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 농민이 되기로 마음을 먹고 자연재배 농민이 되기로하였다. 사실 그전에는 농민이 되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하고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고 일부러 더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다가 자연재배를 접하고 ‘이런 농사라면 해볼만하다’고 생각했고 농민이 되기로 하였다. 

살고 있는 곳에서 꽤 거리가 있었지만 밭을 얻을 수 있었고 오전에는 밭을 일구는 재미에 빠져 매일같이 그 먼 길을 다녔다. 여성농민회(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제주) 회원이 되었고, 회원들이 진행하는 토종종자 증식포 사업에도 참여하여 나름 더 재미있었고 자부심도 있었다. 

지난 2015년 전여농 제주가 참여한 토종종자 증식포 사업. (사진=김연주 제공)
지난 2015년 전여농 제주가 참여한 토종종자 증식포 사업. (사진=김연주 제공)

자연재배의 핵심은 무경운·무비료·무농약·무제초이다. 밭갈이를 전면적으로 하지 않고 비료나 농약을 투입하지 않고 제초작업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 원리에 맞춰 나의 자연재배 밭도 경운하지 않고 그 어떤 자재투입 없이 순조롭게 작물을 키우고 있었다. 

증식포사업에 참여하였을 때의 일이다. 토종씨앗을 지켜내는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거니와 내가 하려는 농사와 잘 맞는다 생각하여 참여하게 되었다. 자연재배의 무투입 농법과 토종씨앗은 한 몸인 것처럼 잘 맞는단 생각이 들었다. 

지금처럼 화학농법이 전면화되기 전부터 우리 어머니의 어머니께서 심고 가꾸던 작물은 비료와 농약과 영양제가 없어도 잘 자랄 것이 분명했다. 도지원사업이다보니 공무원이 내 밭에 현장실사를 왔다. 시간이 맞지 않아 나는 함께 하지 못하였고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밭도 갈지 않고 농사짓는 거 맞아요?”라며 의문을 제기하였다 한다. 

이야기의 뉘앙스는 사업을 제대로 진행하지도 않으면서 사업비를 수령하려 한다는 것 같았다. 그런 의문을 제기 받고 나서 난 더 이상 이 사업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공무원들은 농사의 첫 시작이 밭갈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밭을 갈지 않고 하는 것은 농사가 아닌가요?

강제로 갈아엎어진 완두밭. (사진=김연주 제공)
강제로 갈아엎어진 완두밭. (사진=김연주 제공)

그로부터 1~2년이 더 흐르고 난 겨울. 완두를 파종하였다. 역시나 밭갈이 하지 않고 한알 한알 호미로 심었다. 줄을 쳐 놓고 거기에 따라 완두를 파종하였다. 길게 자란 풀들은 대충 잘라 완두를 심은 곳에 덮어준다. 아직 싹이 조그맣게 올라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봄이 되면 푸르른 완두밭이 되는 그림을 상상하며 뿌듯해했다. 

그런데 며칠 뒤 내 완두밭은 거대한 트렉터에 의해 경운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완두밭은 그저 풀밭처럼 보일 뿐이었으므로. 어찌 된 일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누가? 왜? 남의 밭을?’ 이리저리 생각 끝에 메모를 남겨 두기로 했다. 밭을 갈았으니 무언가 파종을 하려는 것일 테고 그러면 며칠 내로 다시 이 밭에 올 테니.

‘당신은 나의 완두밭을 작살내셨습니다’라고 메모를 하고 밭 가운데 말둑을 박아 두었다. 과연 며칠 내로 연락이 왔다. 아무것도 심어져 있지 않은 빈 밭이었다는 것이다. 잘 보시라고 이미 완두가 자라고 있었다고 희미하게 줄을 맞춰 자라고 있었던 완두 흔적을 발견하시고는 다행히 일은 중지 되었다. 그해 예쁘게 그리려 했던 완두밭 그림은 다음으로 해를 넘겨 그려졌다. 

밭을 갈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지금까지 여러 농민들에게나 공무원들에게나 다 ‘미친 짓’으로 보인다. 말 같은 소리를 하라며 윽박지르는 사람들도 여럿 만났다. 그도 아니면 한가한 텃밭 농민정도로 생각하고 귀를 막아버린다. 직불금을 지급할 때조차도 무경운 농지는 휴경지로 간주하여 직불금이 지급되지 않는다고 한다. 

강제로 갈아엎어진 완두밭. (사진=김연주 제공)
강제로 갈아엎어진 다음해 다시 그린 완두밭. (사진=김연주 제공)

탄소배출량에 관심이 부쩍 많아진 요즘에조차 무경운은 다큐멘터리에서나 하는 이야기이지 농민의 현실은 아닌 것이다. <대지에 입맞춤을>이라는 다큐를 보면 무경운 농법이 얼마나 많은 양의 탄소를 저장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그러나 현실가능성은 없다고 보는지 농민들은 관심이 없다. 

밭을 갈지 않고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무경운 농사에 전념한 지 아직 10년이 되지 않았다. 불과 5년 정도만 해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땅을 살려가며 농사지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무경운 농사다. 

첫 1~2년은 확실히 어렵고 힘들다. 손으로 호미 하나 들고 밭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원시적이고 비경제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흙은 살아나고 밭은 안정화 된다. 텃밭정도는 할 수 있으나 상업 작물을 키우고 대규모 농사에는 맞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무경운 직파를 할 수 있는 트렉터도 있고 대규모 농장에서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다만 이제껏 비료와 농약과 거대 트렉터등을 팔어먹던 대기업들이 가만 있지 않겠지. 비료를 사고 농약을 사고 트렉터를 사는 것에만 보조사업을 주지 말고 무경운 직파기도 보조금받고 구매할 수 있도록 하고 비료 농약 안 사면 보조금을 주는 방법을 모색해 보는 것은 어떨는지. 

 

김연주.
김연주.

전업농이 된 지 4년 차. 농민으로 살면서 느끼는 일상을 가볍게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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