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전 텃밭에 조금씩 작물을 키울 때부터 콩 농사를 꾸준히 했다. 올해도 토종 콩 2종과 콩나물 콩까지 3종의 콩을 재배 중이다. 토종이라서 양이 적기도 하지만 워낙에 소규모 콩 농사이기에 수확한 콩은 원물로 팔기엔 너무 허무할 정도로 돈이 안 된다. 눈알이 빠질 정도로 고르고 골라 선별한 작업을 생각하면 콩알을 품고 있어야할 정도다.
다행히 올해는 콩 작황이 좋을 것 같지만 해마다 콩 농사는 어려웠다. 농민들 평가로는 가장 쉬운 농사가 콩 농사라고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떤 해는 3번 연속 태풍이 몰아치는 바람에 콩밭을 갈아엎어야 했고, 또 한해는 우박을 맞아 잎이 모조리 떨어지는 바람에 모두 쭉정이가 된 적도 있다. 농민이 되기로 결심할 때 즈음이던, 아버님의 콩을 수확하던 한 해는 기나긴 가을장마가 11월까지 이어져 곰팡이 핀 콩 나무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수확을 마무리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귀농 전 아이들과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을 때 일이다. 토종작물에 꽂혀 이것저것 토종을 공부하고 꿈을 키우고 있었는데 제주 토종 콩인 푸른콩을 알알이 심어놓고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하였다. 푸른콩이란 이름이 콩을 보고 있으면 바로 이해되는 그런 콩이었다. 수확한 콩은 심을 때 보다 더 영롱하게 빛이 나고 그 어떤 콩보다 이름다웠다.
내가 먹기엔 많았고 내다 팔기엔 적어도 너무 적었다. 공부방 큰 테이블 위에 널어놓고 뿌듯해하며 이걸 어찌해야 하나 행복한 고민을 잠시 했다. 1kg에 얼마인지 검색도 하고 어디에다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런데 내 노동시간을 대충만 계산해봐도 콩은 너무 돈이 안 되었다. 콩 한 알을 1kg 값으로 판매한다 해도 나의 노동시간은 보상되지 않을 판이었다.
심사숙고하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청국장을 만들기로 하였다. 청국장은 먹어본 적도 없고 만들어 본 적은 더더욱 없으며 맛이 어떤지는 도통 모른 채 말이다. 다만 밤마다 이어지는 폭풍검색결과 콩 원물을 팔아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절감하는 일인데 모든 게 처음은 잘 된다는 것이다. 비록 떠도는 정보이지만 모으고 모아 매뉴얼대로 하면 안 될 수가 없다.
첫 작품이 성공적이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서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듯해지기 마련이다. 그렇듯 나의 첫 청국장은 성공적이었다. 볏짚을 구해서 넣기도 했고 잘 불린 콩을 잘 삶아 발효를 했으니 구수하게 익은 청국장 냄새는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청국장을 생전 처음 마주했는데도 자연스럽게 알아지는 느낌이었다. 첫 청국장을 어디에 어떻게 팔았는지는 기억이 없다.
해마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콩 농사를 놓지 못하고 있다. 콩 농사가 나를 힘들게 한 해에는 절대로 콩 농사를 다시는 하지 않겠단 다짐을 하고 제법 수확이 된 해에는 내년에는 양도 늘리고 종류도 늘려볼까를 고민하게 된다. 단순하기도 하고 바보스럽다. 내년부터는 절대로 콩 농사를 짓지 않겠다고 다짐하고도 몇 개월 후 봄이 오고 세상이 움트기 시작하면 다시금 씨앗을 확인하고 콩밭을 준비한다. 된장도 담아보고 막장도 담아본다.
여성농민회 언니가 만드는 두부는 세상에 없는 구수함을 맛보게 해준다. 제주 토종 푸른콩은 단맛이 좋고 찰기가 좋아 된장, 막장, 두부, 청국장 등 무엇을 해도 맛이 좋다. 콩국수로도 좋고 찬바람이 불고 콩국을 끓이면 든든하고 따뜻하고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이렇듯 훌륭한 청국장을 판매할 수는 없다. 내가 콩을 생산했는데 청국장을 만들어 팔면 불법이다. 고추 농사짓는 농민이 고추는 판매할 수 있지만 고춧가루를 판매할 수는 없다. 위생, 혹은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일 텐데, 고추를 생산하는 농민은 고춧가루를 판매할 수 없고 고춧가루를 산 상인은 갈기만 해서 판매할 수 있다.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왜 농민은 안 되고 상인은 된단 말인가? 농민은 안전성이 담보될 수 없는데 상인의 손으로 넘어가는 순간 안전성이 담보된단 말인가? 같은 고추인데? 잘 말린 고추를 기계에 넣고 갈기만 하면 고춧가루가 되는데 내가 팔면 안 되고 네가 팔면 된다는 말이다.
나는 잘 말린 고추를 동네 고춧가루 집에 가서 빻아온다. 잘 말린 고춧가루를 말이다. 여담이지만 고춧가루 집은 그 위세가 상상 이상이다. 고추를 빻아달라고 말린 고추를 가져가면 덜 말랐다며 더 말려서 가져 오라고 돌려보내기도 하고, 너무 바짝 말렸다고 빻을 때 너무 맵다고 잔소리를 한참 해 대기도 한다.
고추가 가루로 변신하는 순간 동네 고춧가루집 사장님은 내 고춧가루를 판매할 수 있고 나는 내 고춧가루를 나만 먹어야 한다. 여름 내내 키우고 따서 잘 말리는 과정까지 오롯이 자연의 법칙에 따라 움직여온 농민은 고춧가루를 판매하면 안 되고 그 고추를 순간 기계의 힘을 빌려 가루로 만든 상인은 된다는 것이다.
내가 생산한 농산물이라 하더라도 대기업 수준의 시설과 기준을 갖춰야 한다. 단순가공으로 즙이나 가루를 만든다 하더라도 농가에서는 큰 장벽으로 작용한다. 이런 식품위생법을 돌파하고 농가의 가공을 활성화하기 위해 공동으로 가공센터를 설립해 시설기준을 완화하려는 노력도 해봤지만 가공 물량이나 매출액이 작은 농가일수록 센터를 이용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농민이 원하는 날짜에 가공하기 어렵기도 하거니와 한 번에 많은 양의 가공품을 생산했을 때의 판매에도 문제는 많아 보인다.
소규모로 농사지어 가공을 조금씩 한다면 그래서 그 가공품을 지역 로컬푸드매장 등에서 판매한다면 소규모 농가의 수입에 많은 영향을 줄 수 있을 텐데도 아직은 요원해 보인다. 미국에는 ‘농가부엌법(Cottage Food Law)’이라는 게 있다. 기업적 가공에서 적용하는 기준과 다른 기준을 정해 소규모 농민 가공을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얼마 전부터 농산물을 내기 시작한 지역 로컬푸드 매장에 1차 가공 산물인 가루를 낼 수 있는지 문의를 해봤다. 어디서 어떤 과정으로 만든 가공물인지 알 수 없으므로 아직은 낼 수 없으며 양해 바란다는 답을 들었다. 안 된다는 답을 들을 줄 알면서도 고민은 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을까?
바질 원물을 수확해 내다가 생산량이 조금 많을 때 틈틈이 만들어 둔 바질 가루는 요리에 활용하기 아주 좋다. 파슬리도 한꺼번에 많은 양이 필요한 향신료가 아니고 연중 생산이 되지 않다보니 한 가닥의 파슬리가 아쉬울 때가 있다. 이것 또한 넉넉히 생산될 때 가루로 만들어 두었는데 이런 가루 생산물들을 매장에서 소소하게 판매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보리와 콩을 생산한 농가에서 만든 미숫가루와 밀 생산 농가에서 제분한 밀가루 등 다양한 농 가공 생산물을 만날 수 있다면 소비자들에게도 좋은 기회일 텐데. 가공이 기업의 권리가 아니고 농민의 권리일진데 왜 아직 우리 농민은 그 권리를 빼앗긴 줄조차 모르고 있는가?
김연주
전업농이 된지 6년차. 농민으로 살면서 느끼는 일상을 가볍게 공유하고 싶다.
