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보목리 소재 책방 백주산보. (사진=요행)
서귀포시 보목리 소재 책방 백주산보. (사진=요행)

진숙씨에게 사진 찍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어봤다. 

“짐 자무쉬 감독의 ‘패터슨’이라는 영화가 있어요. 미국 뉴저지의 소도시인 패터슨에 사는 ‘패터슨’이라는 버스 운전사에 관한 영화인데요. 패터슨의 일상은 단조로워요. 출근하고 퇴근하고, 아내와 저녁을 먹고 반려견을 산책시키면서 동네 바에 들러 맥주를 한 잔 마시면서 하루를 마무리하죠. 그런 패터슨에게 한 가지 특별한 점은 매일 시를 쓴다는 거예요.

단조로운 삶에서 의미를 가지는 한 가지죠. 반복되는 삶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이를 더 가치 있고 풍요롭게 해 주는 것이 패터슨에겐 시를 쓰는 행위고 저는 사진을 찍는 것 같아요. 사진은 나를 표현하는 창조적인 일이에요. 사진으로 전 제 감정을 기록하기도 하고요, 생활을 기록하기도 하고요, 이웃과 풍경을 담아두기도 해요. 사진을 찍으면 찍을수록 결국 내 삶을 기록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사진에서 보여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발견하는 일은 참 짜릿하다. 발견한다는 것은 경험을 했거나 하게 될 것임을 의미하고 경험을 통해 사람은 성장하니 나를 알아간다는 것은 무한의 가능성을 계속해서 연결하는 일이다. 

사진과 함께 진숙씨가 자신을 알아가고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가 영화다. 막내딸이 중학생이 되는 무렵 진숙씨는 영화 모임에 가입했다. 한 달에 한 번 회원들이 모여서 영화 한 편을 보고 소감을 나눴다. 책도 그렇지만 영화 또한 그것에 몰두하는 순간, 몸은 현실에 있지만 정신은 세계 곳곳을 여행한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며 색다른 환경을 마주한다. 

서귀포시 보목리 소재 책방 백주산보에서는 사진과 영화 관련 도서도 다룬다. (사진=요행)
서귀포시 보목리 소재 책방 백주산보에서는 사진과 영화 관련 도서도 다룬다. (사진=요행)

그렇게 영화와 사진은 진숙씨 삶의 일부가 됐고, 지금의 그로 이끌었다. 제주에 와서 아쉬웠던 부분은 그런 것이었다. 함께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을 찾았지만 찾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책방에서 무료 영화 상영회를 열기로 했다. 매주 토요일 저녁 7시, 문화공간 한 벽면이 스크린이 돼 주었다. 

2019년부터 시작한 토요 영화 상영회는 코로나19로 문을 닫아야 하는 일도 있었지만 어느덧 40여 편의 영화를 많은 사람들과 함께 봤다. 주민도 있었고 관광객도 있었고 도내 다른 마을에서 찾아온 이들과 같은 영화를 보고 서로의 생각을 나눴다. 

하루는 눈발이 매섭게 치는 토요일이었다. 과연 영화 상영회에 사람이 올까 싶었는데 한 부부가 찾아왔다. 진숙씨 부부와 손님 부부 이렇게 넷이서 영화를 봤다. 그 부부는 ‘서울은 이런 모임 기회가 많아서 귀찮아서 못 가는 편인데 제주는 모임 기회가 없어서 가고 싶어도 못 가요. 그런데 이곳(백주산보)이 있어서 매주 활력이 생겼어요. 토요일 저녁이면 갈 곳이 있고 이야기 나누고 생각을 공유할 수 있어요. 귀한 장소와 시간을 만들어줘서 고마워요.’ 란 응원을 해주었다고. 

이 응원은 토요영화상영회를 지속할 것인가에 대한 진숙씨의 고민을 말끔히 해소해 주었다. 또, 진숙씨는 스스로에게 대해 한 가지를 더 깨닫게 됐다. 가진 것을 나누는 일을 좋아한다는 걸 말이다. 영화 상영회를 시작한 것은 진숙씨와 같은 갈증이 있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바람은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있고 있다. 

서귀포시 보목리 소재 책방 백주산보에서는 영화 포스터도 판매한다. (사진=요행)
서귀포시 보목리 소재 책방 백주산보에서는 영화 포스터도 판매한다. (사진=요행)

쿠엔틴 타란티노, 왕가위, 데이비드 린치, 루이스 부뉴엘 등 진숙씨는 개성 깅한 감독들의 영화를 선호하는데 지금까지는 주로 남편과 진숙씨가 선정한 영화를 공유했다. 올해부터는 상영회 참석자들에게 영화를 추천 받아서 영화를 선정하고 있다. 상영 영화의 주제가 더욱 풍성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영화를 보고 사진을 보다가 관련 내용이 궁금하면 책방 서가에서 책을 구입해서 볼 수 있다. 책과 사진과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책방 백주산보는 독보적인 특성이 있다.  

진숙씨가 쉰이 넘어 제주 이주를 실행하고 책방을 운영하는 것은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의 일이다. 이 공간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면서 진숙씨는 계속해서 자신을 찾아가고 있다. 진숙씨가 만든 산책로에서 여러분도 각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탐색해 보는 것도 좋겠다.

 

※ 책방 백주산보는 서귀포시 칠십리로 406에 있어요.

로스터리 카페이면서 갤러리이자 책방이에요. 

수~토 11시 30분부터 저녁 6시까지 운영하고요.

일요일엔 11시 30분에 문을 열고 오후 4시에 닫아요.

토요일엔 저녁 7시에 영화 상영회를 가져요. 

전시 및 행사 대관도 합니다. 

책방지기의 추천 책

#. 걸어도 걸어도 /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공기인형>, <바닷마을 다이어리>, <태풍이 지나가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자화상을 담은 소설로 지난 2008년 동명의 영화로 먼저 소개되었다. 15년 전 세상을 떠난 장남의 기일을 맞아 온 가족이 모인 하루를 담고 있다. 가족의 의미에 대해 환기하는 이 영화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아르헨티나 마르델플라타 영화제 최고 작품상(2008), 일본 블루리본 감독상(2008), 아시안필름어워드 최우수 감독상(2009)을 수상했다. 

#. 사진과 책 – 한 사진가와 살아온 14권의 사진책들 / 박태희 

사진가이자 작가인 저자가 엄선한 사진책 14권을 소개한다. 각 사진집에 실린 작품 해설과 함께 사진 본질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담고 있다. 사진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책이다. 

“한 장의 사진이 125분의 1초라는 찰나에 찍혀질 때, 그 짧은 시간에는 사진가가 살아오며 지녀온 감정과 생각, 본능과 호흡이 모두 담겨 있다. 그 사진들로 이루어진 책이라니, 생각만으로도 가슴 떨리지 않은가.”     - 들어가는 말 中

보스토크 프레스 36호. (사진=보스토크)
보스토크 프레스 36호. (사진=보스토크)

#. 보스토크 프레스 36호_Birdsong : The Song of Many Birds  

2016년 11월 창간한 사진 잡지 <보스토크 프레스>의 36번째 시리즈로 새의 일생을 바라보는 사진가들의 다양한 시선을 담고 있다. 새의 아름다움을 관찰하는 눈길, 새와 인간 사이의 교감을 응시하는 시선, 애완용 새의 생산·유통 구조를 탐색하는 관점까지 사진으로 풍부하게 탐조할 수 있다. 

 

요행

제주의 시골에서도 책방을 볼 수 있는 요즘입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책방은 책방지기의 성향에 따라 여러 장르의 책들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책방에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세상으로 초대받곤 합니다. 책방지기의 사심이 가득한 책방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책방지기의 삶을 바꾼 책 한 권과 책방의 탄생기를 들으면서 우리도 인생 설계의 방향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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