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나라의 수준을 알 수 있다.” 마하트마 간디가 남긴 것으로 알려진 말이다. 국가가 동물을 대하는 태도로부터 그 국가의 윤리적 성숙도를 유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조금 바꿔 말해보고자 한다. “나무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도시의 수준을 알 수 있다.”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그 사회의 동물권과 인권 등 윤리적 성숙도를 알아볼 수 있는 지표가 된다면, 나무를 대하는 태도는 그 사회가 자연과 공존하려는 의지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자세를 알 수 있다. 가로수를 식재한 뒤에는 가로수가 충분히 그늘을 드리울 수 있는 크기로 자라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 감각도 필요하다. 꽤 긴 시간을 투자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사업이다. 당장 사업 성과내기에 급급한 품격 떨어지는 행정가들은 추진하기 어렵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제주도의 수준은 어떤가. 가로수 관리 측면에서 보면 제주도는 ‘세계환경수도’ 운운하는 프로젝트를 내세울 만한 품격이 안 된다. 옹졸하기 그지없다. 한라산과 몇 개의 뛰어난 지질 자연환경 덕분에 이점을 누리고 있을 뿐, 도시 관리 측면에서 보자면 ‘세계환경수도’를 말할 자격이 없다. 제주 도심의 풍경과 관리 상태를 보자면 '세계'환경수도는커녕 대한민국 내에서조차 환경수도라 내세우기 부끄럽지 않은가.

제주시 외도동에 식재된 소나무. 관광지가 아닌 주거지 일대 거리에 충분히 넓은 그늘을 드리우지 못하는 워싱톤야자수를 심었다는 비판을 받자, 모두 베어내고 그 자리에 어린 소나무를 심었다. 조성된 지 꽤 오래된 외도동 중앙차로의 일대가 한층 더 옹졸해 보인다. 기존 야자수와 소나무, 둘 다 공존하도록 가로수 화단을 더 확보할 수는 없었는가.(사진=김재훈 기자)
제주시 외도동에 식재된 소나무. 관광지가 아닌 주거지 일대 거리에 충분히 넓은 그늘을 드리우지 못하는 워싱톤야자수를 심었다는 비판을 받자, 모두 베어내고 그 자리에 어린 소나무를 심었다. 조성된 지 꽤 오래된 외도동 중앙차로의 일대가 한층 더 옹졸해 보인다. 기존 야자수와 소나무, 둘 다 공존하도록 가로수 화단을 더 확보할 수는 없었는가.(사진=김재훈 기자)

#가로수와 자동차

원희룡 제주도정은 대중교통 체계를 개편하면서 버스중앙차로제를 도입했다. 원희룡 전 지사의 대중교통 체계 개편은 보행자의 불편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추진됐다. 차로를 넓히기 위해 인도 폭을 줄였다. 그뿐인가. 인도에 식재된 가로수도 베어냈다. 당시 차로를 넓히며 제거한 가로수가 무려 1만 그루에 달한다. 그로 인해 보행자들은 땡볕을 피할 나무그늘이 없는 좁은 인도를 걷게 되었다. 그뿐인가. 제주공항에서 신제주로 들어서는 관문의 울창한 가로수 터널은 사라졌다. 빼어난 정실마을 가로수길의 나무들도 암울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이것이 제주도가 나무를 대하는 태도며, 보행자를 대하는 제주도의 수준이다.

가로수가 부족한 시내 거리에는 거대한 우산 모양의 인공차광 시설이 들어섰다. 이 같은 시설은 설치비는 물론, 사후 관리비도 꾸준히 들어간다. 애초 가로수들을 잘 관리하고, 나무그늘이 드는 도로를 만들어 나가면 필요없는 시설이다. 가로수를 잘 관리하는 지역에서는 굳이 혈세를 들여가며 인공그늘막 시설을 조성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 자체가 없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15분도시를 공약으로 내걸고 추진하고 있다. 오 지사의 15분도시 공약 및 관련 용역은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대도시에서 추진되는 15분도시를 제주도에 이식하려니 구멍이 많다. 하지만 프랑스 파리시 15분도시의 기본적인 구상 중, 대중교통 강화를 통한 탄소중립과 도시 녹화 만큼은 제주에 꼭 필요한 기획이다. 도시재생 측면에서도 대중교통 강화와 도시녹화는 반드시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추진해야 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지금 제주도의 가로수 관리 실태나 가로수 관리 및 보행 편의와 관련한 행정조직 구조를 살펴보면 갈 길이 멀다.

#사람과 가로수

가로수 문제는 제주 지역 대표 상권에서도 드러난다. 신제주 누웨마루거리와 제주시 원도심의 칠성로 상점가에는 가로수가 단 한 그루도 없다. 차 없는 거리라고 하면서 여름철 땡볕을 막을 나무들이 없는 두 상점가를 걷다보면 '얼른 이 거리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그늘이 없어 상점가가 뜨겁다는 사실을 제주 행정당국도 잘 아는 눈치다. 누웨마루거리에 물안개 분사 장치를 설치했다. 나무를 심었다면 필요 없는 장치다. 돈 들여 인공 시설을 설치하고, 가동하고 관리하기 위해 계속 돈을 쓴다. 그나마 제 값을 하고 있을까? 글쎄, 바람이 그리 세지 않은 날에도 물안개는 바람을 타고 공중으로 솟구쳤다. 하늘 위로 전기세와 물값이 날아갔다. 나무를 심었다면 전기도 아끼고 물도 아꼈을 텐데.

프랑크푸르트 시내의 한 상점가. 중앙에 가로수를 식재해 운치를 더하고 시민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그늘을 제공하고 있다.(사진=김재훈 기자)
프랑크푸르트 시내의 한 상점가. 중앙에 가로수를 식재해 운치를 더하고 시민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그늘을 제공하고 있다.(사진=김재훈 기자)
프랑크푸르트 시내 상점가. 나무를 높이 자라지 않도록 하면서 대신 넓은 면적에 그늘을 드리울 수 있도록 관리하고 있다.(사진=김재훈 기자) 
프랑크푸르트 시내 다른 상점가. 나무를 높이를 일정하게 관리하면서 대신 넓은 면적에 그늘을 드리울 수 있도록 가로수를 조성하고 있다.(사진=김재훈 기자) 

독일 프랑크푸르트시의 상점가를 방문했다. 상점가 중앙에 나무를 심었다. 나무는 시원한 그늘막이 되어주었다. 나무 그늘 아래에 테이블과 의자들이 마련돼 걷다 지친 사람들이 앉아서 음료를 마시거나, 수다를 떨며 쉴 수 있었다. 상점가에서 머물며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프랑크푸르트시는 가까운 거리의 상점가에 두 가지 방식으로 나무를 식재했다.

상점가의 중앙에 높이 자란 나무들을 식재하는가 하면, 한 상점가는 그늘이 넓게 퍼지도록 가로수를 식재하고 관리했다. 다양한 방식으로 상점가의 가로수 식재 계획을 설계하고 관리하고 있었다. 태양에 뜨거워지는 도시의 아스팔트를 식히는 방법으로 가로수보다 나은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그런 방법 따위가 있을리가. 답은 오직 나무, 나무, 나무뿐이다.' 프랑크푸르트시는 그렇게 웅변하며 스스로 실천하고 있었다. 적어도 필자는 그렇게 느꼈다.

상점가 뿐 아니라 주택가 경관 개선 및 그늘 확보를 위한 독일과 프랑스 행정 당국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다음 두 사진은 독일 슈베칭켄 지역 주택가와 프랑스 올네쑤부와 지역 주택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가로수 거리이다. 상점가 뿐 아니라 주택 지역의 가로수를 관리하는 것이 주택 경관 개선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보여준다.

독일 슈베칭켄 지역 주택가의 가로수. 나무를 촘촘하게 식재하면서 꼼꼼하게 관리하며 그늘의 면적을 넓히고 도시 경관 조경으로 기능하도록 했다.(사진=김재훈 기자)
독일 슈베칭켄 지역 주택가의 가로수. 나무를 촘촘하게 식재하면서 꼼꼼하게 관리하며 그늘의 면적을 넓히고 도시 경관 조경으로 기능하도록 했다.(사진=김재훈 기자)
프랑스 파리시 외곽 올네쑤부와 지역의 주택가에 조성된 가로수. 제주도였다면 저 가로수를 모두 밀어버리고 자동차 주차장으로 만들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가로수로는 주차장에 양보할 수 없는 가치가 있는 도시 자원이다.(사진=김재훈 기자)
프랑스 파리시 외곽 올네쑤부와 지역의 주택가에 조성된 가로수. 제주도였다면 저 가로수를 모두 밀어버리고 자동차 주차장으로 만들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가로수로는 주차장에 양보할 수 없는 가치가 있는 도시 자원이다.(사진=김재훈 기자)

#도시와 꽃

프랑크푸르트시 외곽 리드베르크.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한 패시브건축 학교로 유명한 지역이다. 이곳에서도 행정당국이 가로수 관리에 얼마나 진심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가로수 한 그루 한 그루를 지역의 소중한 자원으로 보호하고 있다. 가로수에 철제구조물을 둘렀다. 제주 행정은 차도를 넓히기 위해 가로수를 베어버리고,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꼽혔던 비자림로의 숲을 벌목하는데 한치의 망설임이 없었지만, 리드베르크 지역에서는 가로수 한 그루가 소중하게 다뤄졌다.

프랑크푸르트 외곽 리드베르크 지역의 가로수. (사진=김재훈 기자)
프랑크푸르트 외곽 리드베르크 지역의 가로수. (사진=김재훈 기자)

가로수를 보호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작은 가로수를 적극적으로 보호하며 관리해왔으니 풍성하게 잘 자랄 수밖에. 나무그늘이 풍성했다. 이 지역에서 경관의 품격, 그리고 나무에 긴 시간을 투자해온 행정의 품격을 느낄 수 있었다.

독일은 에너지 낭비를 줄이는 문제에 진심이다.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건축 개념인 패시브하우스에도 앞서 있다. 도시 조경 문제도 기후위기 측면에서 고려하고 있다. 사진은 프랑크푸르트시 외곽 리드베르크 한 공원에 설치된 실내, 실외 덩쿨식물 홍보 광고 시설이다. 행정기관에서 마련했다. 주택에 이 같은 식물들을 심으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온습도 조절에도 용이하다고 안내하고 있다. 이 같은 가드닝을 하는데 행정기관이 지원도 해준다.(사진=김재훈 기자)
독일은 에너지 낭비를 줄이는 문제에 진심이다.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건축 개념인 패시브하우스에도 앞서 있다. 도시 조경 문제도 기후위기 측면에서 고려하고 있다. 사진은 프랑크푸르트시 외곽 리드베르크 한 공원에 설치된 실내, 실외 덩쿨식물 홍보 광고 시설이다. 행정기관에서 마련했다. 주택에 이 같은 식물들을 심으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온습도 조절에도 용이하다고 안내하고 있다. 이 같은 가드닝을 하는데 행정기관이 지원도 해준다.(사진=김재훈 기자)

리드베르크는 식수대 및 화단 관리에 있어서도 제주도와 차별적이었다. 제주도는 시내 화단과 식수대 관리를 용역에 맡긴다. 계절마다 꽃을 바꿔 심기에 여념이 없다. 꽃 심는데 많은 예산이 들어간다. 어느날 회전교차로 일대에 새로 꽃양배추가 식재돼 있다면, '제주도가 혈세 1000만원 가량을 은행에서 꺼내 저기에 꽂아뒀구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돈, 시민들의 자전거 구입비 지원에 투입하면 좋을 텐데. (제주도가 매년 조성하는 튤립 꽃밭을 보면서 이런 생각도 들었다. 튤립은 알뿌리로 자라는 구근식물이다. 알뿌리를 거둬들여 보관했다가 다음해에 또 심으면 된다. 하지만? 매년 다시 구입하고 있지 않은가. 튤립 알뿌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차피 폐기되는 그 튤립 알뿌리를 시민에게 나눠주는 것은 어떨까.)

제주시 원도심의 가로수. 심어둔 나무를 품을 여유가 없는 화단의 사이즈를 보라. 그래도 나무를 심어뒀으니 만족해야 할까. 좌측 인도의 식수대의 가로수는 비어둔 지 오래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가로수 관리 측면에서 보자면 제주도는 옹졸하다. 이 표현 말고는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사진=김재훈 기자)
제주시 원도심의 가로수. 심어둔 나무를 품을 여유가 없는 화단의 사이즈를 보라. 그래도 나무를 심어뒀으니 만족해야 할까. 좌측 인도의 식수대의 가로수는 비어둔 지 오래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가로수 관리 측면에서 보자면 제주도는 옹졸하다. 이 표현 말고는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사진=김재훈 기자)

막대한 세금을 들여 계절마다 꽃을 심지만 그다지 예쁠 것도 없는 화단을 보면서 매번 화단 조성과 가로수 관리를 용역에 맡기지 말고 조경 기술자들을 제주도가 직접 고용해 관리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꽃에 쏟는 세금이 너무 아깝다. 최소 수십억인, 제대로 집계도 되지 않는 그 돈, 교통약자들을 위한 택시비 지원에 투입하면 좋을 텐데. 이런 생각은 리드베르크의 화단을 보면서 더욱 강화됐다.

리드베르크 지역의 도시 화단에 조성된 꽃 종류는 장미가 압도적이었다. 붉은 장미. 백장미. 분홍장미. 화단에는 장미꽃이 풍성했다. 인정하자. 졌다. 아름답고 부럽다. 장미 화단은 철제 구조물로 보호되고 있었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에게 물었다.

“혹시 이 화단의 장미는 심은 지 얼마나 됐을까요? 화단의 꽃이 언제 바뀌었는지 기억하실까요?”

“글쎄요. 제가 여기 온 지 15년 됐는데요. 최소 15년 동안은 계속 같은 풍경이에요.”

프랑크푸르트시 외곽 리드베르크 지역의 화단. 이 거리는 붉은 장미로 조성됐다. 다른 거리는 백장미로.(사진=김재훈 기자) 
프랑크푸르트시 외곽 리드베르크 지역의 화단. 이 거리는 붉은 장미로 조성됐다. 다른 거리는 백장미로.(사진=김재훈 기자) 

인정하자. 또 졌다. 유능한 행정은 예산을 이렇게 아낀다. 돈 들여 꽃을 심고 뽑고, 다시 돈 들여 꽃을 심고 뽑는 일을 반복하지 않는다. 꽃양배추를 비롯한 계절화, 즉 계절에 따라 서둘러 심었다가 제거하는 일회성 인스턴트 화단은 재정에도 도시경관에도 좋지 않다. 그럼, 장미 화단 관리는 어떻게 할까? 해마다 두어 차례 전정할 뿐이다. 장미는 전정을 잘하면 오래도록 꽃을 즐길 수 있다. 잘린 가지에서 다시 꽃을 피우곤 하기 때문. 계절화가 아닌 사철을 즐기면서 관리만 하면 되는 우리 식물은 없는가. 없을 리가.

제주도도 이와 같은 다년생 관목류 화단을 조성하기도 한다. 대부분 시 외곽 지역의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데, 길게 이어지는 수국 화단을 떠올리면 된다. 드라이브용 관광조경에 공을 기울지만 유독 도심 지역에서는 계절화를 심고 뽑고 또 심고 또 뽑아낸다. 용역을 맡은 업체와 용역을 맡긴 행정당국 말고는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그 일을 지루하게 반복하고 있다.

조경 기술자 직접 고용을 통한 행정의 직접 관리와 함께 고려해볼 만한 방안이 있다. 도시재생 사업에 연계해 만들어진 마을관리협동조합을 활용하는 방안이다. 마을협동조합이 마을 경관을 직접 관리해나갈 수 있도록 조경 관리 역량을 확보하도록 하고, 관-마을협동조합의 마을 식수대·화단 관리 방안을 적극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역할을 하나씩 해나가도록 만든 조직이 아닌가.

※ 이 기사는 제주특별자치도로부터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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