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들불축제(사진 출처=제주시청)
제주들불축제(사진 출처=제주시청)

벨기에 출신 방송인 줄리안은 최근 워터밤 축제에 대해 쓴소리를 내뱉었다. 워터밤 축제가 물을 낭비하며 환경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줄리안은 워터밤 축제의 물 낭비 문제들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하는 (축제) 경험이 꼭 환경에 나쁜 영향을 미쳐야만 경험으로 남게 될 것인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보다 앞서 2022년에는 가수 싸이가 흠뻑쇼 공연 한 번에 300톤에 달하는 식수를 뿌리는 것으로 알려지며 논란이 일기도 했다. 농업 용수 부족으로 농민들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많은 물을 소비하는 축제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는 축제, 지속가능한 축제에 대한 고민이 요구된다.

기후위기 시대에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중단되었던 제주들불축제가 내년부터 새로운 옷을 입고 선을 보일 예정이다. 제주들불축제도 시민사회로부터 오랜 시간 지적을 받아왔다. 미세먼지 이슈가 부각되며 환경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날로 커져왔지만, 비가 내려도 화학물질을 이용해 새별오름 전면에 불을 놓는 등 제주들불축제는 환경과 생태 문제에 둔감한 축제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럴 때마다 제주 행정은 봄이 오기 전에 불을 놓아 방목지의 해충을 없애는 전통 목축문화 재현의 의미를 부각시키면서 오름 불놓기 행사를 이어왔다. 그러나 새별오름 전면을 태우는 방식으로 규모를 키운 들불축제에서 더 이상 제주 전통 문화의 면모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중단되었던 제주들불축제는 지난 2022년 재개될 예정이었으나 전국적으로 산불피해가 발생하며 취소됐다. 한해 뒤인 2023년 3월 들불축제 직전, 들불축제 취소를 촉구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거세게 일었다. 거기에 더해 전국적으로 산불 경보가 '주의'에서 '경계'로 상향되었다. 이에 제주시는 고민 끝에 축제 개막 직전 메인 행사인 오름 불놓기 행사 등을 전격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긴 시간 축제를 준비해온 제주시 입장에서는 결코 쉽게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강병삼 전 제주시장은 축제를 준비하느라 고생한 직원 등을 위로하기도 했다.) 

제주녹색당은 2023년 축제 직전 논평을 발표하고 “제주들불축제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불을 주제로 산 전체를 태우는 세계에서 유일한 축제’라고 홍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주녹색당은 “기후위기로 제주의 농민들이 고통받고 어민들이 어업을 포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들불축제를 재개하는 것은 이들의 삶을 불태우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지는 강도 높은 비판은 전세계적으로 기후위기가 부각되는 상황에서 설득력을 얻었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석유를 뿌려 오름 전체를 태우는 들불축제가 지역의 대표축제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예전에는 맞았을지 몰라도 지금은 틀렸다. 기후위기 시대 전 세계인의 웃음거리가 되기 싫다면 당장 들불축제를 폐지해야 한다. 기후재난의 현실 속에서 세계 도처가 불타는 마당에 불구경하자고 생명들의 터전에 불을 놓는 파렴치한 행위를 즉각 멈춰야 한다.”

그간 들불축제의 '전통'을 내세워 왔던 제주시는 전향적인 모습을 보였다. 축제 논의 과정에서 시민의 의견을 직접 반영키로 결단했다. 공론화에 붙였다. 숙의형 정책개발 원탁회의 방식을 도입했고, 원탁회의 참여자는 무려 200여명에 달했다. 제주시는 원탁회의에서 제시한 권고안을 수용했고, 시민기획단의 의견을 반영하며 ‘2025 들불축제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2021 불놓기 후 새별오름(사진 출처=제주들불축제 홈페이지)
2021 불놓기 후 새별오름(사진 출처=제주들불축제 홈페이지)

공론화 과정에서 잡음이 없지는 않았다. 또 '축제 하나에 이 많은 수고를 들여야 할까?'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제주시가 기후위기 및 환경 문제를 인식하고 시민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은 높게 평가할 만하다. 기후위기 시대에 환경 및 생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축제에 대해 시민과 함께 고민하며 대안을 마련한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크다. 

오영훈 제주지사도 들불축제와 관련해 “기후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이나 아시아, 세계적인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제주들불축제의 발전 방향을 다시 한 번 논의해야 할 때”라며 오름 불놓기 행사 재추진 요구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제주도의 행정수장이 근래 부각되고 있는 기후위기 문제를 앞세우며 축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거론한 것 또한 유의미한 지점이다.

앞서 거론한 워터밤 축제, 그리고 화천 산천어축제 등 생태 및 환경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는 축제들이 앞으로 어떻게 대안을 마련해나가야 할지, 축제 기획 과정에서 시민들의 참여를 어떻게 끌어내야 할지 좋은 선례를 남겼다고 볼 수 있다. 기후위기 대응 측면에서도 지속가능한 축제를 시민과 함께하며 민주적으로 구상해나간다는 의미가 있다. 다만 남아 있는 과제도 만만치는 않다.

(다음 기사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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