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호근동 소재 책방 '취향의 섬 북앤띵즈'. 책방 진입로에 심어진 야자수 나무가 인상적이다. (사진=요행)
서귀포시 호근동 소재 책방 '취향의 섬 북앤띵즈'. 책방 진입로에 심어진 야자수 나무가 인상적이다. (사진=요행)

어느덧 ‘취향의 섬 북앤띵즈’가 문을 연 지 1년 6개월이 지났다. 18개월의 시간 동안 많은 분들이 이곳을 찾았다. 책방 근처에 서귀포여자고등학교가 있다. 교복을 입고 책방을 찾은 여고생들이 기억에 남는다. 책을 사려고 동네의 작은 책방을 찾아온 소녀들의 마음을 가늠해 보니 ‘청량감’, ‘수줍음’, ‘설레임’ 등의 단어가 몽실몽실 가슴에 떠오른다. 덕분에 지금도 그날을 떠올리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잊지 못할 손님은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던 겨울에 찾아왔다. 책방지기는 그날 눈보라가 너무 심해 책방 문을 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혼자서 지키다 가겠구나'라며 단념하고 있었다. 이미 시간은 오후 2시를 넘긴 터. 그런데, 눈사람이 책방으로 걸어 들어왔다. 

머리며 어깨며, 신발에 하얀 눈이 도톰하게 쌓여 있던 그는 여행객이었다. 숙소에서 가까운 책방을 검색하니 이곳이 나왔다고 했다. 무려 2km를 걸어왔다고. 오는 동안 ‘책방이 혹시나 문을 닫았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문이 열려 있어서 ‘횡재했다’는 말까지 곁들였다.

서귀포시 호근동 소재 책방 '취향의 섬 북앤띵즈'. 이명옥 책방지기가 디자인한 책들이 진열돼 있다. (사진=요행)
서귀포시 호근동 소재 책방 '취향의 섬 북앤띵즈'. 이명옥 책방지기가 디자인한 책들이 진열돼 있다. (사진=요행)

제주의 동네 책방은 어느 날은 손님이 많아 화장실 갈 틈이 없다가 또 어느 때는 손님이 아예 없는 날들이 며칠 이어지기도 한다. 책에 흠집을 내고도 책을 구입 하지 않거나 사진을 잔뜩 찍고 인생샷만 챙기고 떠나는 손님들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방이 존재하는 이유는 추운 겨울, 그것도 거센 눈보라가 이는 날 2km를 자박자박 걸어서 오는 그 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한여름의 열기에 질식할 것 같아도 사람은 책을 읽고, 살랑이는 봄바람에 마음이 울렁여도 사람은 책을 읽는다. 쓸쓸한 가을바람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날에도, 앞에 소개한 것처럼 눈이 펑펑 날리는 와중에도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든다. 

서귀포시 호근동 소재 책방 '취향의 섬 북앤띵즈'. 사진 촬영은 구매 후에만 가능하다.  (사진=취향의섬 북앤띵즈 SNS)
서귀포시 호근동 소재 책방 '취향의 섬 북앤띵즈'. 사진 촬영은 구매 후에만 가능하다.  (사진=취향의섬 북앤띵즈 SNS)

그 사람들이 찾아올 것을 알기에 책방은 좋은 책을 엄선해 정해진 날, 정해진 시간에 꼭 문을 열고야 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책방지기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들은 의외로 많다. 이명옥 책방지기의 경우 ‘새 책’에 관한 것이다. 사려 깊은 말에 깊이 공감하며 그의 말을 옮겨 본다. 

“책에 남은 여행의 흔적들을 이해해 주세요. '이거 새 책 없어요?'라고 물어보시는 손님들이 종종 계십니다. ‘견본’이라고 써진 둥근 딱지가 없는 책이라면 모두 판매용 새 책입니다. 조금의 흠집이나 긁힘, 찍힘 등은 책이 이 멀고 먼 섬, 그중에서 남쪽 동네의 책방까지 오는 길에 생겨난 길고 긴 여행의 흔적입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아오며 몸과 마음 여기저기에 상처와 흔적이 남죠. 하지만 우리 자신이 그 자체로서 가치 있습니다. 책도 마찬가지죠.

상처가 심한 책은 총판에 반품 요청을 하는데요. 그렇지 않은 책은 받아들이고 판매용을 둡니다. 거부당한 책은 다시 돌아가더라도 버림받고 다시 버림받다 결국엔 쓰레기가 될 테니까요.

책의 겉모습보다 책의 마음을 사랑해 주세요. 전자책이 주는 편리함보다 종이책의 낭만을 선택한 분이라면, 그래서 이곳 작은 책방에까지 귀한 발걸음을 해주신 분이라면, 이 책들을 만들어내느라 제 몸을 베어냈을 나무의 마음까지도 생각해주실 수 있겠지요?"

서귀포시 호근동 소재 책방 '취향의 섬 북앤띵즈'. 공정무역상품과 수공예품들도 판매한다. (사진=요행)
서귀포시 호근동 소재 책방 '취향의 섬 북앤띵즈'. 공정무역상품과 수공예품들도 판매한다. (사진=요행)

이명옥 책방지기는 하루가 무척 바쁘다. 책방에 어떤 책을 가져올지 고민하고, 새로 부른 책들을 정리하고 디자인 업무를 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오름이들과 산책을 한다. 그는 하루도 허투루 쓰지 않는 사람이다. 스스로를 재미를 쫓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그는 많은 것에서 재미를 발견하는 특별한 마음을 가졌다. 

그가 재밌어하는 것들로 가득한 이 공간엔 당신의 취향과 결이 맞는 것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바람이 불면 저항 없이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가볍게. 돌을 던지면 오히려 더 큰 원을 그리며 충격을 흡수하는 물처럼 여유롭게. 취향의 섬에 스미기를. 

 

※취향의 섬 북앤띵즈는 서귀포시 속골로 66-7, 1층에 있어요.

오전 10시에 문을 열어 오후 5시에 닫아요.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은 휴무입니다. 

책방지기의 추천 책

이명옥 책방지기는 2권의 책을 추천했다. 그의 SNS에 책 추천글이 있어 그대로 옮긴다. 

황수영 산문집 '아무 목이나 끌어안고 울고 싶을 때'. 
황수영 산문집 '아무 목이나 끌어안고 울고 싶을 때'. 

#. 아무 목이나 끌어안고 울고 싶을 때 / 황수영 

“어떤 책은 읽다가 자꾸만 창밖으로 눈을 돌리고 싶어져요. 방금 읽은 문장을 천천히 오래도록 곱씹어보고 싶어서요. 또 어떤 책은 앞에 조금 읽다가 그만 덮고 책장에 꽂아두고 싶어져요. 좀만 아껴두었다가 나 혼자 어디 멀리 여행길에 올랐을 때 낯선 침대 위에서, 혹은 낯선 언어가 들리는 곳에서 아껴가며 읽고 싶어져요. 

이 책이 그랬어요. 작고 가벼운 책인데 담고 있는 글의 무게는 제법 묵직하고, 어딘지 모르게 꾹꾹 힘주어 눌러 쓴 손맛이 느껴지는 문장들, 거기에 예쁘장한 만듦새까지 갖춰 소장 욕구에 불을 지피는, 바로 그런 책이랍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무라카미 하루키 

“책방지기의 ‘인생책’중 하나를 소개합니다. 밑줄 그은 부분이 너무 많아요.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이 평생 해온 달리기에 관해 쓴 책이지만 이 책은 분명 달리기에 관해서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지요. 

이 책을 펼쳐 들 때마다 사랑하는 일들을 생각하며, 그러나 그 일이 나를 좀먹지 않도록 현명하게 사랑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돼요. 삶의 모든 중요한 과업(?)에 비춰볼 만한 이야기들, ‘달리기’를 ‘삶’으로 바꿔 읽어도 보아요. 그 둘은 너무도 닮아있어요! 괜히 인생은 마라톤이니 하는 얘기가 있는 게 아닌가 봐요. 

한편으로는, 달리기를 하며 만난 풍경들이 하루키만의 간결하고도 섬세한 언어로 담겨 있어 마치 내가 어떤 풍경 안에서 힘차게 달리고 있는 듯한 생생한 언어로 담겨 있어 마치 내가 어떤 풍경 안에서 힘차게 달리고 있는 듯한 생생한 느낌도 전해져 와요. 하지만 무지하게 뜨거운 이 여름, 태양 아래 달리는 건 도저히 무리죠. 시원한 실내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켜며 이 책을 읽으시면 만족도가 더 높을 것을 장담합니다.” 

 

요행

제주의 시골에서도 책방을 볼 수 있는 요즘입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책방은 책방지기의 성향에 따라 여러 장르의 책들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책방에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세상으로 초대받곤 합니다. 책방지기의 사심이 가득한 책방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책방지기의 삶을 바꾼 책 한 권과 책방의 탄생기를 들으면서 우리도 인생 설계의 방향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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