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폭염의 시간이 무색하게도 아침저녁으로 시원함을 느끼게 되는 계절이다. 이러한 날씨를 몸으로 체험하면 ‘기후위기’라는 말은 당장 우리네 삶과는 별 관련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기후위기 시대를 살고 있다.
올해 제주도의 여름은 역대 세 번째로 더웠다고 한다.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섭씨 1.2도(이하 단위 생략) 높았다고 한다.(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합의한 지구기온평균상승은 1.5도 이내로 제한해야 하고 2도를 넘지 말아야 한다.)
어쩌면 올해가 덜 더웠던 여름이 될지도 모르겠다. 국립기상청이 발표한 ‘한반도 기후변화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과 같은 추세로 탄소배출이 지속되면(고탄소 시나리오) 21세기 후반부에는 한반도 17개 광역시도의 평균기온이 2.2도~6.7도 상승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광역시도 중 제주도의 평균기온은 2.2도 상승할 것으로 예측하여 기온상승이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도의 경우 여름이 지금보다 82일 길어지고, 겨울은 없어지는 것으로 전망한다. 겨울이 사라지면서 여름이 늘어나 제주는 금세기 말 1년의 약 60%(211일)가 여름일 것으로 예측됐다. 강수량도 지금보다 대폭 늘어난다.
제주도는 폭염과 폭우가 반복되는 날씨를 겪게 될 거라는 이야기이다. 농촌진흥청은 감귤재배가능지역이 더욱 늘어나게 되어 제주를 대표하는 작물로서의 ‘감귤’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대신 키위나 망고같은 작물이 제주를 대표하게 될 것이라 전망한다.
폭염과 폭우의 증가, 대표작물의 변화 등이 제주도민의 삶과 생활에 끼치는 영향은 지대할 것이다. 물론 그 피해가 모두에게 동등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폭우에 의한 피해를 반지하에 거주하는 가난한 이들이 겪는 것처럼, 폭염에 의한 피해를 밖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나 농민들이 가장 먼저 겪듯이 앞으로의 기후변화가 끼치는 영향도 모두에게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날씨와 작물변화뿐만이 아니다. 국립해양조사원에 따르면 제주지역은 지구 온난화와 기후위기 영향이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그 피해 정도 역시 가장 큰 곳이다. 특히 지난 30년간 지구 평균 해수면이 8㎝ 상승한 반면 제주 해수면은 무려 22.8㎝(1989년~2018년) 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지역 연안 해수면 상승으로 80년 후쯤에는 해안에 거주하는 도민 30만 명이 내륙으로 이주해야 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예측도 나오고 있다. 제주연구원은 지난 33년 동안 제주항의 해수면이 18㎝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히면서, 이는 세계 평균 해수면 상승치보다 2배 높은 수치라고 발표한 바가 있다.
기후위기가 현재진행형이고, 앞으로 그 정도는 더욱 심해질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그 원인인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행동은 더디기만 하고, 현 정부 들어서는 오히려 역행하고 있다.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에 대해서는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는 행태를 우리는 목도하고 있는 중이다.
‘탄소중립’을 명분으로 핵산업 확대가 이뤄지고 있다. 노후핵발전소 수명연장, 신규핵발전소 건설,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방관 등이 그것이다. 삼척석탄화력발전소의 건설도 지속되고 있고, 정의로운 전환 계획은 사라진 지 오래다. 가덕도 등 신공항건설, 국립공원 케이블카 건설, 4대강사업의 역행 등도 중단 없이 추진되고 있다.
제주도정 또한 다르지 않다. 탄소중립기본계획은 ‘용역’을 주고, 그 결과가 나오길 기다리기만 하고 있고, 제2공항건설에 대해서는 ‘도민의 자기결정권을 실현하겠다’란 말을 하고서는 이를 책임지지도 않고 방관자적 태도를 유지하며, 건설을 용인하는 모습이다. 도로확충과 개발계획도 중단 없이 이어지고 있다.
기후위기를 낳는 현 체제를 현상유지하는 ‘지금 이대로 계속’전략이 지속됨에 따라, 이러한 체제를 멈추고 바꿔야 한다는 ‘체제전환’을 요구하는 힘과 행동도 점점 커져가고 있다. ‘멈춰야만이 생존할 수 있다’는 절박한 목소리도 터져 나온다.
2019년 6월 6000여명이 참여했던 기후행동이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경고를 하였다면, 2022년 9월에는 3만여명으로 규모가 더욱 커졌고, 기후위기에 대한 경고에 더하여 ‘체제 전환’의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올해 4월 열렸던 세종기후파업에서는 평일임에도 4000여명이 참여하여, 체제전환을 거부하는 정부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를 드높였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9월 23일에도 ‘기후정의행진’이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다. ‘기후위기를 넘는 우리의 힘’이란 슬로건과 △기후재난으로 죽지 않고, 모두가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라 △핵발전과 화석연료로부터 공공 재생에너지로, 노동자 일자리 보장하는 정의로운 전환 실현하라 △철도민영화 중단하고 공공교통 확충하여, 모두의 이동권 보장하라 △생태계를 파괴하고 기후위기 가속화하는, 신공항건설과 국립공원 개발사업 중단하라 △대기업과 부유층 등 오염자에게 책임을 묻고,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어라 라는 5대요구와 14개 세부요구안을 내걸고 행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923기후정의행진에는 현재 4백여개가 넘는 단체와 수백여명의 개인추진위원이 참여하고 있으며, 점점 더 확대되는 중이다.
제주에서도 기후위기를 넘기 위한 힘과 행동이 여기저기서 만들어지고 있다. ‘제주 기후평화행진’이 결성되어, 매달 개발과 생태계파괴가 이뤄지고 있는 지역에서 생태계 파괴현실을 고발하고, 개발중단을 요구하는 행동을 벌이고 있으며, ‘청소년기후행진’도 결성되어, 청소년들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기후행동을 전개하고 있는 중이다.
전국적 차원의 기후위기비상행동에 발맞추어 제주기후위기비상행동이 결성되어 제주도에서 온실가스배출을 가장 많이 하고 있는 드림타워와 신화역사공원을 상대로 탄소배출저감대책을 마련하라는 행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전국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9월 기후행진을 제주에서도 진행하여 수백명이 참여했다.
현상유지의 힘이 지속되고, 기후위기가 심각해져 기후재난을 겪을수록 ‘체제 전환’을 요구하는 힘과 행동도 해마다 더 커져나갈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나의 미래, 우리의 미래, 제주도의 미래, 대한민국의 미래, 지구의 미래는 기후위기를 넘는 힘과 행동이 얼마나 커지고 자주 벌어지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동진 치과의사
제주도의 시골동네에서 마을주민들의 치과주치의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애쓰고 있다. 사람들의 건강권, 생명과 연결되어 있는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다. 기후위기는 인류생존의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다. 성장제일주의에 갇힌 현 체제가 낳은 문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경험했듯 사람의 생명과 주거 등 인권과 깊게 연결되기도 한다. 한반도 최남단 제주도는 기후위기 최전선이다. 이러한 다양한 문제와 현상을 '기후정의'란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해 보고자 한다.
- ‘끓고 있는 지구’와 ‘어쩔 수 없다’는 핑계
- '핵발전' 이득은 기득권이, '오염수' 피해는 모두가
- ‘바람은 모두의 것’ 정신 훼손되고 있다.
- ‘기후악당국가’다운 탄소중립기본계획, 제주도는?
- 크루즈 관광, 마냥 환영할 일이 아니다
- 제2공항 주민투표로 결정해야
- "미래를 생각하며 걸었어요"
- "제주제2공항-군사기지 막아내자" ...평화의 길 위 뜨거운 발걸음
- 기후위기와 제주바다의 미래
- 녹색일자리와 제주청년의 미래
- 제주에서 목격한 기후위기 징후.. 제주기후평화행진 보고회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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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정치' 현실의 엇갈림과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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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환경보전분담금, 더 확장된 정책과 빠른 논의가 필요하다
- 에너지전환, ‘산업육성’ 아닌 ‘에너지공공성 강화'와 함께 이뤄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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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속화되는 기후위기, 대비책은 제대로 마련되고 있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