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0회를 맞은 2024제주생명평화대행진 ‘평화야 고치글라(같이 가자)’가 22일 시작됐다. 대행진은 지난 2012년 ‘강정생명평화대행진’으로 시작해 2016년 제주 제2공항 등 제주 전역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며 ‘제주생명평화대행진’으로 확대됐다. 행진단은 제주 전역의 극심한 갈등을 일으킨 ‘강정 해군기지’와 ‘제주 제2공항’ 예정부지인 성산 등을 걸으며 생명과 평화를 향한 열 번째 외침을 이어간다. 10년이 넘도록 제주의 ‘생명’과 ‘평화’를 외치고 있는 대행진의 행렬에 제주투데이가 2박 3일 간 동행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편집자주>
2024 제주생명평화대행진 이튿날 밤인 23일 저녁. 제주 제2공항의 예정 부지인 신산리에서는 ‘제2공항 백지화 연대의 밤’이 열렸다. 기본계획 고시를 앞두고 있는 제2공항 반대 투쟁에 참여해 온 이들과 성산읍 마을 주민들이 연대를 다지는 시간이었다.
여러 투쟁에 참여해 온 활동가들이 모인 자리였지만 현장은 축제 분위기에 가까웠다. 참여자들은 무더웠던 행진의 피로는 잊은 채 흥겨운 노래와 춤을 선보이며 환호성을 질렀다.
제주 제2공항을 둘러싼 투쟁은 국토부가 2015년 제주 제2공항 건설 계획을 발표하며 시작됐다. 제2공항 사업은 환경 파괴와 도민 수용성 논란으로 9년째 기본계획이 고시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국토부와 기재부가 제2공항 총사업비 협의를 마무리하면서 기본계획이 곧 고시될 것이란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날 제주투데이는 저마다의 사정으로 ‘연대의 밤’에 모인 참여자들에게 제2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이유 한 가지를 꼽아달라고 물었다.
“저는 개발 자체가 싫어요. 특히 사람이 아닌 개발을 위한 개발 같은 것들요. 제2공항도 해군기지처럼 공군기지로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개발에 대한 반대는 강정 해군기지, 싸드, 밀양, 제2공항까지 그 연장선인 것 같아요. 제가 강원도 출신인데 강원도에 카지노가 들어설 때도 사업체들의 명분은 도민들을 위한 것이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정작 강원랜드가 들어서고 좋다는 주민들은 없었어요. 다 관광객이나 거대 자본만 이득을 봤죠. 그 반대 투쟁에도 참여했었는데, 제2공항 싸움과 겹쳐 보이더라고요. 자본을 위한 개발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해요.” -버들(서울시민)
“국방부에서 북한 핵을 견제하기 위해서 제주에 공항을 설치하면 좋겠다고 한 문서를 보고 공항을 설치하는 목적이 군사기지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러면 제가 사는 제주도에 핵이 들어서고, 전쟁이 날 경우에는 핵 공격 위험에도 노출돼 있는 거니까 그런 부분도 걱정이 돼서 제2공항이 지어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강현우(보물섬학교 학생, 15세)
“제2공항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많은데도 제주도민들의 뜻을 어기고 추진되고 있다고 느껴져요. 동의를 아예 묻지도 않고 그냥 밀어붙이는 거죠. 그리고 제가 오름을 좋아하는데 성산에 제2공항이 들어서면 오름이 다 깎인다고 하니까 그 이유에서도 반대합니다.” -김성유(보물섬학교 학생, 15세)
“기본적으로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군사공항으로 쓰이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이미 있는 공항으로도 충분한데 또 만드는 게 너무 명분이 없지 않나 싶어요. 그리고 공항이 들어서면 성산에 있는 숨골도 막히고, 지하수도 흐르지 못할 텐데 그걸 다 무시하고 그냥 지어버리면 환경 파괴가 너무 우려되기도 합니다. 또 지어지고 나서 씽크홀 같은 안전의 우려도 되고요.” -조은(강정 주민, 20대)
"여기는 인간만의 땅이 아니니까요. 많은 생명들이 파괴되잖아요. 제가 사는 제주시에도 에너지 많이 쓴다고 소문난 드림타워가 있는데요. 그런 것들을 보면 부채감이 들어요. 지구에 사는 생명체로서의 부채감이요. 그리고 서귀포에서 제일 높게 보이는 게 한라산이라 참 좋은데, 공항이 들어서면 그 한라산을 다 가리게 되겠죠." -호(제주도민, 20대)
"지금 제주공항이랑 새로 지어질 공항과 거리가 차로 1시간에서 1시간 10분 정도밖에 안 걸려요. 대도시도 아닌 제주에 이렇게 단거리에 공항이 두 개 들어서는게 말이 안된다고 봅니다. 공항이 들어서면 미국과 친해져서 군사용으로 쓰일 거라고 보고요. 비자림로 공사로 삼나무가 수도 없이 베어졌잖아요. 그것도 공항 가는 길을 편하게 만들기 위함이니 피해가 상당하죠. 더군다나 우리나라 인구도 줄 테고, 코로나 때 정점이었던 관광객도 더 늘지 않을 텐데 수요 부분에서도 공감하기 힘듭니다." -황현호(제주도민, 62세)
“우선 절차적 투명성이 결여됐어요. 신산리 주민으로서 이곳이 안개도 많고, 제주에서 비가 많이 오기로 잘 알려진 곳인데 그런 환경적 한계에도 공항을 설치한다고 하니 이해할 수 없죠. 지역주민들은 이곳이 공항이 들어설 만한 기후가 아니라는 걸 다 알아요. 그럼에도 강행하고 있는 거죠. 성산읍에서는 바다로 흘러가는 소하천이 여기 동부 지역에서 신산리가 유일해요. 숨골이 다 막히고 하면 폭우 오고 하면 물이 안 흘러서 이 지역이 황폐화될 수 있는 거죠.” -강재표(신산리 주민, 56세)
“가장 큰 이유는 공항이 필요 없다는 거죠. 공항이 만들어지면 적자 공항이 될테고, 나중에는 군사 공항이 될 확률이 높죠. 공항이 들어서는 지역 주민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문제에는 관심을 갖게 됐어요. 제2공항 문제가 시작된 2015년부터 계속 관심 가지고 지켜보면서 활동했습니다. 또 수산리는 활주로의 북쪽에 위치해서 소음 문제가 발생하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고대봉(수산리 주민, 50대)
이날 연대의 밤에 참석한 박찬식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 공동집행위원장은 “제2공항 기본계획 고시가 9년째 진행되고 있지 않고 검토만 하고 있다는 것은 이 계획이 필요하지 않은 계획이기 때문”이라며 “제주에 두 개의 공항은 필요 없고, 성산은 공항이 들어설 수 있는 곳이 전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 있는 공항이 앞으로 올 관광객까지 모두 수용할 수 있는데 그 공항을 놔두고 165만 평을 메워 공항을 짓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며 “그 목적이 공군기지가 아니고서야 이해할 수 없는 공항이다. 제주도의 시간은 제주도민들이 만드는 것으로 끝까지 투쟁해 반드시 제2공항을 막아낼 것”이라고 목소리 높였다.
김대현 한국작가회의 비상대책위원장은 “제주를 찾는 관광객 수는 제주의 자연이 수용가능한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며 “성산은 여기저기 지하동굴이 널려 있어 공항 건물이 붕괴하고 활주로가 함몰하는 대형참사가 우려되고, 185개의 숨골이 막혀 지하수는 고갈되고 홍수 피해가 빈번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제주 제2공항 건설은 이러한 문제도 검증하지 않고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며 “한국작가회의는 제주 섬의 군사기지화를 반대하며 제주가 명실공히 ‘세계평화의 섬’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제주 제2공항 건설 반대 투쟁에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2024제주생명평화대행진은 24일 오전 신산리에서 출발해 성산을 지나 제주시로 향한다. 제주시에서 오후 6시 평화문화제 행사를 마지막으로 대행진 일정이 종료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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