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난 할망 농산게”
무경운 무투입 농사에 관심을 보여 이것저것 질문하고 대답하는 중이었다. 관심을 보였던 내 농사를 별거 없다는 듯 하시보거나 비아냥거리는 숨은 뜻이 가득하다. 할망농사란 말에는 조그맣고 보잘 것 없는 농사란 말의 의미가 숨겨져 있고,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그래서 집에서나 소비하는 하찮은 농사라는 의미가 강하지만 숨겨져 있다.
농약은 물론이고 비료나 퇴비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에는 갸우뚱하면서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경운 농사라는 말에는 가당치 않은 소리를 한다는 반응이고 다품종 소량생산이라는 말에는 현실성 없는 이야기로 결론짓고 자신이 지을 농사는 아니라고 결론 내리고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는다.
난감하기로 치면 주작물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수입이 많은 걸 주작물이라고 하나? 아니면 재배면적이 넓어야 주작물인가? 그것도 아니면 가장 애착이 가는 작물을 주작물이라 칭하는 것인가? 몇 개까지 주작물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까?
그 어떤 것을 주작물이라고 한다 해도 내가 재배하는 작물 중에 주작물이 무엇인가를 가려내는 것은 쉽지 않다. 어느 것 하나가 재배면적이 넓지도 않고 어느 것 한두 개가 주로 수입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철마다 여러 가지 작물을 심고 여러 종류의 품종을 심고 가꾼다. 작물하나의 수입이 몇 만원에 불과한 작물이 있기도 하지만 수입이 많다 해도 백만원이다.
무농사만 몇 십만평, 혹은 당근밭만 몇 천평씩 관리하는 농사와는 사뭇 다르다. 1억원이 넘는 트랙터를 굴리려면 넓어도 너무 넓은 농지가 있어야 하고 너무 많은 인력이 투입되어야 하고 너무 많은 수입이 보장되지 않으면 너무 많은 지출을 감당할 수 없다. 그런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트랙터를 사지 않고 너무나 아담한 농지에서 적당히 이웃들과 함께하는 노동으로 충분히 감당 가능한 방식의 농사 말이다.
할망농사라고 불릴만한 나의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무경운이다. 밭을 갈지 않는다는 것은 불과 몇 년 전에는 나에게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농사의 기본 중의 기본이 밭을 가는 것이고 부지런한 농민은 봄이 오기 전에 미리미리 밭을 갈아두어야 한다 여기고 있었다.
지금도 기본은 여러 농민들로부터 충실히 지켜져 오고 있다. 밭을 갈고 비료나 퇴비를 넣고 씨앗을 뿌리는 것은 이제 농사의 기본 매뉴얼인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는 무경운 6년차 밭이 있다. 6년 전부터 경운하지 않고 밭에서 나는 풀들을 두껍게 덮어주기만 하면서 농사를 짓고 있다.
밭을 갈지 않으면 딱딱해져서 씨앗을 넣을 수조차 없을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고는 바꾸기 어렵다. 밭을 갈지 않고 농사지으려면 풀을 덮어주는 작업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무경운 원칙만 고수하고 풀멀칭을 하지 않으면 더 척박해지고 더 단단해져 버린다. 작물이 살기 어려운 환경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밭을 갈지 않으면서 풀덮개를 충실히 잘 해주면 몇 년 지나지 않아 트랙터로 갈아 놓은 밭보다 더 부드럽고 촉촉한 땅으로 변할 것이다.
풀멀칭을 잘 해주면 풀이 다시 올라오는 것을 대부분 막을 수 있다. 경운해서 맨땅이 드러난 밭에는 빈 공간없이 빽빽하게 풀이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멀칭이 되어 있지 않다하더라도 무경운인 경우에는 풀이 드물게 올라온다. 풀의 종류도 다양하고 우악스럽지도 않다. 풀멀칭이 고르고 두텁게 잘 되어 있다면 풀이 거의 올라 오지 않고 작물은 안정적으로 자랄 수 있다.
한번에 모든 농지에 무경운 원칙을 고수하면서 농사짓기에 부담이 된다면 조그만 할망텃밭부터라도 시도해 봄이 어떨는지. 경운하지 않음으로써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농사를 지을 수 있고 트랙터 사용을 줄이고, 비료 농약 사용을 줄이면서 얻을 수 있는 지구 환경적 효과를 생각해 본다면 이제 당장 실천에 옮겨야 하지 않을까?
이제 자연재배 전업농 4년차는 최대한 많은 농지를 무경운으로 경작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참외와 수박을 무경운으로 도전해 보는 것이 2023년의 목표다. 대부분의 작물들은 이제 무경운으로 재배한다. 나름 수입도 안정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조금 더 많은 농민들이 무경운 농사를 시도 해 보았으면 좋겠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농민이 되었으면 좋겠다. 할망농사 시작해보자. 한 평부터.
전업농이 된 지 4년 차. 농민으로 살면서 느끼는 일상을 가볍게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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