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위치한 '카페 책자국'. (사진=요행)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위치한 '카페 책자국'. (사진=요행)

칼럼을 쓰면서 나에겐 ‘우연한’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나고 있다. 이곳을 방문하기 2주 전, ‘어서오세요, 책 읽는 가게입니다’란 책을 도서관에서 만났다. 제목을 보고 호기심이 일어 읽어봤다.

일본 도쿄에는 ‘후즈쿠에(fuzkue)’라는 가게가 있다. 오로지 책 읽는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을 조성해 놓은 곳이다. 저자인 아크쓰 다카시가 이 가게를 만들었다. 특히 책에는 가게 이용 방법이 12페이지에 걸쳐서 아주 자세히 소개돼 있다. 입장료에 따라 달라지는 체류 시간, 독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이용자가 지켜야 할 수칙 등이다. 12페이지에 달하는 이용방법을 정독해 지킬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이 가게는 2호점까지 내며 가게 철학을 유지하고 있다. 

‘책’을 어떻게 대하고 ‘책 읽는 문화’를 어떻게 조성해야 할까. 이 카페는 좋은 예시를 제공한다. 누구나 한번쯤 독서를 위해 북카페를 찾았다가 귀를 파고드는 주변의 소음과 책 읽기에 적합하지 않은 조명 등에 결국 음료만 마시다 나온 경험이 있을 것이다. 또, 느긋하게 책을 고를 수 있을거란 기대를 안고 책방을 찾았다가 그러지 못한 분위기에 당황했던 경험도 있을 것이다. 북카페와 책방이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할 때의 안타까움. 그것은 운영진에게도 손님에게도 결코 긍정의 신호가 아니다.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위치한 '카페 책자국' 내 필사 공간. (사진=요행)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위치한 '카페 책자국' 내 필사 공간. (사진=요행)

책방 카페 책자국도 이용방법이 있다. 음료를 주문한 경우에만 테이블 착석이 가능하다. 책을 사서 읽으려면 음료나 음식을 주문해야 한다는 뜻이다. 음료 1잔에 따른 체류 시간은 2시간. 2시간이 지나면 음료나 음식을 추가로 주문해야 한다. 한정된 공간에서 책방지기와 손님이 최적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이용 방법을 정해 뒀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은 음악과 바람소리, 새 소리가 공간을 차지한다. 

인위적인 소음이 적어서 자신의 일에 집중할 수 있다. 누군가는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하고, 누군가는 필사를 한다. 또, 누군가는 방명록을 채운다. 빈틈없이 꽉 채워진 필사노트는 15권이 넘었고, 방명록은 20여 권에 달한다. 제한된 체류 시간이 오히려 단단히 채워져 있던 사람들의 마음의 빗장을 여는 열쇠가 된 것일까? 

방명록을 펼쳐 보았다. 누가 볼지 모르는 그 노트엔 귀한 마음들과 애절한 사연, 안타까움과 고마움 등이 빼곡하게 정리돼 있었다. 마음의 언어를 정화하고 다듬어 혼을 싣는 작가들의 책들로 가득한 공간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진심을 마주하게 하는 힘이 있나 보다.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위치한 '카페 책자국' 방명록. (사진=요행)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위치한 '카페 책자국' 방명록. (사진=요행)

이 책방의 방명록은 꽤나 유명하다. 자신이 쓴 방명록을 확인하러 다시 찾거나 책을 둘러보다가 방명록만 읽다가 돌아간 사람도 있다. 이 책방의 방명록이 유명해진 데에는 특별한 이벤트 덕분도 있다. 

어느 날, 책방지기 부부는 한 글자, 한 글자 소중한 마음을 꾹꾹 눌러 쓰고 간 이들에게 답장을 써보기로 했다. 누가 남긴 방명록인지 모르기에 우선 답장을 받을 이들을 신청받았다. 그리고, 일주일에 하나씩 방명록 속 사연을 골라 그 사연에 관한 답장을 써서 보냈다. 놀랍게도 그 답장에 또 다시 답장이 돌아왔다. ‘책자국 편지’라는 이벤트로 2020년 4월에 시작해 1년간 이어졌다. 

책방이 없었다면, 아니 책방이 있어도 방명록이 없었다면, 아니 방명록이 있어도 거기에 글을 쓰는 사람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 책을 매개로 책방을 오간 이름 모를 숱한 인연들의 진심 어린 글은 그것을 매개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또 하나의 인연을 맺게 해 줬다. 방명록에 남긴 자국 하나가 조용하고 부드럽게 누군가의 세상을 움직였으니, 사람의 마음이란 얼마나 위대한가.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위치한 '카페 책자국' 내 이벤트 서가. 종달리와 관련된 것들이 모여있고, 한정판도 만날 수 있다. (사진=요행)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위치한 '카페 책자국' 내 이벤트 서가. 종달리와 관련된 것들이 모여있고, 한정판도 만날 수 있다. (사진=요행)

이제 카페 책자국은 또 하나의 이벤트를 계획하고 있다. 다시 편지 이야기다. <편지할까요>란 이벤트로 ‘오래 그리워한 사람, 너무 가까워 오히려 마음을 전할 수 없었던 사람, 혹은 나 자신에게’ 편지를 써서 카페 내 우체통에 넣으면 책방지기가 대신 부쳐주는 것이다. 글씨라는 자국을 남기는 편지는 수신인의 마음에 가닿아 그렇게 또 어떤 자국을 남길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지금 내 마음엔 어떤 자국들이 있는지. 상실의 자국, 분노의 자국, 고통의 자국, 환희의 자국, 설렘의 자국, 열정의 자국. 그리고 또 생각한다. 살면서 내 마음을 이따금 들여다보았을 때 어떤 자국이 도드라지게 보이면 좋을지를. 

그 도드라졌으면 좋겠을 자국을 새기기 위해서 내 삶을 어떻게 가꿔야 할지 호흡을 가다듬어 본다. 바쁠 건 없다. 새소리 들리는 푸르른 정원이 보이는 창가에 앉아서 책방지기 부부가 준비한 필사 노트에 마음들을 옮겨 놓는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서가를 좀 서성여 본다. 눈에 들어오는 책을 한 권 골라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흐려졌던 시야가 점점 선명해 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노트를 앞에 두고 마음을 쏟아낸다. 나에게 두 시간만 내면 된다.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책방 카페 책자국이 내 마음에 자국을 남겼다. ‘책과 커피, 휴식 그리고 진심’이란 단어가 선명히 떠오른다.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위치한 '카페 책자국'에는 편안히 머물 수 있는 탁자가 마련돼 있다. (사진=요행)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위치한 '카페 책자국'에는 편안히 머물 수 있는 탁자가 마련돼 있다. (사진=요행)

 

※ 카페 책자국은 제주시 구좌읍 종달로1길 117에 있어요.

오전 10시 30분에 문을 열고 오후 6시에 닫아요. 

매주 화요일은 휴무일입니다. 

 

책방지기의 추천 책
책방지기의 추천 책인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 (사진=카페 책자국 SNS)
책방지기의 추천 책인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 (사진=카페 책자국 SNS)

#. 이방인·표리 / 알베르 카뮈

1984년판 삼중당문고 100권 시리즈 중 한 권으로 고승의 책방지기는 이 책을 소년 시절에 읽었다고 한다. 특히 ‘표리’의 한 부분이 크게 각인돼 그의 인생 지침이 됐다. 

“빈곤 속에는 고독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고독이다. 어느 정도 부유해지면 하늘의 별이 가득 찬 밤도 예사로운 자연적 향유물로 보여지게 된다. 그러나 하류 계층에선 하늘은 모든 의의를 갖게 된다. 그것은 값을 헤아릴 수 없는 은총인 것이다.” 

부자들은 하늘의 별도, 자기가 가진 것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가난한 사람에겐 모든 것이라 할만큼 가치로운 것이어서 자신은 그 가치를 잊지 않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카페 책자국은 ‘비밀 책장’이란 이벤트도 진행 중이다. 오로지 책자국 책방지기의 안내문만 읽고 끌리는 책을 주문하는 것이 특징이다. ‘막연한 편견 혹은 마케팅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좀더 다양한 분야의 흥미로운 책을’ 만나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어 진행 중이다. ‘카페 책자국 인스타그램(@bookimpression_jeju)’에 관련 링크가 있으니 책방지기의 다른 추천책을 이곳에서 만나도 좋겠다. 

 

요행

제주의 시골에서도 책방을 볼 수 있는 요즘입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책방은 책방지기의 성향에 따라 여러 장르의 책들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책방에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세상으로 초대받곤 합니다. 책방지기의 사심이 가득한 책방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책방지기의 삶을 바꾼 책 한 권과 책방의 탄생기를 들으면서 우리도 인생 설계의 방향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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