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부터 9일까지 한라체육관에서 열린 '2023 제주북페어' 현장. (사진=요행)
지난 8일부터 9일까지 한라체육관에서 열린 '2023 제주북페어' 현장. (사진=요행)

제주왕벚꽃이 꽃비를 쏟아내고 나니 겹벚꽃이 만개했다. 연둣빛 새순을 틔운 가로수와 짙은 분홍의 겹벚꽃이 복잡한 현실엔 무관심한 듯 생명력을 뽐낸다. 시선을 조금만 올리면 다른 세상이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겹벚꽃은 전혀 필 것 같지 않았고, 가로수의 가지는 앙상했다. 하지만,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변화하며 움직이는 것이라고 계절은 또다시 우리를 일깨운다.  

타고난 물성 자체는 생명력이 없으나 사람을 만나 무한의 생명을 얻는 것이 있으니 바로, 책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 어디서 만나느냐, 언제 만나느냐에 따라서 이것은 숱한 생각을 낳고 사고를 확장한다. 지난 8일과 9일 이틀간 한라체육관에서 열렸던 제주북페어 2023이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이번엔 무려 8300여 명이 찾아 최고 기록을 또 한 번 경신했다. 

지난 8일부터 9일까지 한라체육관에서 열린 '2023 제주북페어'. 다양한 판형의 책을 선보이는 참여팀.  (사진=요행)
지난 8일부터 9일까지 한라체육관에서 열린 '2023 제주북페어'. 다양한 판형의 책을 선보이는 참여팀.  (사진=요행)

참가팀에겐 동일한 규격의 테이블과 공간이 주어졌는데 서로 전혀 다른 우주를 펼쳐 보였다. 요새 출판계를 휩쓰는(?) 동물은 ‘고양이’인 듯 하다. 고양이에 관한 책이 꽤 됐다. 나의 시선을 끈 것은 고양이 전문잡지인 ‘매거진 탁’이었다. 이 부스 한 켠에 ‘마라도 고양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마라도 고양이의 입양, 임보를 위한 홍보물이 준비돼 있었다. 

올 초, 제주도는 ‘마라도 고양이’ 문제로 떠들썩했다. 제주뿐 아니라 전국의 동물권 단체와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며 전국 이슈로 급부상했다. 언론을 통해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마라도에 고양이가 들어온 건 지난 2009년이다. 쥐잡이용으로 마라도 주민이 섬에 고양이를 들였는데 당시는 동물의 중성화 수술이란 개념이 자리 잡지 않았던 때여서 급기야 수가 120여 마리로 불었다. 그러다 2021년에 동물단체들이 마라도 고양이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TNR을 실시하면서 수가 차츰 줄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고양이들이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뿔쇠오리에 해를 가하는 동물로 낙인찍히면서 터졌다. 뿔쇠오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천적인 고양이를 없애야 한다는 입장과 영역동물이라서 나고 자란 곳에서 평생을 사는 고양이의 생명권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끝내 마라도 고양이는 고향을 떠나게 됐다.

반출된 고양이들은 제주세계자연유산본부 뒤편에 마련된 보호공간에 머물고 있다. 총 40여 마리다. 마라도에서 제주 본섬으로 이주한 고양이들은 며칠간 식음을 전폐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음식을 거부하며 텅 빈 눈으로 허공을 바라볼 뿐이었다고. 그랬던 고양이들은 돌봄 활동가들의 살핌 덕분인지 차츰 마음을 열면서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더러는 순치 과정을 거쳐 입양, 임시보호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8일부터 9일까지 한라체육관에서 열린 '2023 제주북페어' 현장. 12시간 만에 인쇄까지 완료된 마라도 고양이 홍보 리플릿. (사진=요행)
지난 8일부터 9일까지 한라체육관에서 열린 '2023 제주북페어' 현장. 12시간 만에 인쇄까지 완료된 마라도 고양이 홍보 리플릿. (사진=요행)
지난 8일부터 9일까지 한라체육관에서 열린 '2023 제주북페어'에 참여한 매거진 '탁!!' 대표 포도(오른쪽)와 객원편집장 무무. (사진=요행)
지난 8일부터 9일까지 한라체육관에서 열린 '2023 제주북페어'에 참여한 매거진 '탁!!' 대표 포도(오른쪽)와 객원편집장 무무. (사진=요행)

한 줄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이 일을 ‘매거진 탁’ 편집인들은 명함크기의 리플릿에 담아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었다. 우리나라 남쪽 끝 섬의 일에, 그것도 생명권 피라미드에서 낮은 단계에 속해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인 길고양이를 위해 발 벗고 나선 마음이 따듯했다. 12시간 만에 리플릿을 완성해 북페어에 챙겨왔다는 말에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가 동물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자세는 결국 인간에 대한 마음가짐과 자세다. 앞으로 동물권과 관련된 문제가 계속해서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마라도 고양이 반출 사건에 대한 잘잘못을 따지려는 게 아니다.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 보고 해법을 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말하고 싶다. 

서로가 다르기에 ‘존중’은 더욱 설득력을 얻는 것이지만 인간 사회는 꽤 오랫동안 ‘존중’이 부재했다. 75년 전 제주에 피바람을 몰고 온 제주4·3 또한 존중의 부재가 낳은 비극이다. 제주북페어 2023에는 주최측인 제주시탐라도서관이 몇 개의 부스를 운영했는데 그중 하나가 ‘제주4·3자료 큐레이션’이다.

4·3을 소재로 한 책, 관련 소책자 등이 마련되고 한켠엔 ‘제주4·3에 관한 질문부터 느슨한 질문까지’란 이름으로 누구나 질문하고 누구나 답변해 주는 코너가 있었다. 제주4·3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과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지난 8일부터 9일까지 한라체육관에서 열린 '2023 제주북페어'에는 배리어프리 부스도 마련됐다.  (사진=요행)
지난 8일부터 9일까지 한라체육관에서 열린 '2023 제주북페어'에는 배리어프리 부스도 마련됐다.  (사진=요행)

역시 제주시탐라도서관이 운영한 ’배리어 프리(Barrie-free)‘ 공간에도 사람들이 많이 머물렀다. 배리어 프리는 건축한 분야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용어다. 1974년 국제연합 장애인생활환경전문회의에서 ’장벽 없는 건축 설계(barrier free design)‘에 관한 보고서가 나온 것이 시초다. 2000년 이후에는 건축, 도로, 공공시설뿐 아니라 각종 차별과 편견, 장애인이나 노인에 대한 사회가 가지는 마음의 벽까지 허물자는 운동의 의미로 확대되고 있다고. 이 부스에선 정보접근권의 장벽을 허무는 도서와 도구 등을 소개했다. 

누구도 ’존중‘을 입 밖에 내보이지 않았지만 제주북페어 2023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그것이었다. 공정무역상품을 선보였던 책방지기, 환경 이슈에 대한 창작물을 소개하던 제작사, 판형의 다양성을 알려준 창작자, 하늘과 바다와 정글을 탐색한 창작물과 사람과 동물, 식물에 대한 이야기,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도전이 가득한 일상까지. 제주북페어는 다양하기에 존중받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물론 그 중심엔 책이 있다. 

지난 8일부터 9일까지 한라체육관에서 열린 '2023 제주북페어' 참여팀. (사진=요행)
지난 8일부터 9일까지 한라체육관에서 열린 '2023 제주북페어' 참여팀. (사진=요행)

책이란 무엇인가. 살아있어서 다양하고 다채로운 그 모든 것들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담아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니 이것을 어찌 무생물이라고 하겠는가. 살아 숨 쉬는 책을 만드는 창작자와 제작자, 출판사가 있어 다행이다. 그것을 판매하는 책방이 있어 다행이다. 

규모에 탁! 다양함에 탁! 그 모든 살아 있는 것의 향연에 탁! 무릎이 참 여러번 겪었지만 그만큼 새로운 것을 깨달아 기뻤고, 그래서 다음이 기약되는 제주북페어 2023이었다. 

 

요행

제주의 시골에서도 책방을 볼 수 있는 요즘입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책방은 책방지기의 성향에 따라 여러 장르의 책들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책방에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세상으로 초대받곤 합니다. 책방지기의 사심이 가득한 책방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책방지기의 삶을 바꾼 책 한 권과 책방의 탄생기를 들으면서 우리도 인생 설계의 방향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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