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 안 무거우세요?”
“아이고, 이건 깃발 드는 것도 아니예요. 예전엔 대장기(행진을 이끄는 가장 큰 깃발) 들고 맨 앞에서 행진하기도 했는데.”
22일 제주생명평화대행진 첫날, 오전 9시 제주해군기지에서 출발해 오후 6시 남원생활체육관에 도착하기까지 깃발을 들고서 행진한 강봉수 교수(제주대학교 윤리교육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을 정도로 강하게 쏟아진 빗속에서도, 피부가 바싹 구워지는 듯한 땡볕 아래에서도 싱글벙글 미소를 지으며 걷는다. 가끔 무엇 때문에 흥이 돋는지 노래도 부르고 옆사람과 수다도 떨고 지칠 줄 모르는 기색이다.
그는 2012년부터 지금까지 10차례 열린 제주생명평화대행진(2020년부터 2022년까지는 코로나19로 인해 열리지 않았다)에 모두 참가했다. 10번의 대행진. 그에겐 어떤 걸음이었을까.
2012년 첫 행진에 참여한 계기는 무엇인가.
“전체 일정을 다하진 못하더라도 매년 행진이 있을 때마다 최소 하루 이상은 참여했다. 처음엔 행진 명칭이 ‘강정평화대행진’이었다. 강정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걸 막기 위한 투쟁이었다. 강정마을 주민들이 처절하게 싸우니까 이 사람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같이 걷기 시작했다.”
첫 행진이 있고 나서 10년이 넘게 지났다. 그때와 지금, 달라진 게 있나.
“강정 행진 땐 동진, 서진이라고 해서 한 팀은 동쪽에서 제주시로 올라가고, 또다른 팀은 서쪽에서 제주시로 올라갔다. 제주시에서 동진과 서진이 만나는 마지막 날은 축제 같았다.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모였다. 참가하는 사람들이 많이 줄기도 했고, 여기 참가한 사람들을 봐라. 내 또래가 없다. 다들 나이가 드니까 오래 걷는 게 힘들어지지 않나. 해가 갈수록 또래가 점점 줄어든다. 처음 같이 했던 친구들이 지금은 한 명도 없다.”
행진 규모가 줄어든 배경은 무엇일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투쟁 동력을 잃은 부분도 있다. 해군기지가 완공되고 오픈되니까 확 줄어든 것도 있고. 또 강정 투쟁 땐 시민사회단체가 젊었다. 내 세대이거나 우리보다 젊은 세대가 주축을 이뤘다. 후배가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10년 전 제주시민사회의 투쟁 중심이 된 건 해군기지였고 지금은 제2공항이라 볼 수 있다. 제2공항 반대 운동이 해군기지 반대 운동과 비교해 시민사회 결집력이 약화됐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해군기지 투쟁 땐 마을 사람들이 주축이 됐다. 그게 중요한 부분이다. 마을에서 젊은 사람들이 운동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성산은 그렇지 못하다. 우선 농촌지역의 고령화 때문에 마을에 젊은 층 자체가 잘 없다. 강원보 집행위원장이 가장 젊은 축에 속한다. 또 공항은 ‘무기’(군기지)와는 다른 성격인 것도 영향이 있는 것 같다. 군사시설엔 ‘평화’라는 가치로 많은 사람들이 연대하기 쉽지만 공항 같은 경우는 성격이 좀 다르다. 공항이 하나 더 생기면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고 합의를 이뤄내기가 힘든 측면이 있다. 강정 때처럼 모든 도민이 한뜻으로 뭉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나 역시도 처음엔 ‘강정(해군기지 반대운동)처럼만 하면 공항 막기는 쉬울 거다’라고 생각했는데 쉽지 않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도 대행진에 참가했다.
“제주생명평화대행진은 ‘평화운동’이다. 쉽지 않다고 해서 평화운동이 실패한 게 아니다. 참여하는 사람이 몇이 됐든 이어가야 한다. 그게 중요한 거다. 게다가 강정 투쟁은 제주평화운동의 뿌리다. 제주 전체의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는 시작이다. 그러니 반드시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걷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