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0회를 맞은 2024제주생명평화대행진 ‘평화야 고치글라(같이 가자)’가 22일 시작됐다. 대행진은 지난 2012년 ‘강정생명평화대행진’으로 시작해 2016년 제주 제2공항 등 제주 전역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며 ‘제주생명평화대행진’으로 확대됐다. 행진단은 제주 전역의 극심한 갈등을 일으킨 ‘강정 해군기지’와 ‘제주 제2공항’ 예정부지인 성산 등을 걸으며 생명과 평화를 향한 열 번째 외침을 이어간다. 10년이 넘도록 제주의 ‘생명’과 ‘평화’를 외치고 있는 대행진의 행렬에 제주투데이가 2박 3일 간 동행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편집자주> 
23일 제주생명평화대행진이 이튿날에 접어든 가운데,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도 함께 했다.  (사진=박지희 기자)
23일 제주생명평화대행진이 이튿날에 접어든 가운데,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도 함께 했다.  (사진=박지희 기자)

"생명평화대행진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안가면 안될 것 같더라고. '생명'이라는 단어만 듣고 마음 먹고 왔어요." 

23일 오전 8시 서귀포시 남원생활체육관. 화창한 날씨 아래 제주생명평화대행진이 이틀차에 접어들었다. '평화야, 고치글라(평화야, 같이 가자)' 문구가 적인 노란티를 입은 사람들 100여명은 행렬을 맞췄다. 선크림을 덧바르고, 모자를 고쳐써가며 중무장을 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에서 남원까지 23km를 내리 걸어나간 것에 이어 신산리까지 20km를 또다시 걸어나가기 위해서다. 기자 역시 무거운 다리를 옮겼다. 행진단의 경쾌한 발걸음과 달리 몸이 축축 처졌다. 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행진단을 이끄는 봉고차 스피커의 음악소리도 점차 줄어들었다. 결국 맨 뒤 행렬의 꽁무니를 쫓아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떻게 오셨어요?" 옆 사람에게 대화를 걸었다. 수다를 떨다보면 시간이 금방 흐르기 마련이니까. 50대 초중반의 남자는 자신이 이태원 참사 유족이라고 했다.  故이민아씨의 아버지 이종관씨였다. 앞 줄에선 故최혜리씨의 어머니, 故유연주씨의 언니도 걷고 있었다.

23일 제주생명평화대행진이 이튿날에 접어든 가운데,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 이종관씨가 취재진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양유리 기자)
23일 제주생명평화대행진이 이튿날에 접어든 가운데,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 이종관씨가 취재진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양유리 기자)

"생명과 평화는 모두 연결되는 것 같더라고. 사실 그동안 사회문제에 관심이 크게 없었는데, 아이를 떠나보내고 나니까 내가 너무 무심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해군기지 문제도 똑같잖아요. 잊혀지지 않도록, 무뎌지지 않도록 나도 도와야지." 

그는 참사 이후 8개월 뒤 직장을 그만뒀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건 물론, 창고에서 물건을 정리하면서도 딸이 떠올라 손발을 다치기 일쑤였다. "다들 나랑 비슷할 거야. 다른 분은 참사 직후 20일 동안 굶었다고 하더라고. 그래도 다들 잘 살아가려고 해요. 일하면 여기까지 오기 어렵지." 

종관씨는 토해내듯 말했다. 재발방지과 함께 진상규명도 중요하다고. 추모공간, 행사 등 많은 국민들이 기억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그는 목이 막힌듯 이야기를 잠깐 멈추고 목에 걸린 수건으로 눈가를 닦았다. "딸에 대한 이야기는 밤새워서라도 할 수 있는데 오늘은 다 못하겠네요. 미안합니다." 

이번 생명평화대행진에는 종관씨를 포함,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소속 11명이 참가해 2박 3일의 여정에 함께 했다. 이정민 운영위원장은 지난 22일 출정식에서 마이크를 잡고 연대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힘 있는 자들은 지난 시간 끝없이 진상규명이 필요 없다고 외면하고 압박했으나 우리의 외침과 목소리는 그들에게 부담이 됐고, 이태원 특별법을 통과시킬 수밖에 없는 시기까지 오게 됐다." 

23일 제주생명평화대행진이 이튿날에 접어든 가운데,  박영수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부위원장이 분홍색 마스크를 착용하고 행진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23일 제주생명평화대행진이 이튿날에 접어든 가운데,  박영수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부위원장이 분홍색 마스크를 착용하고 행진하고 있다. (사진=박지희 기자)

이어 앞서있던 박영수 부위원장(故 이남훈씨 어머니)에게 생명과 평화, 연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하루종일 걷는 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이 정도는 괜찮아요. 오히려 하염없이 걸으니까 복잡했던 생각이 사그러들어서 좋네요." 묵묵히 걷던 박 위원장이 말문을 열었다.

"말 그대로 '생명'이잖아요. (참사) 전에는 불행을 겪으면 '운'이라고 치부할 때가 많았어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서요. 하지만 참사 이후 의식적으로 생명들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기회가 되면 내년이고 내후년이고 계속해서 참여하려고요. "

이태원 특별법을 두고 눈 쌓인 길 위에서, 이글이글 끓는 아스팔트 위에서 오체투지 행진을 여러번 해온 것에 비하면 가벼운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경기도 포천에 거주하는 그는 참사 이후 왕복 3시간씩 걸리는 서울을 통근하듯 다니고 있다고 했다.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직후 이태원역 입구 도로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공간.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사진=김재훈 기자)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직후 이태원로 인도에 마련된 희생자 추모공간. 늦은 밤,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사진=김재훈 기자)

그를 포함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7.15 오송 지하차도 참사, 화성 아리셀 참사 등 최근 일어난 사회적 재난 현장 곳곳에서 각 피해자들과 연대하고 있다. 제주해군기지도 비슷한 맥락이다. 무더위 속 기력을 채우기 위해 먹던 방울토마토를 기자에게도 건네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답답한 게 모든 참사가 다 똑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면 관이 빨리 나서는 게 아니라, 은폐하고 축소하고... 국민들에게 예방책을 내놓고, 각성시켜야 하는데요. 그리고 금방 잊혀요. 희생된 사람들을 기억하려는 의지도 없는 것 같아요. 성수대교 붕괴 참사 희생자 위령비가 어딨는지 아세요? 강변북로 한가운데요. 사람들은 절대 못가요."

그는 생명평화대행진처럼 당시 상황을 기억하고, 떠올리게 하는 행사 등이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역시 제대로 된 '기억의 공간' 마련을 당부했다. 사회적 의미를 되새겨주길 바라면서.

"참사 초창기에는 사람들의 많은 관심이 있었는데 2년이 흐른 지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흐려지는 게 아닐까 두려움을 갖고 있어요. 진상규명이 되지 않은 상황이니 더욱 그렇고요. 아직 제 정체성은 '엄마'에요. 부모가 할 수 있는 건 다해야해요. 2차 가해만 받게 하고 보낼 수는 없잖아요. 제 마음 속에서 '이 정도면 남훈이를 보낼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끝까지 목소리를 낼 겁니다. 다른 작은 목소리를 들어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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