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8일부터 9일까지 한라체육관에서 열리는 '제2회 제주북페어' 포스터.  (사진=제주시탐라도서관 제공)
오는 8일부터 9일까지 한라체육관에서 열리는 '제3회 제주북페어' 포스터.  (사진=제주시탐라도서관 제공)

오랜만이다. 오랫동안 바라왔던 비가 촉촉하게 전국을 적시고 있다. 이 귀한 단비는 전국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산불을 껐고, 제한급수 중이던 남부지역의 가뭄을 해결했다. 다만,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제주와 뭍을 오가는 항공편이 무더기로 결항되고 있다. 

기상 악화는 인간이 막을 수 없기에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갑자기 발이 묶인 입장에선 유쾌한 일이 아니다. 제주에선 모든 도민의 발이 묶이고 자유가 억압받던 때가 있었다. 기상 탓이 아니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그랬다. 너무나 가혹했던 시간들. ‘제주4·3’으로 정의되는 7년 7개월의 시간은 물론이고 그 후로도 긴 세월 제주도민들은 벙어리 냉가슴을 앓아야 했다.

차가운 심연의 바다에 있던 제주4·3은 한 권의 책을 통해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 유명한 현기영 작가의 <순이삼촌>이다. 책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불온서적으로 한때 자취를 감췄지만, 전국에 불던 민주화 열풍에 힘입어 다시금 세상에 드러났다. 이후 제주4·3의 진실을 추적하는 기폭제가 됐다. 

책은 시대의 증언이자 역사의 줄기다. 또한, 미래를 보여주는 특수거울이다. 

그런데 만약 현기영 작가가 <순이삼촌>을 쓰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작가가 책을 썼지만 출판사가 이 책을 출간하지 않았다면, 또는 서점에서 이 책을 판매하지 않았다면, 혹은 사람들이 이 책을 구입하지 않았다면? 제주4·3의 진실 찾기는 지금보다 훨씬 후퇴됐을지 모를 일이다. 

어떤 책을 만들고(제작자와 출판사), 어떤 책을 판매할 것인가(책방), 어떤 책을 살 것인가(독자)는 하나의 유기체로 기능한다. 이들 중 어느 하나가 빠지면 책이 발현해 낼 수 있는 가치의 폭이 제한된다. 그러니, 책이 가치를 제대로 발현할 수 있도록 이 유기체가 힘을 받아야 한다.

때마침, 제작자와 출판사, 책방, 독자가 한 자리에서 만나는 축제가 이번 주말 열린다. 하여, 4월 첫째주와 둘째주 <책방의 탄생>에서는 이 축제 소식을 전한다. 

이 축제의 이름은 ‘2023 제주북페어 – 책 운동회’. 오는 8일과 9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제주시 오라일동 소재 한라체육관에서 진행된다. 독립출판물 제작자와 소규모 출판사, 독립책방 등 총 200여 팀이 참가하며, 제주시탐라도서관이 주최·주관한다. 

아래는 이 축제를 기획한 정선주 제주시탐라도서관 주무관과의 일문일답.

지난해 열린 '제2회 제주북페어' 현장. (사진=제주시탐라도서관 제공)
지난해 열린 '제2회 제주북페어' 현장. (사진=제주시탐라도서관 제공)

- 제주북페어는 어떤 배경에서 탄생했나요?

"2019년 당시 제주에는 ‘동네책방’이 많이 생겨나고 있었어요. 제주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제주의 동네책방을 찾아 여행하는 ‘책방 여행’이 유행일 정도였죠. 동네책방이 많아지면서 자연히 독립출판물을 유통하는 독립책방도 늘어났고, 독립책방에 책을 입고하는 제작자들의 활동도 활발해졌습니다.

그때, 서울 스토리지북앤필름 강영규 대표님이 우연히 제주에 오셨다가 ‘북페어’ 제안을 해주셨어요. 제주의 인프라가 이렇게 좋으니 ‘제주북페어’를 열어도 정말 좋겠다고요. 마침 도서관에서도 2018년도부터 독립출판물을 비치하고 있었고, 관련 사업도 진행해오던 터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제주에서 오랜 시간 독립책방을 운영해오던 책방 서점원님들의 도움을 더해, <제주북페어2019 책운동회>는 그렇게 시작하게 됐습니다."

- 참가팀의 참여 요건은 어떻게 되나요?

"참여 요건은 ‘책’을 주제로 한 종이매체 기반의 콘텐츠 제작자를 바탕으로 독립출판물 제작자, 소규모 출판사, 독립서점입니다. 보다 ‘책’이라는 매체에 집중할 수 있는 북페어가 되길 바랐습니다."

지난해 열린 '제2회 제주북페어' 현장.  (사진=제주시탐라도서관 제공)
지난해 열린 '제2회 제주북페어' 현장.  (사진=제주시탐라도서관 제공)

- 제주지역에 거주하는 분들만 부스를 운영할 수 있는 건 아니죠?

"네, 전국의 독립출판물 제작자, 소규모 출판사, 독립서점 200팀이 참여하는 북페어입니다. 올해는 제주 지역의 비율이 29%, 서울 43.6%, 그 외 지역 27.4%로, 오히려 육지 참가팀의 비율이 높았습니다."

- 축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도서관은 시민에게 현재 출판문학 흐름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역할이 있는데요. 책을 매개로 개인의 다양성을 표현하고 즐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면서 궁극적으로 제주지역의 독서문화를 확산하기 위해서 행사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 이 축제에선 프로그램 등 무엇을 체험할 수 있나요? 

"기본적으로 제주북페어에서는 200여 팀이 엄선한 책들을 만날 수 있어요. 주제, 판형, 장르로부터 자유로운, 다양하고 진귀한 책을 만날 수 있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이외에 체험 프로그램을 별도로 운영하는데요. 어린이 관람객이 많은 편이어서 어린이들이 머무르며 책도 보며 쉴 수 있는 공간이 있고요. 탐라도서관에서 운영했던 독립출판물 제작 프로그램에 참여한 수강생들의 작품 전시, 독립출판물 관련 세미나 등이 진행됩니다. 무엇보다 4월은 제주4·3추념일이 있는 달이어서요. 4·3주제의 자료도 전시하고 있어요."

지난해 열린 '제2회 제주북페어' 현장. (사진=제주시탐라도서관 제공)
지난해 열린 '제2회 제주북페어' 현장. (사진=제주시탐라도서관 제공)

- 올해 주제가 있나요?

"작년까지는 큰 주제가 모두 참여하는 책운동회 정도였다면, 올해부터 세부 섹션 ‘신작, 친환경, 배리어프리’를 마련했어요. 추진단 회의 중에 제주북페어만의 정체성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어요. 관련해서 참가팀들과 관람객이 한 번 더 생각하고, 좀 더 눈여겨볼 수 있는 섹션을 꾸려보게 되었습니다.

먼저 제주북페어에서 발표하는 신작을 환영하는 의미로 ①신작을 선정했구요. 제주북페어는 첫 회부터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행사를 위해 여러 시도를 해왔는데요, 제주라는 지역 특색과도 연결되는 ②친환경으로 선정했습니다. 마지막으로 ③배리어프리인데요. 제주북페어에 참여하는 참가팀, 방문하는 관람객 모두 누구도 배제되거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행사를 즐길 수 있는 환경과 콘텐츠를 제공하자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 친환경 축제라면, 축제에 참여할 때 지켜야 할 수칙이 있다죠? 

"제주북페어는 2019년도부터 쓰레기 없는 행사를 개최해보자는 바람이 있었어요. 그래서 일회용 비닐봉투 대신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했죠. 처음엔 생분해봉투, 작년부터는 집에서 잠자는 에코백을 순환하자는 이벤트를 하고 있어요. 배경이나 목적은 하나예요. ‘쓰레기 없는 행사’를 만들어보자.

며칠 열리고 끝나는 축제성 행사에는 많은 인파가 오고 간 만큼 다량의 쓰레기가 발생하는데, 거의 대부분이 일회용품이거든요. 일회용품 반입을 제한하고, 재사용할 수 있는 물품으로만 활용한다면 행사에는 자연히 쓰레기가 나오지 않겠죠. 이런 경험을 한 관람객들은 다른 행사장에도 비슷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주의 모든 축제가 쓰레기 없는 행사가 되길 바라봅니다."

오는 8일부터 9일까지 한라체육관에서 열리는 '제3회 제주북페어'. (사진=제주시탐라도서관 제공)
오는 8일부터 9일까지 한라체육관에서 열리는 '제3회 제주북페어'. (사진=제주시탐라도서관 제공)

- 축제 참가자들이 무엇을 얻었으면 좋겠나요?

"전국에서 제주로 모인 참가팀들은 서로와 서로의 작품에 대해 많이 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요. 페어를 통해 서점에서는 새로운 작품을 만나 입고할 수 있고, 제작자는 출판사와 프로젝트를 기획하거나 서점에 작품을 유통할 수도 있죠. 이런 네트워크가 형성될 수 있는 자리가 되면 좋겠어요.

페어에 참가하는 관람객들은 조금 생소한 판형의 책들을 살피시면서 즐거우셨으면 좋겠어요. 달랑 종이 몇 장도 책이 될 수 있는 독립출판물이라는 매력을 느끼고, 책이라는 매체에 좀 더 관대해지고 가까워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제주북페어를 가장 즐겁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제주북페어의 모든 책을 존중하는 열린 마음 하나면 충분히 즐거울 것 같습니다. 제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 <제주북페어2023 책운동회>입니다. 모두들 ‘나만의 책’을 찾아내겠다는 마음과 책을 담아갈 가방을 함께 챙겨와 주세요. 꼭 인생 책을 만나실 거예요!"

오는 8일부터 9일까지 한라체육관에서 열리는 '제2회 제주북페어'. (사진=제주시탐라도서관 제공)
오는 8일부터 9일까지 한라체육관에서 열리는 '제3회 제주북페어'. (사진=제주시탐라도서관 제공)

제1회 제주 북페어는 5000여 명의 참가자들이 방문했다. 2년이 지나 열린 제2회 축제에선 6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찾으면서 축제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줬다. 참가팀들의 참여 열기도 뜨겁다. 매해 수용 가능한 팀이 200팀 정도인데 올해는 400팀 넘게 참가 의사를 밝혀서 이중 엄선된 팀들이 한라체육관에 모인다. 이들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책들을 잔뜩 챙기고 독자들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시대를 증언하고 역사의 줄기를 곧추 세우며 또한 미래를 보여주는 특수 거울인 책. 여러분의 미래를 밝혀 줄 책을 이 현장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2부에서 이어집니다.> 

※ 제주북페어 2023 참여 안내사항

1) 책을 담아갈 가방, 에코백 지참 필수

2) 일회용 물병, 테이크아웃 잔은 반입 제한

3) 텀블러 지참시 커피 무료 나눔

4) 책 10종 구입시 업사이클링 가방 배부(소진시까지) 

 

요행

제주의 시골에서도 책방을 볼 수 있는 요즘입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책방은 책방지기의 성향에 따라 여러 장르의 책들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책방에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세상으로 초대받곤 합니다. 책방지기의 사심이 가득한 책방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책방지기의 삶을 바꾼 책 한 권과 책방의 탄생기를 들으면서 우리도 인생 설계의 방향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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