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을 앞둔 장기콩. 태풍 피해로 작황이 좋지 않아 보인다.(사진=김연주)
수확을 앞둔 장기콩. 태풍 피해로 작황이 좋지 않아 보인다.(사진=김연주)

태풍피해를 호되게 당하고 나서 다시는 콩농사를 짓지 않겠다 다짐을 했건만 어느새 토종콩을 갈무리하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태풍이 여러 차례 지나갔고 9월은 가히 태풍의 달이라 불릴 만큼 여러 개의 태풍을 맞이하느라 몸과 마음이 바빴다. 당근을 파종하고 여린 싹이 막 올라온 시기라 직격으로 피해를 줬다. 

무는 많이 성장해서 피해가 덜했지만 덜하다는 것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행히 콩은 바람 피해로 살짝 눕기는 하였지만 꼬투리가 상하거나 떨어지는 일은 없어서 큰 피해를 면했다. 구좌지역도 김녕 쪽으로는 바람 피해를 꽤 입었으나 종달리는 덜해 보였다. 

8~9월 바람과 비는 구좌지역의 콩농사를 콩나물콩으로 한정시키는 듯하다. 키가 작아 땅에 붙어 있듯이 자라는 콩나물콩은 거센 바람이 몰려오는 태풍 시기의 바람을 거뜬히 이겨낸다. 반면 서리태나 메주콩은 바람을 고스란히 받아내느라 큰 키가 불리하다. 옆으로 누워버리기 일쑤이고 부러지기까지 한다. 보이는 콩밭은 거의 콩나물콩밭이다. 

검은동부와 개파리동부가 섞여있다. 동부 갈무리 중. (사진=김연주)
검은동부와 개파리동부가 섞여있다. 동부 갈무리 중. (사진=김연주)

키가 더 작은 풍산콩이 있고 조금 더 길게 자라고 알도 조금은 큰 장기콩이 있다. 콩나물콩은 알이 작아야 콩나물이 되었을 때 중량이 많이 나가므로 풍산콩 값을 더 쳐준다. 요즘은 풍산콩도 기계수확을 하지만 예전에는 키가 작아 손으로 꺾어 탈곡기로 작업했다.

콩 농사 3~4년 만에 왜 제주농민들이 장콩 농사를 짓지 않는지 알 듯하다. 그럼에도 나는 할 수 있다는 근거 부족한 자신감으로 올해도 서너 종의 토종콩을 심었고 갈무리 중이다. 왜 이리도 어려운 콩농사에 집착하는가. 

밥과 국 김치가 주인공인 우리 밥상에서 국은 된장국이 기본이고 그 된장을 만든다면 콩이 있어야하는 것이다. 콩나물은 안 먹어도 되지만 된장국은 꼭 있어야하고 나물반찬을 만들때에도 간장과 된장이 필요하다. 콩나물콩은 상업작물이지만 장콩은 우리 밥상을 차리기 위해 꼭 필요한 자급작물인 것이다. 

부엉다리콩과 선비콩. 선비콩은 과거보러가는 선비가 간식으로 가지고 길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있고 초록콩에 검은 반점이 선비의 먹물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사진=김연주)
부엉다리콩. (사진=김연주)

제주의 토종 콩인 푸른콩이 있지만 거듭되는 실패 경험으로 올해는 다른 지역에서 주로 재배되고 있는 장콩을 제주에서 재배가능한지 실험해 보았다. 태풍피해의 영향으로 수확량이 거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다른 토종농민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푸른콩농사의 어려움을 다시 한번 더 절감했다. 무얼해도 맛있는 푸른콩은 이제 마음을 비워 내려놓고 다른지역의 콩으로 재배를 도전해보리라. 

부악다리콩이라고도하고 붏다리콩, 부엉다리콩이라고도하는 콩이 예전 재배에서는 꼬투리가 부실하게 달렸었는데 올해는 꽤 실하게 되었다. 내년에는 조금 더 늘려 생산해 장을 담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노란콩이고 알이 커서 장콩으로는 그만인데 맛도 제법 좋다고 알려져 있다. 제주에서도 부엉다리콩의 특성이 그대로 살아있으면서 잘 되었으면 한다. 

선비콩도 몇알 심어 1kg정도 수확하였는데 재배에 별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몇 년 전 재배에서도 괜찮았는데 내년에도 이어가 볼 생각이다. 욕심부리지 말고 두 종만 성공해보자. 부엉다리콩으로 장을 담고 선비콩은 밥에 두어 먹으면 우리 밥상은 한층 더 풍족해지겠지?

선비콩은 과거 보러가는 선비가 간식으로 가지고 길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있고 초록콩에 검은 반점이 선비의 먹물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사진=김연주)
선비콩은 과거 보러가는 선비가 간식으로 가지고 길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있고 초록콩에 검은 반점이 선비의 먹물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사진=김연주)

콩농사에 대한 욕심은 아직도 끝이 없어 여러 가지 종류의 새로운 콩들을 보면 농사의 어려움은 까맣게 잊고 씨앗을 잘 갈무리해 내년을 기약해 둔다. 며칠 전 지리산 산내면의 작은 마을을 돌다 풍성한 넝쿨 사이로 강낭콩이 주렁주렁 열려있길래 주인의 허락도 받지 않고 두 개의 꼬투리를 챙겨왔다. 

어찌 생긴 콩인지 알도 확인하지 않고 가져왔는데 잘 말려 까보고는 그 색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저 호랑이콩이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진한 보라색이 검은색처럼 보이고 동그랗게 반짝이는 매력적인 콩이었다. 9알이 들어 있었는데 내년 강낭콩 농사 생각에 벌써 가슴이 뛴다. 

지리산 자락 작은마을에서 데려온 넝쿨강낭콩. (사진=김연주)
지리산 자락 작은마을에서 데려온 넝쿨강낭콩. (사진=김연주)

두 종류의 동부농사도 갈무리가 어려워 내년에는 씨앗 보존 정도로 줄여볼까 하던 차에 어금니동부의 굵은 알을 보고 내년에는 어금니동부를 더 심어보기로 작정을 한 터라 동부농사도 내년에는 3종으로 늘었다. 

검은동부는 알이 작아 수확량이 적은듯하나 구수한 맛이 좋았고 개파리동부는 색이 특이하여 팥 대용으로 사용하기 좋았다. 동부는 워낙 맛이 좋아서 콩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좋아한다. 떡 소로 사용해도 좋지만 밥 지을 때 섞어 먹으면 밥맛이 싱겁지 않으니 좋다. 색 또한 너무 고와 밥맛이 두세 배 상승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사람의 어금니를 닮은 어금니동부. 알이 굵어 나의 마음을 흔들었다 수확량이 많겠는걸? 하고. (사진=김연주)
사람의 어금니를 닮은 어금니동부. 알이 굵어 나의 마음을 흔들었다 수확량이 많겠는걸? 하고. (사진=김연주)

갈수록 기후위기가 심각해지고 가뭄이 지속되거나, 폭우가 쏟아져 농사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콩농사는 해를 거듭할수록 심각하게 어려워지고 있다. 지금 제주도 극심한 가뭄에 당근밭도 먼지가 풀풀 날리는 지경이다. 무밭에 자라던 무는 말라 죽어가고 있고, 귤나무과수원에도 물대기하느라 농민들이 밤잠을 설치고 있다. 

비가 오지 않으니 콩 수확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이다. 파란 가을하늘을 마주하고 튼실한 콩 알곡을 보면 마음까지도 풍성해진다. 그렇다 하더라도 비가 좀 내렸으면 좋겠다.

김연주.
김연주.

전업농이 된 지 4년 차. 농민으로 살면서 느끼는 일상을 가볍게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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