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알이 제법 굵다. (사진=김연주)
감자알이 제법 굵다. (사진=김연주)

언제 쉬웠던 적이 있었으랴만 올겨울은 유독 힘들었다. 12월 말에나 한번 눈발이 날릴까 말까 하는 이곳 제주에 12월 중순에 때 이른 한파에 눈보라가 휘날렸다. 한번 쌓인 눈은 낮은 기온 탓에 이틀 동안 녹지 않았다. 

1월에도 한파가 왔다하면 2~3일 내리 낮은 기온에 당근과 무 잎이 동해(凍害)를 입었다. 가을 가뭄으로 늦게 파종한 당근이 미처 자라지 않아 애를 먹고 있었는데 더 자라야 할 당근의 잎을 상하게 했으니 당근 성장을 기대하기는 이제 끝이다. 

마지막 한파에는 무를 고사 시켜버리는 결정적인 한파였다. 해안가 가까운 마을의 무 밭은 3월이 지나도 푸릇하게 자라는 무밭을 쉽게 볼수 있는데 올해는 한파에 타들어 버린 누런 잎을 달고 있다. 그나마 속이 상하지 않았으면 다행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따뜻한 기운을 먼저 알아챈 들판의 풀들과 유채꽃들이 봄맞이 준비 중이다. 자연 재배 밭에도 쪽파가 기세 좋게 새싹을 키우고 당근도 초록의 새잎을 내밀고 있다. 상하지 않은 무도 새싹을 내밀고 꽃대를 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 

자세히 보니 토종 달래파 순도 뾰족하니 올라오고 있다. 춥다고 옷깃을 여미는 농민의 작업복이 무색하게 봄의 기운을 벌써 느끼고 있었나 보다. 길었던 동면을 마치고 농민도 봄맞이 기지개를 켜야겠다. 

파종한 지 한 달, 제법 싹이 고르게 올라왔다. (사진=김연주)
파종한 지 한 달, 제법 싹이 고르게 올라왔다. (사진=김연주)

저장고에서 씨감자를 꺼내 싹을 틔워야겠다. 감자 농사는 항상 어렵지만 내가 먹기 위해서라도 다시 도전을 해봐야겠다. 자연재배 농민이 되어서 제일 어려운 작물 중 하나가 감자가 아닌가 싶다. 농민이 되기 전에는 감자 요리하기를 좋아했었다. 

감자 된장국도 끓이고 감자를 가늘게 채썰어 기름두르고 볶으면 밥상이 뚝딱 차려지니 좋았다. 어린아이들이 찐 감자를 먹으며 달콤하단 소리에 행복하다 느끼기도 했었다. 막상 해 보니 감자농사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먼저 무경운으로 감자를 키워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2년 전쯤 무경운 밭에 감자를 심어 키워본 적이 있다. 무경운 5년차가 되어 땅이 많이 부드러워졌고, 건강한 흙이 된 듯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감자의 반은 굼벵이가 먹었고 또 반은 더뎅이가 아주 심했다. 수확을 한다 한들 내가 다 먹거나 버려야 할 상황이었다. 아직 감자를 재배하기에는 흙이 살아나지 않은 것인가? 좌절하고 2년쯤 감자농사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작년 가을에 가을감자를 조금 심기로 했다. 

무경운을 고집하지 말자. 경운을 하고 대신 투입은 하지 않기로 했다. 비료도 하지 않고 퇴비도 넣지 않았다. 당연히 토양 살충제를 하지도 않았다. 감자를 심는 날 아이들에게 미리 이야기해 두어 일손도 빌렸다. 

조그만 면적이지만 혼자서 감자를 들고 다니면서 심는 것은 허리가 매우 아픈 고달픈 일이라 아이들 손까지 빌렸다. 트랙터로 밭을 갈고 골을 만들면 씨감자를 한 알씩 떨어뜨리고 묻어주면 끝이다. 제주에서 흔히 심는 대지와 홍감자를 조금씩 심었다. 파종은 싱겁게 한 시간 만에 끝이 났다. 아직은 한여름의 열기가 남아있는 8월 중순 감자파종을 마치고 가족 기념사진도 한 장 찍었다. 

감자는 나름 잘 자라주었다. 신기하게도 수확할 감자가 있었다. 대지는 자랄 때 잎이 제법 무성하게 자라더니만 알도 제법 굵었다. 홍감자는 싹이 늦게 올라왔고 그런 만큼 잘 자라지 못하였고 잎의 자람도 부실했다. 

알이 제법 굵다. (사진=김연주)
알이 제법 굵다. (사진=김연주)

역시나 알은 메추리알보다 조금 큰 정도로 아쉽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감자는 종자가 아주 중요하단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은 종자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감자농사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란다. 감자농사 하지 말자는 생각도 여전히 있지만 당분간은 밭갈이를 하고 투입은 하지 않는 감자 농사를 할듯하다. 우선은 우리집 식탁에서 감자를 먹고 싶고 소비자들도 원한다. 

감자 농사의 어려움은 여러 가지이다. 씨감잣값이 비싸고 1kg의 감자로 2평의 감자밭을 만들 수 있다 하니 200평 감자밭을 만들려면 20kg짜리 10박스의 감자가 필요할 정도로 양도 많이 필요하다. 종잣값도 만만치 않다. 농사가 잘되어 정상적인 수확을 하였다 해도 썩 수익이 좋은 작물은 아닌듯하다. 

다만 소비자들이 당근이나 무와 함께 구매하기에 좋은 작물이다. 겨울에 땅속 저장고에 저장해 둘 수 있는 이점도 있다. 필요할 때 조금씩 수확해도 되고 늦게까지 두었다가 3월쯤 수확해도 된다.

저장고에 있는 감자는 잠자고 있는 감자다. 잠자는 감자에게 이제는 그만 자고 깨어날 때라고 알려준다. 감자는 3개월 정도는 잠을 자야 깨어나 싹을 틔울 수 있는데 이를 휴면타파라고 한다. 3개월 잠을 자지 않은 감자는 저장고에서 꺼내주어도 싹을 틔우지 못한다고 한다. 

싹트는 시기가 늦어지면 그만큼 성장이 더디고 감자알이 굵어질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게 된다. 잠을 잘 재우고 싹을 잘 틔운 다음에 흙에 묻어주어야 싹이 고르게 빨리 올라오고 잘 자라 알이 크고 튼실하게 든다. 이런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지식도 없이 감자를 대충 잘라 흙에 묻었다.

충실한 종자를 구하고 싹을 낸 다음 적당한 크기로 잘라 제 시기에 흙에 묻어 주리라. 메추리알보다는 큰 감자알을 얻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해 보는 거다. 작은 감자알이지만 요즘은 매일같이 감자볶음에 찐 감자에 심지어 웨지감자도 만들어 먹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지금은 경운하여 심는 감자농사이지만 머지않아 무경운 감자도 생산할 수 있겠지?

김연주.
김연주.

전업농이 된 지 5년 차. 농민으로 살면서 느끼는 일상을 가볍게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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