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호근동 소재 책방 '취향의 섬 북앤띵즈'. (사진=요행)
서귀포시 호근동 소재 책방 '취향의 섬 북앤띵즈'. (사진=요행)

이명옥 책방지기가 오름을 소유(?)하게 된 것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는 벽화 작업을 의뢰받아 제주시 구좌읍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3월이라고 해도 겨울처럼 매서운 날이었다. 

그 구부정한 돌담길로 들어선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작업 장소로 가는 길이 익지 않아 다른 길로 빠지게 됐다. 수확을 마친 당근밭에서 하얀 것들이 보였다. 강아지였다! 막 젖을 뗀 것 같은 작디작은 강아지 2마리가 명옥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부주의했더라면 자칫 차로 꼬물이들을 칠 뻔했다. 아찔한 마음을 쓸어내리니 이 꼬물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내적 갈등이 시작됐다. 하지만, 현실적인 상황을 떠올리니 선뜻 어찌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 도와주겠지’하며 길을 돌아 나왔다. 

작업할 곳에 도착해서 그림을 그리려는데 찬 바람이 휭~하고 지나갔다. 자신도 모르게 당근밭으로 향했다. 아까는 2마리였는데 다시 보니 5마리였다. 이때 밭 주인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그날 새벽에 와보니 그때도 이 강아지가 있었다는 말을 전했다. 할아버지는 이 강아지들을 책임질 수가 없었고, 이대로 두었다간 이 작은 생명체들이 내일까지 살아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이 생명을 책임질 수 있을까?’ 또다시 많은 고민들이 그를 덮쳤다. 그때 빗방울이 시작됐다. 다섯 마리를 품에 안고 작업장으로 향했다. 

구조 후 편하게 자는 오름이들. (사진=당근밭의오름이들 SNS)
구조 후 편하게 자는 오름이들. (사진=당근밭의오름이들 SNS)

그는 사회 초년생일 때 반려개를 강아지별로 떠나 보낸 경험이 있다. 어린 시절의 그는 개의 성향과 습성, 기질 등에 무지했다. 그가 개에 대해 잘 알게 된 것은 대학생이 된 후였고 그 무렵 ‘아지’라는 이름의 그의 첫 강아지는 노견이었다. 이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맞이한 긴 이별... 그에겐 또다시 이 작디작은 생명체를 가족으로 끌어안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 어려움, 조심스러운 마음이 매우 컸다. 그리고 본인 집도 아닌 곳에서 강아지를 무려 다섯 마리나 키울 수 있을지도 걱정이 됐다. 

“우선은 살리자! 그리고 잘 키워서 입양을 보내자!” 

그나마 그가 스스로와 타협할 수 있는 지점이었다. 같이 살려면 이름이 필요했다. 제주 태생들이니까 고향의 느낌을 담고 싶었다. 바닷가 마을 이름을 생각하다가 제주에만 있는 오름을 떠올리게 됐다. 그중에서 이름으로 할만한 것을 고르다 보니 거문오름, 백약이오름. 용눈이오름, 사라오름, 새별오름이었다. 그렇게 오름의 이름을 가진 다섯 마리의 강아지의 보호자가 됐다. 

오름이들과의 첫만남. (사진=취향의섬북앤띵즈 SNS)
오름이들과의 첫만남. (사진=취향의섬북앤띵즈 SNS)

강아지 육아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마리의 강아지를 키우는 것도 많은 품이 드는데 한꺼번에 다섯이 생겼으니 그의 삶은 이전과 사뭇 달라져야 했다. 함께 생활하기 위해서는 사람도 강아지들도 약속을 만들어야 했고, 그 약속에 익숙해질 때까지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강아지들이 산책을 해도 될 무렵이 되니 그때부터는 더욱 부지런해져야 했다. 대형견으로 자라는 아이들답게 활동량이 왕성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 세 번의 산책은 필수였다. 

좋은 가정에 입양을 보내기 위해서 SNS를 통해서 육아일지겸 홍보 활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 활동이 입소문을 탔다. 많은 사람들이 오름이들의 랜선 이모, 삼촌,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응원했다. 오름이들 가운데 백약이와 새별이는 입양자를 만났다. 엄청난 압박 면접을 통해 엄선된 가정에 입양을 가서 잘 지내고 있다. 

가족사진. (사진=당근밭의오름이들 SNS)

오름이 양육을 응원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많았다. 진도믹스를 집 안에서 키우질 않나, 산책을 시키질 않나 사료에 간식까지 챙기는 모습이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로서는 더욱 눈총받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편견을 그냥 흘리지 않았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그때만큼은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제주도는 아주 아주 오래전부터 일명 ‘마당개’를 집집마다 키웠다. 지금도 마당개는 여전히 많은데 이들을 통해 수많은 떠돌이 개, 유기견 등이 발생하고 있다. 오름이들도 그런 마당개들 중 한 마리에서 태어나 새끼들을 키울 수 없는 어떤 이가 그곳에 유기했거나 떠돌이 어미개에게서 태어나 어미를 잃은 경우일 수도 있다. 이럴경우 어미는 포획되거나 사망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런 제주의 상황을 그는 오름이들을 통해 알리며 또, 진도믹스견에 대한 오해도 많이 해소했다. 

거문이. (사진=취향의섬북앤띵즈 SNS)
거문이. (사진=취향의섬북앤띵즈 SNS)
사라. (사진=취향의섬북앤띵즈 SNS)
사라. (사진=취향의섬북앤띵즈 SNS)
용눈이. (사진=취향의섬북앤띵즈 SNS)
용눈이. (사진=취향의섬북앤띵즈 SNS)

우리나라는 유난히 소형견을 선호하는 편이다. 게다가 품종견에 대한 사랑이 대단하다. 그렇기 때문에 펫샵과 한 쌍을 이루는 불법 번식장이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불법 번식장은 개를 생명으로 보지 않는다. 품종견을 출산하는 도구로 다루기 때문에 그 개들은 평생 햇빛 한 번 본적이 없고 흙은커녕 땅바닥조차 밟아본 적 없이 살다가 죽는 경우가 허다하다. 

제주의 마당개들은 그래도 바깥에서 생활하니 앞 사례에 비해 형편이 나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마당개들과 마당개들이 출산한 새끼들은 여름철이 되면 하나, 둘 사라지곤 했다. 제주에는 ‘개소주 팝니다’라는 안내판을 내건 곳들을 그리 멀지 않은 과거까지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개소주가 뭔지 모르지만 무튼 이것은 상당히 인기가 좋았다. 또한, 개고기도. 마당개들은 주인 또는 주민들로부터 학대받기도 쉬운 대상들이었다. 

살아있기에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는 생명체. 그것은 종을 떠나 보편적으로 가져야 하고 지켜져야 할 권리인 것을! 

그의 오름이 육아일지는 인간이 다른 종의 동물을 반려가족으로 맞이해 서로의 성향을 존중하며 살아가는 것에 대한 것이 담겨 있다. 오름이와의 삶에 관한 이야기는 한 대형 플랫폼과 웹툰 연재 계약으로 이어져서 약 7개월가량 연재됐는데 그가 직접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그리고 또한, 이 웹툰 작품을 한데 모아 수필을 더한 책이 최근에 나왔다. 그와 오름이의 사연에 대해 보다 더 알고 싶다면 <당근 밭에서 개를 주웠다, 다섯 마리나! / 이응(‘이응’은 이명옥 책방지기의 필명이다)>를 읽어보길 추천한다. 

명옥씨 부부와 랜선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지내는 오름이들. (사진=당근밭의오름이들 SNS)
명옥씨 부부와 랜선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지내는 오름이들. (사진=당근밭의오름이들 SNS)
지난 제주북페어2023 현장에 응원 온 오름이들. (사진=취향의섬북앤띵즈 SNS)
지난 제주북페어2023 현장에 응원 온 오름이들. (사진=취향의섬북앤띵즈 SNS)

다시 책방 이야기로 돌아가자. 오름이들이 아니었다면 명옥씨는 책방을 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열었다 해도 그 시기가 한창 나중이거나 장소가 제주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오름이들이 있는 한 제주를 떠나지 않을 참이었다. 그렇게 제주에서의 삶을 이어가다 보니 부모님이 이주했고, 자신의 공간이 생겼으며 책방 문 열게 됐다. 

오랜 직장생활과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큰 상처를 받고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온 곳 제주. 

그가 제주를 선택하고 체류 시간을 늘리는 선택을 했기에, 벽화 작업을 비롯한 프리랜서 업무를 시작했기에, 그날 길을 그쪽으로 들었기에, 잘 키워서 입양 보내기로 선택했기에, 그러다 가족이 되기를 선택했기에 그렇게 제주에 정착할 것을 선택했기에 ‘취향의 섬 북앤띵즈’는 한라산이 품어 주는 감귤농원 한 켠에서 사람들과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선택을 하는 그 순간엔 어떤 미래를 불어올지 예상할 수 없다. 단지 자신이 걸어온 삶들이 자신에게 ‘이것이 맞다’라고 가리키는 그곳을 향해 나아갈 뿐. 명옥씨가 선택을 통해 불러 온 미래는 마음 속 깊은 곳에 자신을 향한 굳은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명옥씨 역시 자신의 선택들을 후회하는 순간들이 있었고 때문에 울음을 참고, 인내의 시간을 견뎌야 했던 때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는 하지 않았다. 

이 세상엔 저마다의 취향을 가진 수억 개의 취향의 섬들이 있는 곳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그래서 ‘존중’이 필요하고, ‘배려’해야 하며 때문에 ‘더불어 살아야’한다는 것을 알기에. <3부에서 이어집니다> 

요행

제주의 시골에서도 책방을 볼 수 있는 요즘입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책방은 책방지기의 성향에 따라 여러 장르의 책들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책방에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세상으로 초대받곤 합니다. 책방지기의 사심이 가득한 책방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책방지기의 삶을 바꾼 책 한 권과 책방의 탄생기를 들으면서 우리도 인생 설계의 방향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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