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된 수박들. (사진=김연주)
수확된 수박들. (사진=김연주)

당근 파종을 하고 계시던 옆 밭 삼촌이 우리 밭의 수박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신다. 비료를 안 한 것 맞냐며 확인도 두 어 번 하셨단다. 당신도 텃밭에 수박을 길러 여름 내내 드시지만 비료를 안 하고는 해보지 않으셨단다. 그도 그럴 것이 크게 열매를 만드는 수박은 다비성(거름을 많이 필요로 하는 성질) 작물이니 비료나 퇴비를 많이 필요로 한다. 밑거름을 넉넉히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 상식을 가지고 계실 삼촌도 우리 밭에 자라고 있는 수박이 그저 신기하신가 보다. 우리 밭에는 비료나 퇴비를 하지 않는 줄 알고 있었는데 수박이 무럭무럭 잘도 자라니 그저 신기하신가 보다. 처음에는 요게 자라 수박이 열릴까? 의심의 눈초리로 보셨을 게 분명하다. 나도 모종을 심을 때까지는 아니 한번 풀을 매주고 적심을 해줄 때까지도 이게 과연 튼실히 자라 열매를 달아 줄지 의구심이 매해 든다. 

올해는 봄에 이상저온 현상이 심했다. 기간도 길고, 기온도 굉장히 낮았다. 온도를 매번 측정한 것은 아니어서 데이터가 분명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작년 모종한 시간에 모종을 했는데 전혀 자라지 못하고 모종 실패율 100%를 기록했다. 원인이 봄 이상저온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한 달 늦게 부은 모종. (사진=김연주)
한 달 늦게 부은 모종. (사진=김연주)

해마다 수박 모종과 참외 모종을 5월 10일경 정식(밭에 내어다 제대로 심는 것)한다. 몇 년간의 경험을 통해 4월 10일경에는 집 마당에 모종을 내서 키워도 잘 자라주었고 한 달 정도 자란 모종을 밭에 정식하면 얼추 더운 여름이 가시기 전에 수박이나 참외 맛을 볼 수 있었다. 짧지만 몇 년간의 경험이 쌓여 만들어낸 나의 수박과 참외농사 매뉴얼이다.

그런데 올해는 그 매뉴얼을 따른 봄 모종이 모두 망했다. 수박과 참외, 여러 종류의 호박과 오이 등 모두 밤 기온은 고사하고 낮 기온도 도무지 오르지 않는 이상저온 현상에 싹이 트지 못하는 게 대부분이고 싹이 겨우 튼 것들도 전혀 자라지 못하였다. 

운명처럼 비닐하우스를 임대하게 되었고 뒤늦게 남은 씨앗을 부었다. 하우스라 기온도 꽤 오른 상태여서 발아율도 좋고 잘 자라주어 밭에다 정식을 했다. 5월 10일 정식을 기준으로 했을 때 이미 한 달 정도가 늦은 6월 8일이었다. 잘 자라주길 바랄 뿐이지 자라서 열매라도 자라 줄지는 정말 의구심이 많은 상태였다.

6월 8일 정식한 수박. (사진=김연주)
6월 8일 정식한 수박. (사진=김연주)

경운(논밭을 갈고 김을 맴)을 한 밭에 줄을 치고 한 줄 두 줄 모종을 정식하였다. 자갈이 많아 대체로 농사가 잘되지 않는 밭이긴 하나 담벼락 곁으로 가장자리에는 꽤 좋아서 돌아가며 가장자리로만 300여주 정도 모종을 심었다.

보리를 수확하고 며칠 되지 않았고 비 날씨가 이어지고 있어서 밭도 울퉁불퉁이었지만 어쩌랴, 살아주길 빌면서 심는 수밖에. 밭에 물이 없기도 하거니와 이제껏 모종을 심으면서 물을 따로 주지는 않아서 수박도 역시나 물은 따로 주지 않았다. 

수박 모종을 자연에 내어 맡기듯 심고 나서 한 달이 더 지난 7월 12일 수박밭에는 수박이 자라고 있었다. 물론 풀이 더 잘 자라는 듯 보였다. 이날까지도 수박이 잘 자라 줄까 하는 의구심은 한가득이었다.

정식한지 한 달째 된 수박밭의 모습. (사진=김연주)
정식한지 한 달째 된 수박밭의 모습. (사진=김연주)

가느다랗지만 자라고 있는 수박 줄기를 조심조심 풀들에게서 분리해 놓고 본줄기와 아들 줄기를 잘 살펴본다. 본줄기를 적당한 선에서 자르고 아들 줄기 두 줄기를 양쪽 날개 펴듯이 펴서 잘 자라게 해준다. 여기까지가 수박밭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작업이다.

수박 줄기 가까이에 있는 풀들을 수박 줄기가 다치지 않게 잘  뽑아 주위에 덮어준다. 넓게 펴질 수박 줄기의 영역을 생각하여 아직은 넓기만 하고 풀만 자라는 미래의 수박밭의 풀들도 한번 깔끔하게 잡아준다. 이제 수박 줄기는 뜨거운 태양의 기운을 맘껏 받으며 줄기와 잎을 키울 것이다. 

다시 한 달이 조금 못되게 지난 무더운 여름날. 수박밭은 수박밭이 되어 있었다. 가느댕댕하던 수박 줄기는 이제 제법 굵어졌고. 태양빛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 의심스럽게 좁아터진 수박 잎도 이제 제법 넓고 큰 잎을 달고 있었다. 심지어 벌써 열매를 달고 있었다.

앞으로 보름 정도만 더 있으면 수확을 할 수 있겠지? 이제부터는 수박 잎이 광합성을 열심히 하고 양분을 모아 열매를 키우는 시기이다. 이전에 수박 줄기가 잘 자라고 잎이 무성해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는 풀이 웬만큼 자라는 것은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오히려 태풍이나 강한 바람이 왔을 때 수박 잎을 붙잡아 줄 수 있는 풀들이 있는 것이 더 좋다. 단 잎들이 태양빛을 못 받을 정도로 가리면 곤란하다. 

잎이 무성한 수박밭이 된 모습. (사진=김연주)
잎이 무성한 수박밭이 된 모습. (사진=김연주)

올해도 우여곡절 끝에 수박농사를 마무리했다. 8월 25일 첫 수확 9월 초순까지 판매했다. 어떤 면에서는 성공적일 수 없을지 모르지만 나 자신에게는 여러 가지 성공적인 것이 있었다. 해마다 정식 때까지 의구심을 품고, 수확하면서 확신을 되풀이하지만 올해를 경험 삼아 내년부터는 매 순간 확신을 가지고 하자는 다짐을 하게 된다.

또 하나는 옆 밭 삼촌의 관심이다. 작은 농촌마을이다 보니 나의 농법을 이미 마을 분들이 다 알고 계셨는데 직접 말을 섞지 않으니 서로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다. 여러 마을 분들과의 이야기 속에 나의 농법은 회자되고 있었고 나름 관심을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텃밭 수박밭에 퇴비를 하지 않고 농사 지어보는 시도를 삼촌이 하셨으면 좋겠다. 삼촌의 그 관심과 의구심은 내년에도 비료 없이 수박농사를 해야겠다는 다짐의 큰 원동력이 되었다. 

 

김연주.
김연주.

전업농이 된 지 5년 차. 농민으로 살면서 느끼는 일상을 가볍게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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