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0회를 맞은 2024제주생명평화대행진 ‘평화야 고치글라(같이 가자)’가 22일 시작됐다. 대행진은 지난 2012년 ‘강정생명평화대행진’으로 시작해 2016년 제주 제2공항 등 제주 전역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며 ‘제주생명평화대행진’으로 확대됐다. 행진단은 제주 전역의 극심한 갈등을 일으킨 ‘강정 해군기지’와 ‘제주 제2공항’ 예정부지인 성산 등을 걸으며 생명과 평화를 향한 열 번째 외침을 이어간다. 10년이 넘도록 제주의 ‘생명’과 ‘평화’를 외치고 있는 대행진의 행렬에 제주투데이가 2박 3일 간 동행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편집자주>
“이거 한 번 볼래요? 얼마 전에 산에 간다고 손수건을 챙겼는데. 아니 글쎄 '2012 생명평화대행진'이 쓰여 있는 거예요. 이걸 보고 ‘아 내가 대행진에 모두 참석했구나’를 알았죠.”
지난 22일 2024제주생명평화대행진 첫째 날 저녁 식사줄을 기다리며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다 박찬식 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 공동집행위원장이 갑자기 무엇인가가 떠올랐다는 듯 목에 둘렀던 손수건을 풀었다. 그가 ‘자랑스럽게’ 펼쳐 보인 녹색 손수건엔 ‘2012 생명평화대행진’이라는 글씨가 쓰여져 있다.
생명평화대행진에 10차례 모두 참여한 사람을 애타게 찾았던 터라 허기도 잊은채 인터뷰를 시작했다. 2012년 ‘강정’ 이름으로 첫 발을 뗀 대행진은 박 위원장의 말에 따르면 “어마어마한 밥”이 먼저 떠오르는 행사였다. 그는 7차례는 ‘육지사는 제주사름’ 소속으로, 최근 3차례는 비상도민회의 소속으로 참가했다.
-오늘 힘들진 않으셨어요?
“높은 깃발을 들고 걸으려니 오전에 비바람 심하게 불 땐 휘청거리기도 했는데, 뭐 그 외엔 할 만했어요. 이 정도야 뭐. (웃음)”
-‘강정’으로 시작했던 대행진은 어땠나요?
“엄청난 양의 밥이 떠올라요. 그때 동진(강정에서 동쪽 방향으로 제주시로 올라가는 행진팀)과 서진(강정에서 서쪽 방향으로 제주시로 올라가는 행진팀)이 각 300명 정도 됐어요. 식사 준비를 300명분을 해야 했으니… 그 많은 밥을 강정주민들이 해서 날랐어요. 아침에 쌀 씻고 지어서 식사 장소로 보내고 행진 참여자들이 밥을 다 먹으면 또 바로 식기를 설거지하고, 바로 밥 짓고 다음 식사를 준비하고. 부녀회분들이 정말 고생 많았죠. 그야말로 어머어마한 밥이었지. 지역 활동가들도 그땐 행진에 참여해서 걷는 게 아니라 밥 준비에 다 투입될 정도였으니까요.”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행진에 참여하는 분들 숫자가 줄어들긴 했네요.
“지금 참여자 수가 적다기 보다는 강정 투쟁 때 기적적인 숫자의 사람들이 모였던 거라고 봐야죠. 그만큼 투쟁이 절실했어요. 해군기지를 막아야 한다는 절실함. 주민들이 처절하게 싸웠죠. 결국 해군기지가 들어서면서 강정주민들이 빠지게 된 측면이 있기도 하고. 또 청소년 학생들이 많이 참여를 했는데 행진 일정이 7월에서 8월로 바뀌면서 개학 때문에 오지 못하는 가족이나 학생들도 많고요.”
-하루에 수십킬로를 걷는 일정인데 어린 청소년들이 많이 참가를 했었군요.
“그 부분이 바로 강정 투쟁의 가장 큰 성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행진이라는 한국에서 유일한 대중평화운동을 남긴 거예요.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이 행진이 평화 교육의 장인 거죠. 우리나라엔 이렇다할 대중적인 평화운동이 없거든요. 담론 수준에서 그치는 게 대부분이잖습니까. 치열한 투쟁에서 생겨난 어머어마하고 중요한 성과입니다. 규모가 줄었느냐, 늘었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15년이 넘는 강정 투쟁에서 얻은 ‘대중평화운동’을 어떻게 이어나갈 것이냐가 중요한 과제이죠. 그 의미를 살릴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이 같이 해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