 가뭄으로 성적이 좋지 않은 탓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양배추, 브로콜리, 비트는 겨울 농사라야지. 내년 봄에 한 번 더 해 보고 겨울 농사에는 좋은 성적을 거두리라. 

옥수수 시험재배도 결과는 좋지 않았고, 김장배추도, 겨울 감자도 성적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콩, 동부, 팥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데 포기는 더 쉽지 않다. 소득이 되어본 적 없는데 아직도 계속 재배 중인 작물들이다. 

올해는 특히 산수박의 매력에 푹 빠졌다. (사진=김연주)
올해는 특히 산수박의 매력에 푹 빠졌다. (사진=김연주)

짧은 경험이지만 수박과 참외는 나와 참 잘 맞는 작물이라고 느낀다. 자연재배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옥수수와 수박은 교과서에 다비성 작물이라 소개된다. 비료나 퇴비를 많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많이 주면 크게 혹은 많이 수확할 수 있을 것이라 나도 안다. 하지만 무투입으로 키워도 충분히 크고 맛있는 수박과 참외를 수확할 수 있었다. 

나의 밥상에 올려 자급하는 수준이 아니라 판매할 수 있는 경쟁력을 말하는 것이다. 참외와 수박은 비료보다 더 중요한 것이 광합성이라 느꼈다. 몇 년간의 경험을 보자면 수박과 참외 잎이 무성하게 잘 자라서 광합성을 잘한다면 커다랗고 달콤한 열매를 주더라는 것이다. 

계속해서 수박과 참외 재배면적을 늘려가고 있지만 내년에는 더 많이 늘려 생산해 볼 계획이다. 당근과 비트 파종했던 것처럼 참외, 수박도 3차 정식을 목표로 하고 있다. 노지 자연재배로 7월 중순 이후부터 9월 중순까지 석 달 수확 판매를 계획 중이다. 여름작물로 참외, 수박,호박, 가지, 고추 등을 재배하고 월동작물로 당근, 무 비트, 양배추, 비트, 시금치, 봄작물로는 마늘, 양파,완두콩 등….

토종 흰 당근은 인삼맛이 난다고도 하고 부드럽고 맛있다는 소비자 반응이다. (사진=김연주)
당근 삼남매. 토종 흰 당근은 인삼맛이 난다고도 하고 부드럽고 맛있다는 소비자 반응이다. (사진=김연주)

“농민입니다”라고 나를 소개하면 “무슨 농사 지으세요?”라는 질문이 돌아온다. 이처럼 주작물을 물어오면 아직도 어렵다. 이제는 질문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을 어렴풋이 해 보지만 예전에는 다들 그리 질문하고 그 질문에 대답을 못하는 농민은 없어 보였기에 그저 나만 답답.

나의 주작물을 적어본 적이 있었다. 한 달에 하나씩만 해도 12작물. 게다가 보조적으로 하나만 더 넣으면 24가지 작물이 밭에서 자란다. 작물을 키우고 자라는 아이들을 보며 소비자 이름이 떠오르고 다음 작물이 계획된다. 

12월 오늘. 당근 주산지인 구좌읍. 당근이 없다. 올해도 어김없이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농민들의 한숨이 깊었다. 우리 당근밭도 네 번의 파종 끝에 반의 당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반은 지금 수확을 하고 있거나 수확을 앞두고 있다. 

무밭에는 예전에는 본 적이 없던 한랭사(가림망) 비스무리한 망사를 덮고 걷느라 분주하다. 가을 가뭄이 심해져 물을 싣고 나르는 트럭이 분주하다 아스팔트에는 그들이 흘린 물이 흥건하다. 투자 제1원칙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 왜 우리는 한 바구니에만 담으려 할까요?

김연주.
김연주.

전업농이 된 지 4년 차. 농민으로 살면서 느끼는 일상을 가볍게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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