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토종 씨앗 나눔을 한다. 일 년에 한번 혹은 두 번. 약간의 시간적 여유가 생기거나 나눔하기 적당한 씨앗을 적당량 채종한 경우에 진행한다. 공지글을 작성하고 신청을 받고 취합된 주소를 봉투에 일일이 적어둔다. 우편번호를 적어달라 요청하지만 없는 경우에는 검색창에 입력하여 우편번호를 찾아 적어 넣는다.
우체국에 가서 우편물을 부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반드시 다음부터는 하지 말아야겠단 생각을 한다. 하지만 적당한 때가 오면 다시 나눔글을 작성하고 나눔할 씨앗을 갈무리한다. 나의 토종씨앗들도 애초에 그들에게서 왔듯이 그들에게 나의 토종씨았들을 돌려주는 작업이다. 토종 찰 옥수수가 갈무리되면 나눔을 해야겠다. 먹골참외는 나눔예고를 해 놓은 상태다.
당연하게도 요즘은 씨앗채종하는 농민을 보기가 어렵다. 씨앗은 오일장이나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상추 씨앗은 한 봉 사면 텃밭에선 10년은 거뜬히 키워 먹을 수 있는 양의 씨앗이 들어 있다.
게다가 종류도 다양해서 배추처럼 넓게 생긴 것부터 오글거리는 잎을 가진 것, 아삭한 맛이 좋은 것, 쌉싸름한 맛이 좋은 상추며 추대가 늦게 되는 품종 등 각양각색의 상추가 천 원짜리 두어장이면 살 수 있으니 편하기로 치면 최고다.
반면 금보다 비싸다는 파프리카 씨앗이며 한 알에 500원을 훌쩍 넘는 단호박 씨앗들도 있다. 이런 씨앗의 문제는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사서 써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농민회에서는 봄에 씨앗과 모종을 나눔하는 토종발대식 행사를 거행한다. 회원들간 나눔을 우선하지만 토종씨앗에 관심 있는 도민들도 많이 참석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토종씨앗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늘어감을 느낀다. 올해도 토종수박과 토종참외, 토종오이 등 여러 가지 토종작물들을 모종으로 키워 나눔하고 회원들이 일 년동안 키우면서 토종을 알아가기도 하고 서로 질문하면서 농사법도 새롭게 배운다.
수박인줄 알고 정성스레 키웠는데 박이 열렸다고 소란을 피우기도 하고 산(山)수박인줄 알았는데 아닌 것 같다는 둥 재밌는 일들이 올해도 많았었다. 가을이면 일 년동안 키운 토종 작물들을 잘 갈무리하여 맛있는 음식을 마련하고 함께하는 추수한마당도 있다. 봄에 나눔받아 키웠던 여러 가지 토종작물에 대한 결과물을 확인하고 내년을 기약하는 자리다.
토종씨앗을 구하고 싶다면 토종씨앗운동을 하고 있는 토종씨드림을 검색하면 된다. 토종씨드림 다음카페에 가입하고 나눔 받을 수 있다. 후원회원이 되면 봄, 가을 정기 씨앗나눔을 받을 수 도 있다. 키워보고 싶은 토종 작물이 있으면 잘 공부해 두었다가 정기 나눔에 신청하면 작기에 늦지 않게 받아 볼 수 있다.
처음에는 개별적으로 연락을 주시는 한 두 분께도 일일이 답을 드리고 연락을 취하고 씨앗도 보내드렸었다. 이제는 여유있는 씨앗은 토종씨드림으로 보내드리고 토종씨드림을 통해 나눔 받으시길 요청하고 있다.
올해는 토종 먹골참외 농사가 잘되어 판매도 꽤 많은 양을 하였는데 마침 토종씨드림 사무국에서 교잡되지 않은 먹골참외 씨앗을 받아볼 수 있냐는 요청이 있어서 갈무리 되는대로 보내드릴 예정이다. 토종 씨드림은 전국에 토종농민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어서 필요한 씨앗을 농민에게서 얻는다. 농민이 필요한 씨앗을 사무국을 통해 연결해 주기도 한다.
몇 년 전 일이다. SNS를 통해서 보았다며 흑수박을 보내줄 수 있냐는 문의였다. 아직 판매를 생각해 보지 않았던 터라 어렵다 말씀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 전화를 주셨고 막무가내였다. 어떻게든 토종 흑수박을 맛보고 싶다했다.
또 다른 분은 근처에 왔다며 가면 먹골 참외를 살 수 있냐는 것이다. 먹골참외는 수확이 끝나서 이제 없다 말씀드렸더니 씨앗이라도 구할 수 없냐고 하셨고 참외가 없으니 씨앗도 없다 말씀드렸다. 급기야는 밭에 버려진 파치(비상품)도 없느냐는 것이다. 이런 무례함을 여러 번 경험하다 보니 아무리 ‘을’이라는 농민이지만 화가 불끈…. 토종씨앗을 나눔요청할 때에는 나눔의향이 있는지 먼저 확인했으면 한다.
또 300평 완두농사를 토종으로 해 보고 싶은데 씨앗 살 수 있나요? 올해는 구억배추농사를 지어보고 싶어서요, 천 평인데 씨앗 있어요?처럼 한 번에 토종씨앗을 많은 양 구하려는 경우가 있다.
토종씨앗을 그리 많이 가지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눔을 받고 증식해 다음해에 천 평이던 5000평이던 농사를 짓길 권한다. 나눔은 증식재배를 전제로 한다. 나의 토종 완두도 꼬투리 3개로 시작했고 토종 달래파는 전국모임갔다가 얻어온 종이컵 4분의 1로 시작했다. 올해 200평 먹골참외 농사는 5~6년전 여성농민대회차 갔다 얻어온 참외 한 알 이었다.
가을이 되고 벌써 강원도 산지에는 서리가 내렸다는 소식이다. 1월이면 고추씨앗을 붓고 육묘를 시작한다고 하니 내년 농사를 계획하다보면 마음이 바쁘다. 이번에는 토종농사를 조금 지어볼까?하는 생각도 들 만하다. 토종씨앗을 구해서 시험재배라도 해 봄직하다.
전업농이 된 지 4년 차. 농민으로 살면서 느끼는 일상을 가볍게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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